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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초등학교 입학식(feat. 국민학교 가슴 손수건)

by 40대 아재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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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3년 1월이 다 지나가고
절기상 입춘이 다가오는 2월이 다시 지나면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입학식이 시작이 됩니다.
40대 중년아재는 지금의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주 가끔 '국민학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지금은 누가 이야기 해주기 전엔 이 단어가
생소해질 만큼 시간이 흐른 거 같습니다.
오늘은 지금은 중년이 된 국민학생 시절
당시 입학식과 그 내용에 대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국민학교 입학식 사진(1970~1980년대)


지금도 국민학교 입학시절 가슴에 달고 있던
손수건의 의미를 모르는 분이 있더군요.
어디까지나 제 주위기준입니다.
당시 국민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대부분은
가슴에 사진처럼 손수건을 옷핀으로 달아서
가슴에 차고 다녔습니다.
이 수건의 용도는 '콧물 닦기용' 이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입학식을 하는 3월 초는
아직 겨울날씨로 제법 추운 날씨이기도 했고,
당시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는 것이 너무도
흔하기도 했고, 때론 먹기도 했죠.

요즘 초등학교 입학식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워낙 아이들도 많았을뿐더러,
부모님이 참석하는 상당히 큰 규모의 행사였죠.
같은 동네 친구들이 같은 반이 되길 바라면서도
다른 반이 되면 울면서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본 기억도 나네요.

국민학교 입학식 사진(1970~1980년대)


학교 운동장에서 한참을 그렇게
여러 선생님과 첫 만남을 하고,
뭐가 뭔지 멍 할 때쯤 나뉜 반
친구들과 함께 처음 본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죠.
이때 부모님도 같이 교실로 들어오십니다.
나이가 7~8살이 되어도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를 떠나보는 첫날이기에 아무래도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이기 때문이죠.

담임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을 따라
교실로 들어갈 때 엄마가 안 보인다면서
울던 아이도 있곤 했습니다.
그때 유용하게 썼던 것이
가슴에 손수건 이였습니다.
콧물과 함께 그럴 때 사용하는 용도입니다.

1980년대 국민학생

당시엔 사진처럼 가방이 거의
네모난 모양에 철로 된 잠금쇠가 있는
가방이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가방에 새로 산 학용품과
필통등을 넣으면서 연필깎이로
필통에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
당시 몇 없던 TV에 나오는 만화의 캐릭터가 그려진 이 가방은 지금으로 따지면
국민학생의 국민가방 이었죠.

시험볼 때 가방의 용도


이 가방은 위 사진과 같이 모양이 네모나고,
가로, 세로든 어느 쪽으로 세워도
잘 세워지기 때문에
당시 책상은 2인용으로 대부분 사용을 했는데,
커닝 방지용으로 이렇게 항상 시험을 볼 때는
책상 중간에 책가방을 올리고
시험을 보곤 했습니다.
이때도 짝꿍과 함께 누구 가방을 올리냐를 가지고 티격태격 했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1970~80년대 국민학교 교실

교실은 담임선생님의 책상이 교실 맨 앞쪽 한쪽에 위치해서 항상 그곳에서
계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처럼 수업이 끝나면 나가시는 게 아니라
항상 교실에 계셨었죠.
그리고 낡은 풍금과 교탁,
그리고 난로가 있었습니다.

교실 난로
교실 난로위 도시락

당시에는 조개탄을 사용하는 난로를 사용했습니다.
물론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매일매일
주번이라는 당번을 정해서
조개탄이 떨어지면 지금으로 따지면
학교 직원분에게 조개탄을
얻어오는 일을 하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소사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따뜻하게 먹기 위해
난로 위에 당시 일본말인 밴또라 했던 도시락을
올려놓고 있으면, 수업시간 내내 반찬냄새가
교실전체에 진동을 하곤 했죠.
그래도 담임선생님이나 그 누구도
이 냄새에 대해 불만 섞인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보통 한 반에 당시에는
학생수가 50~60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학생수죠.
매년은 아니었지만,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서울이나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농번기방학이 따로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집안일을 도우라는 방학도 따로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가는 길이 대부분 논길이거나 산,
그리고 비포장 도로가 많았기 때문에
개구리도 잡고, 메뚜기등을 등교와 하굣길에
친구들과 많이 잡아서 놀던 기억도 납니다.

오늘은 이번 명절에 사촌동생의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시 국민학교를 다녔던 이야기를
잠깐 하던 중 추억하나 꺼내는
포스팅이 어떨까 해서
포스팅을 했습니다.

같은 시대지만 조금은 다 다른
국민학교 시절이 있고, 추억은 다 다르겠지만
분명 하나 분명히 같은 추억이 하나 있다면,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낮은 웃음과 추억으로
기분 좋은 것만큼은 같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초등학생과
입학식을 하는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생의 새로운 시작을
조금 일찍 응원해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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