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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박사-일화와 어록

by 40대 아재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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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풀네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입니다.
오늘은 아인슈타인 박사의
여러 일화를 알아보고
그의 어록도 함께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잘 아시겠지만 아인슈타인 박사의
간단한 소개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 소개


1) 이름-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 출생-1879년 3월 14일 생

3) 출생지-독일 뷔르템베르크 울름시

4) 학력
아라우 아르고비안 주립대학 졸업
취리하 연방 공과대학교 졸업
취리히 대학교 졸업

5) 소속-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아인슈타인 박사는 독일출신의 유대계로
스위스와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브라운 운동과 광전효과를 증명한
위대한 물리학자입니다.
그의 연구성과는 현재까지도
현대 물리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죠.
타임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위대한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 박사/출처-나무위키

 

■ 생애와 일화

 

1. 미적분 독학하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12살 무렵부터 미적분을
혼자의 힘으로 독학을 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질문을 하면
오히려 교사들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네요.

5살 무렵의 아인슈타인 사진

 

2. 고등학생 논문 쓰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의 주입적 교육에 지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쯤에 아인슈타인은 첫 번째
논문을 쓰게 되는데요.
그 제목이 '자기장에서의 에테르의 상태'
라는 글로 고등학생 때 이미
논문을 쓸 정도의 천재성을 가집니다.

3. 낙방 후 첫사랑을 만나다.

 

스위스로 유학을 간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
입학시험을 봤지만 낙방을 하게 됩니다.
낙방이유는 다름 아닌
어학성적의 낙제였습니다.
수학과 물리학은 당시 최고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낙제는 했지만 해당 대학의 학장이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오면
입학을 허락하겠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천재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이때 그 학장이 추천한 곳이
김나지움 고등학교 였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1년 후에
그곳에 입학을 합니다.
그리고 17세에는 스위스 아라우의
아르고비안 주립학교를
다닐 무렵에 묵었던 곳이
당시 교수의 집이었는데요.
이곳에서 아인슈타인의
첫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빈텔러'였습니다.

둘은 연애편지를 쓰면서 잘 지내게 되는데요.
나중에 마리가 교사가 되면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이후 조금씩 사이가 멀어졌으나
마리는 계속해서 아인슈타인에게
애정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먼저 연락을 하지 말라고 했죠.
1903년에 밀레바와 결혼한
아인슈타인은 그녀와의 결혼생활이
안 좋아질 때 첫사랑인 마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4. 스위스 고등학교 졸업시험과 낙제.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통과하는데요.
당시 1점에서 6점까지 있었던 점수에서
대수학과 물리학은 최고점인
6점을 맞아서 해당 분야에
뛰어난 점을 알렸죠.
하지만 프랑스어 과목에서는
자주 수업을 빠져서 해당 교수가
1점을 부여해서 낙제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완전 공대생 또는 이과덕후였죠.

5. 좋아하는 것만 공부했던 대학시절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연방공대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는 '수학 물리 교육과정'을
전공을 하게 되는데요.
초등학생 때부터 미적분을
풀었던 아인슈타인은 수학을
엄청나게 좋아했지만
대학에 입학을 한 후에는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써
결혼까지 한 밀레바에게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노트를 빌려서
시험을 봤다니까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이 아주 극적으로
나누어져 있는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대학에서도 물리학등은 최고점을 받아
1등을 했지만, 물리학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된 대학시절에는
졸업시험 때 그렇게 잘했던
수학은 점점 점수가 떨어졌죠.

젊은시절의 아인슈타인

 

6. 직장생활 이야기

 

아인슈타인의 첫 직장이 보험회사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놀랄만한 일입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첫 직장은
보험회사 였습니다.
좋아하는 과목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엄청난 천재성과
능력을 보여줬지만, 그 외 과목은
출석을 하지 않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교수들에게 추천서를 받을 만큼의
대학생활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반유대주의가 문제가
되었던 시기라서 유대인 출신이라는
인종차별도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졸업을 하자마자 교원자격증을
받게 되어서 과외를 하려고
광고를 부착하기도 했죠.
하지만 광고를 보고 온 사람은
과외학생이 아닌 그 학교에 다니는
물리학에 관심 있는 학생 2명이
광고를 보고 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상사와 다투고
해고당하고 말죠.
이때 아내인 말레바 사이에서
태어난 딸 '리제를'를 보살펴야 했고,
이쯤에 아인슈타인의 아버지의 사망이
겹쳐지면서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대학동창 중 친한 친구에서
부탁을 해서 특허청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위스 국적을 가지게 되면
병역의무가 있죠.
아인슈타인은 징병검사에서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깜짝 놀라게 되는데요.
정맥류와 평발로 인해서
병역면제를 받게 됩니다.

특허청에서 일을 하면서
5편의 논문을 내게 됩니다.
이는 당시에는 엄청난 노력이 없으면
안 되는 결과죠.
특허청 일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내서
물리학 논문을 5편이나 발표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때 발표했던 논문중 하나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E=mc2'라는
질량과 에너지 등가원리에 대한
논문이
나오게 됩니다.

사실 가장 유명한 원리가 'E=mc2' 지만

실제로 노벨상을 아인슈타인에게 준 논문은

'이중 광양자 가설'입니다.

노벨상을 받게 해 준 이 논문은

특허청에서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중에서

기계에 대한 특허를 많이 하는데,

이 경험을 통해 노벨상까지 받는

논문이 만들어진 거죠.

7. 결혼과 연예 이야기

 

아인슈타인이 그의 뛰어난 업적을 이야기할 때
그 업적만큼 반대로 욕을 먹는

부분이 바로 결혼생활입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밀레바가 첫 번째 결혼인데요.
아인슈타인은 참고로 2번의 결혼을 했습니다.
밀레바는 실제로 아인슈타인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세르비아계 외국인 이었죠.
아인슈타인의 부모들이 굉장히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밀레바의 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혼을 하게 됩니다.
밀레바와 이혼 후 친척누나인

엘자와 결혼을 합니다.
이혼한 바로 그 같은 해에 결혼을 하죠.

아인슈타인과 그의 첫번째 부인 밀레바


실제로 아인슈타인과 밀레바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부양을 소홀히 해서

자식들은 아버지인 아인슈타인을

평생 동안 미워했다고 합니다.
첫째 아들인 한스는 부모의 우성유전자를 받아서
버클리 주립대학의 교수를 했으며

아버지인 아인슈타인을 대신해서

가족들의 생활비등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평생 갔다고 하네요.

8. 운전기사와 일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서

쉴 틈 없이 바쁘게 강연을 다니게 되었는데요.
너무 바쁘고 피로가 쌓이다 보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을 본 그의 운전기사가 아인슈타인에게
실제로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 이론을 수십 번을 듣게 된
운전기사가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피곤함에 힘들어하는 아인슈타인에게
대신 강연을 하면 어떠냐고

물어본 유명한 일화가 있죠.

실제로 운전기사는 아인슈타인과 외모가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너무 피곤함에 지친 아인슈타인은 운전기사와
옷을 서로 바꿔 입고 운전기사가
한 강연에 대신 가게 되죠.
진짜 아인슈타인이 인정할 정도로
강연을 훌륭히 해냅니다.
그때 강연을 듣고 있던 한 교수가
운전기사에게 질문을 하죠.
이때 뒤에서 운전기사인 것처럼
쉬면서 듣고 있던 진짜 아인슈타인은
깜짝 놀라게 됩니다.
운전기사가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때 그 질문을 들은 아인슈타인척하는
운전기사는 이 질문을 받고
이렇게 재치 있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질문은 제 운전기사도 답 할 수 있다.
제 운전기사가 저기 앉아 있는데 대신 답을 해보게"
라고 실제 아인슈타인에게 그 답을 할 수 있도록
엄청난 재치 있는 행동을 해서 넘어갔다고 합니다.

최초로 E=mc 2를 공개했을 때 찍은 사진

 

9. 기차표와 아인슈타인의 건망증

 

아인슈타인은 건망증이 굉장히 심했는데요.
실제로 건망증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기차여행을 위해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역무원들이 기차표를 검사를 했는데요.
아인슈타인은 표를 보여주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져보았지만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이때 아인슈타인을 알아본 역무원이

너무도 유명한 아인슈타인을

알아보고 차표를 안 보여줘도
괜찮으니까 그만 찾아도 된다고 말을 하죠.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표를 찾습니다.
이에 역무원이 다시 한번 묻습니다.
"제가 잘 아는 유명한 분이니 표를 안 보여줘도
괜찮다고 했는데 왜 계속 찾는 겁니까?"
이 말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엄청난 건망증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10. 기타 일화와 이야기

 

1) 아인슈타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바로
성경과 돈키호테 였다고 전해집니다.

2) 여동생인 마야에게 아인슈타인이

처음 한말은 '바퀴는 어디 있어?' 였다고 합니다.

3) 뷰테인을 냉매로 사용하는

냉장고를 발명했습니다.

상당한 바이올린 실력을 가진 아인슈타인


4) 바이올린을 상당한 수준으로 연주했습니다.

5) 비가 오는 날 모자를 코트 안에 넣고

비를 맞은 후 왜 모자를 쓰면

머리가 비에 맞지 않는데 왜 그랬냐 라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모자를 세탁하는 것보다 머리 감는 게 낫다"

6) 아인슈타인은 바둑을 둘 줄 알았다고 합니다.

유명해 질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만든 사진포즈


7)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혀를 내미는 사진은

본인이 유명해질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만든 포즈입니다.

8) 과학자 마리 퀴리와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 아인슈타인의 어록

 

아인슈타인은 많은 어록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중 몇 가지 대표적인 어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나는 3차 세계대전이 어떤 무기로

치러질지 모르지만, 4차 세계대전은

막대기와 돌로 싸울 것이다.

2.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람이 하는

가장 미련한 짓이 아니며,
중력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3. 독일군이 원자폭탄 제작에

실패했다는 걸 알았다면,
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4. 누구든지 자신이 진실과 지식의 심판자라고
가장하기 위해 기도하는 자는

신들의 웃음소리에 파멸했다.

5.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6. 삶은 자전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는 이유이다.

7. 내 상대성 이론이 성공적으로 증명된다면,
독일은 내가 독일인이라고,
프랑스는 내가 전 세계의 시민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내 이론이 틀렸다고 증명이 된다면,
프랑스는 내가 독일인이라고,

독일은 내가 유대인이라고 선언할 것이다.

8. 신은 난해하지만, 심술궂진 않다.

9. 세상을 사는 자세에는 2가지가 있다.
지적 따위는 없다고 믿거나,

그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10. 평화는 힘에 의해 유지될 수 없다.
오직 이해로써 성취될 수 있다.


타임스는 2000년 1월에 가장 뛰어난 인물로
아인슈타인을 선정하게 됩니다.
타임즈는 폭탄, 빅뱅이론, 양자물리학, 전자공학 등
모든 과학적 영역의 기준엔 그의 흔적이 있다면서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로 평을 했죠.
그의 업적을 비교할 때 유일한 인물이 있는데요.
'아이작 뉴턴' 만이 그의 업적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죠.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적을

얻게 되면서 병역의무를
가지게 될 때 병역면제를 받은 이유가
평발과 동맥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인슈타인의 공식적인 사인은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한 사망입니다.
이건 지금 현재에도 발생 시 응급실에 바로 와도
20~30%만이 생명을 건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건국 7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을 준비하다 쓰러지게 됩니다.
병원으로 가면서 아인슈타인은
수술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사망일 아침까지 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생긴 이 사망원인으로
유언이 없다고 전해지죠.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화장을 하기 원했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긴 합니다.
다만 그의 부검을 맡았던 의사가
화장을 하기 전 그의 뇌를 적출해서

보관을 하게 되죠.
후에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뇌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요.
당시 뇌를 적출한 의사는
뇌연구를 위해 그랬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의 뇌는
뇌연구자들에게 일부 제공되죠.

아인슈타인의 뇌를 적출한 토마스 하비 박사


오늘은 세기와 시대를 넘어 위대한 성과로
현재 인류발전과 여러 학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아인슈타인의 과학적인 업적은 엄청납니다.
그 뒤에서 있었던 작은 일화와 어록들은
그를 더 이해하거나 알 수 있죠.
그리고 앞으로도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와 인류를 위한

많은 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조금 더 나은 인류를 위한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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