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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정교 효불효교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만들고 하늘에 북두칠성이 된 일곱형제 이야기

by 40대 아재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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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는

월정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효불효교(孝不孝橋)’로 불리는데요.

이렇게 불린 까닭은 『동국여지승람』(1481)에

수록되어 있는데, 아버지가 죽고 홀로

칠형제를 키운 어머니가 늦게 범골의 한 홀아비를

사랑하게 되어 야행을 자주 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제들이 다리를 놓아

어머니를 도운 이야기 입니다.

어머니에게는 효이지만,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라는 의미에서

효불효교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형제들은 죽어 북두칠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한 월정교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는 월정교가 있습니다.

월정교는 신라시대 경덕왕 19년(760)에

건설된 다리인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승의 어머니에게는 효이지만

저승의 아버지에게는 불효라는 뜻의

효불효교(孝不孝橋)’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린 까닭은 『동국여지승람』(1481)에

수록된 효불효교 설화에서 연유하는데요.

이 설화는 칠형제가 홀로된 어머니의

야행(夜行)을 위해 다리 놓았고,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고 있는 대다수의 이야기는

어머니가 ‘개가(改嫁)’하는

내용으로 변모되어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라도 합니다.

 

이승의 어머니를 위해 놓은 다리

 

옛날 한 여인이 뼈대 있는 명문 집안이라고 하여

유씨 성을 가진 어린 남자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와 보니...

초가삼간에 화전만 조금 있을 뿐이였죠.

가난한 집안 살림과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힘겨웠지만, 부부는 금슬이 좋아

슬하에 일곱 형제를 두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게 되었죠.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남편 없이

형제들을 키우려니, 어머니는 낮에는 농사일하고,

밤에는 삯바느질하며, 하루하루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형제들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형제들이 장성하자 농사일을 거들었고,

심마니를 따라다니며 약초와 산삼을 캐

돈벌이도 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모두 효자라 그간 어머니의 고생에

맘이 아팠던지라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형제들의 노력으로 살림살이는 늘어났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게 되자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얼굴은 피고, 피부도 고와졌는데,

문제는 긴 긴밤을 혼자 보내려니

잠이 오지 않는 것이였죠.

그러다가 어머니는 범골 외딴집에

혼자 사는 홀아비와 눈이 맞아 버립니다.

그때부터 형제들이 잠이 들면

몰래 나와 범골로 갔다가

동이 틀 무렵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늦은 밤

나가는 것을 눈치챈 큰아들이

몰래 뒤를 따라가 보았는데...

어머니가 엄동설한에 버선을 벗고

얼음물을 건너는 모습을 보자,

안타까웠던 큰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놓아야겠구나!’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이 되자 물에 홀딱 젖은 어머니가

다리를 다쳐서 집으로 왔죠.

어머니는 급히 서둘러 오다가

개울에서 넘어져 발을 다친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은 어머니가 다친 것을 알고,

약을 지어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죠.

 

그날 밤, 어머니가 잠이 들자

큰형은 동생들에게 자신이 본 이야기를 하고,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동생이 어머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불평하자,

큰형은 “지금까지 우리를 위해 고생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참된 효도가 아니겠느냐?”라며

동생을 꾸짖었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는 다리가 낫자

다시 범골의 홀아비를 만나고 싶었고,

밤이 되어 형제들이 잠이 들자 길을 나섰습니다.

개울 앞에 선 어머니는 깜짝 놀랐죠.

개울에 다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리를 확인해 보니 아들들이 만든 것이었죠.

새로 생긴 다리 덕분에 어머니는

더욱 편하게 다녔다고 합니다.

 

이후 사람들은 이 다리를 가리켜

이승의 어머니에게 효지만,

저승의 아버지에게 불효이기에

다리의 이름을 ‘효불효교’라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칠 형제는 죽어서 북두칠성이 되었는데,

북두칠성 중 별 하나가 흐릿한 것은

다리를 놓자는 큰형의 말에 불평했던

한 아들의 별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진정한 효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

 

효자가 만든 다리에 관한 이야기는

칠형제가 홀로 된 어머니의 야행을 위해

다리를 놓았고, 어머니가 다리를 이용하여

편안하게 야행을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문헌과 달리 구전되는 설화는

이야기의 결말이 어머니의 개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결말 부분의 변모는 유교적으로

강제된 효가 아니라 본래의 인간적 효심이

반영된 것인데요.

실제 고려시대까지 만해도 과부의 재가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죠.

그러나 조선시대에 유교가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과부의 재가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였고, 결국 성종 때에 이르러

재가 금지법이 만들어진 것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설화에 담긴 진정한 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만든 형제들의

행동은 어머니를 단지 자신들의 모친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여성으로,

더 나아가 한 개인으로서 인식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특히 이야기의 말미에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표현은

형제들의 효행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성한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살아계신 어머니를 위함은 효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를 나타내는

효불효교(孝不孝橋)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부분은 참 어려운 부분인데요.

어떠한 분들은 살아계신 어머니를 위한 효가

맞다...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으실것이고,

어떤분은 알고보면 바람난거 아니냐...

하시는 분도 있을 듯 하네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끝-

 

 

 

참고자료

단행본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2.

서울:국립민속박물관. 2012.

정기간행물이원영.

“<효불효교(孝不孝橋)> 설화의 변이양상과

원형적 의미”. 온지논총 (2010):73-103.

웹페이지

"경주일정교지·월정교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자

남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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