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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羊羹)에는 왜 양(羊)이 없을까?

by 40대 아재 2024.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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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가수가 부른 '밤양갱'이라는 노래로 

한 제과사에서 그 가수의 이름을 붙인 양갱을 

제조해 판매를 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어릴 적부터 굉장히 고급 간식 중 하나였던 

양갱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양갱에 대한 재밌는 여러 이야기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포로시절 만든 음식으로 시작되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간식인 양갱

 

 

'양갱'은 한문으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물인 '양(羊)'과 먹는 국을 의미하는 한자인 

'갱(羹)'이 합쳐진 말인데요. 

말 그대로 하면 '양고기가 들어간 국'으로 

한마디로 '양고기 국'이라는 말로 직역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양갱은 한자로 된 

뜻과는 완전히 다른 밤이나 팥, 녹두 등의

앙금에 설탕과 한천을 넣어 굳혀서 만든

국민 간식 중 하나입니다. 

 

 

그럼 양갱은 어떻게 처음 시작된 것일까요?

원래 양갱은 중국에서 만들어 먹던 요리로 

처음에는 말 그대로 양고기를 넣은 국이었죠. 

중국의 오래된 고서 중 하나인 '송서'에는 

남북조시대에 '동진'이라는 곳의 장수였던 

'모수지'라는 사람이 초기 북벌을 하던 중에 

'북위'에 포로로 잡히게 되는데요. 

이때 북위의 천자였던 세조 태무제에게 

양갱을 만들어 바쳐 태무제가 기뻐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처음으로 양갱이라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됩니다. 

 

양갱의 처음 모습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였을껍니다. 양고기가 들어간 국이기 때문이죠.

 

 

일본으로 건너간 양갱.

 

이렇게 중국에서 유래된 양갱은

중국사람은 물론 중국에 있던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게 되는데요. 

그중 일본에도 양갱이 넘어가게 됩니다. 

중국처럼 양고기가 흔하거나 익숙지 않은 

일본인들은 양갱에서 양고기를 뺀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요. 

1,300년 후반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에서 

양갱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정훈왕래'라는 간식이 등장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판매중인 여러가지 수제 양갱모습

 

중국에서 유학을 한 일본의 승려들은 

양고기는 물론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에 

중국 유학시 양갱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승려들도 

먹을 수 있는 팥과 같은 식물성 재료를 이용해 

양갱과 비슷한 모양을 띤 국을 만드는데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양갱의 시작이었죠.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양갱은 

사찰에서 먹는 사찰음식으로 시작을 했지만, 

나중에는 높은 신분의 귀족과 무인들에게도 

유행을 하면서 인기가 높은 음식이 됩니다. 

그래다 양갱은 연회를 위한 요리로 자리잡아 

초기엔 국물이 있는 요리였다가 시간이 흘러서 

국물과 건더기가 분리가 되게 됩니다. 

이후 서양에서 들어온 설탕이라는 재료로 

달콤한 건더기가 만들어지는데요. 

이것이 바로 지금의 양갱이 된 것이죠. 

일본에서는 달콤하고 먹기 좋은 팥양갱을 주로 

차를 마실 때 먹는 간식으로 먹기 시작했죠. 

 

고급 양갱의 시작과 시대적 영향

 

설탕으로 고급진 단맛을 내기 시작한 양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는데요. 

사실 서양에서 넘어온 설탕은 일반 서민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흔한 것이 아니였죠. 

가격도 굉장히 비쌌기 때문에 설탕을 사용한 

양갱은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가 흔히 '칡뿌리'라 부르고 있는 

'갈근'을 넣어 단맛을 낸 양갱이 일반적인 

양갱으로 많이 만들어지고 먹게 됩니다. 

 

종류와 맛도 다양해진 양갱 모습

 

양갱은 보통 팥과 밀가루,설탕을 사용한 재료를 

반죽을 통해 쪄서 만들게 되는데요. 

18세기 후반인 1,700년대 중반이 지난 시대에는 

'한천'을 이용해 굳히는 '연양갱'이 만들어지죠. 

한천은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우뭇가사리'로

이것을 넣으면 마치 젤리처럼 탱글탱글 해지는 

 탄력이 생기면서 식감도 좋은 연양갱이 되었고, 

또한 먹을 수 있는 저장기간이 길어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일본의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메이지 혁명'은 

'메이지 시대' 메이지 유신 이후의

'메이지 천황'의 통치를 가르키는 시대인

1868년부터 1912년까지 약 44년간의 시대로 

이때 발생한 일본의 산업혁명을 말합니다. 

메이지 혁명은 수많은 것들을 바뀌어 놓았는데, 

이 중 오늘 소개해드리는 양갱에도 굉장히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요. 

양갱을 만드는 제조공장이 점점 공정 개선되고, 

이로 인해 제품이 다양화되고, 생산량이 증가하죠. 

그리고 차량과 교통망의 발달로 물류가 발전되고, 

이로 인한 여러 지역에서의 관광객들이 생기면서 

각 지역은 자신만의 특징을 담은 과자등을

만드는데, 이 중 가장 많이 만들고 큰 인기를 끈

음식이 바로 양갱이였던 것이었죠. 

 

고급 간식으로도 많이 사랑받는 양갱

 

 

한국. 일본 양갱회사를 인수하다.

 

한국에는 일본의 양갱이 언제 들어왔을까요?

그건 바로 일제강점기 때 '화과자'의 일종으로 

한국에 전해지게 되었는데요. 

실제로 당시 한국에는 양갱을 제조해 파는 

일본의 양갱 제조회사가 있었습니다.

1945년 일본의 전쟁 항복과 패망으로 인해서 

뒤도 안쳐다보고 일본으로 도망간 일본인의 

양갱을 만들던 공장이 남아있었는데요. 

이때 현재 한국에서 양갱을 만드는 회사 하면 

떠오르는 '해태제과'에서 버리다시피 한 

일본 양갱공장을 인수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인수한 사람은 일본에서 해당 양갱을 

만들던 본사 직원 중 유일하게 한국인이였던 

'박병규'라는 분이 광복 후 한국에 돌아와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조선 공장이였던 이곳 

남영동에 위치한 양갱 제조회사를 인수해 

이때부터 우리가 지금 잘아는 양갱들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남영동 해태제과 초창기 공장 모습과 당시 신문광고

 

양갱은 처음 한국에 도입되었을 때도 그랬지만, 

한천(우뭇가사리)을 넣어 단단하지 않아서, 

음식을 잘 씹지 못하는 나이가 든 분들을 위한 

간식으로 인식되다가, 시대가 흐르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가장 흔한 팥양갱부터 녹차양갱, 커피양갱, 

호두양갱, 고구마양갱, 감자양갱, 호박양갱 등 

굉장히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맛있는 양갱이 

현재 판매가 되고 있죠. 

 

요즘 양갱은 종류와 맛이 정말 다양합니다.

 

오늘은 단 음식이 그리 흔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제법 고급스러운 

간식으로 자리 잡은 양갱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양고기를 넣은 국이라는 뜻을 가진 양갱이 

왜 양고기 국이 아닌 현재의 모양과 맛을 가진 

양갱으로 변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요. 

요즘은 한 인기가수의 노래로 인해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양갱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승려들로 인해 

변형이 되고, 나중에 한국에서는 양갱을 

만들 수 있게 된 계기까지 알게 되었는데요. 

저도 오늘 조금은 단 양갱을 조금 맛이 쓴 

녹차와 함께 오랜만에 양갱 플렉스를 하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여러분도 아주 오랜만에 양갱을 먹어보세요. 

옛날 생각도 나고, 오늘 소개해드린 유래와 

여러 이야기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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