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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사인 히든싱어7 전설의가수 봄여름가을겨울 100대명반 비처럼 음악처럼 비오는날 수채화 내사랑내곁에

by 40대 아재 2022.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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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얼마 전 TV에서 가수 김현식 씨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참 좋아하던 노래였고,

좋아하는 가수였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히든싱어7 김현식 편을 본방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좋아했던 가수지만, 그 방송으로 인해

좀 더 많은 것을 알아보았던 내용을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가수 김현식은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꽤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요.

할아버지는 충남 홍성군에서 만석꾼으로

지역 유지로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 또한 그로 인해 일본의 와세다대학까지

유학을 다녀온 뒤 사업을 통해서 상당히 성공한

집안이었습니다.

위로는 누나(캐나다)와 남동생(뮤직 엔지니어)가

있었고, 특이한 건 김현식은 어릴 적인 초등학교 때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하였다가 외가인 충북

옥천으로 전학을 갔다가 다시 서울에 와서 전학을

하게 되는데, 이때 우연히 들국화로 유명한

전인권이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고 하네요.

물론 당시에는 나이 차이도 있고 학년도 달라서

서로 모르고 지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사촌 형의 영향으로 기타와 음악을 배우게

되는데요.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김현식은

그때부터 성적이 조금씩 떨어졌고, 그가 중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이 좋지 않게 되어서 더욱더 그랬으나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서를

제출했지만, 안타깝게도 낙방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지고등학교 전체 3등이라는 성적으로

입학을 하고, 바로 이 고등학교에 있는 밴드부에

가입을 하게 되는데, 선배의 악기를 만졌다는 이유로

다툼이 생겨 탈퇴를 하게 되고, 그해가 끝나기 전

가족들 모르게 고등학교 자퇴서를 쓰고 학교를

나오게 됩니다. 후에 김현식은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습니다.

 

학교를 자퇴하고 나서 서울 종로와 명동 인근의

음악다방에서 떠돌이 기타가수로 힘겹게 지내고

있을 때쯤 사촌 형의 권유로 종로의 한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이야기를 들은 뒤 그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의 음악 DJ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코미디언이자, 많은 사람들을 연예계로

발을 담그게 한 전유성 이였습니다.

전유성은 그의 노래를 들은 뒤 이런 음악다방에서

들을 만한 목소리가 아니라면서 그를 정식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어떠냐며 적극적으로 권유했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 후 밤무대 등에서 나이를 5~6살 높여 속이고

전인권과 한영애 등이 활동하던 그때에

언더그라운드 메인보컬 등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갔죠.

그리고 고등학교 자퇴를 하고 4년 후인 1978년에

정식으로 가수를 등장하기 위해 활동하던 중

대마초 사건을 통해서 몇 달 복역까지 하는 등의

안타까운 일을 겪고, 험난한 시간이 시작이 됩니다.

1980년 자신의 첫 1집인

봄여름가을겨울/당신의모습 이라는 앨범을 내지만,

처참하게 실패를 하게 되죠.

그 후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여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게 됩니다.

이때 잘 모르는 내용이지만, 가족을 위해 김현식의

고모가 도와준 돈으로 피자가게를 하게 되죠.

하지만, 이 또한 프랜차이즈의 영향 등으로

얼마 안 가 접게 됩니다.

 

 

 

우연히 TV에서 김현식을 좋게 본 동아기획 사장인

김영 사장에게 음악을 자기와 해보면 어떻겠냐라는

제의와 스카우트에 그 당시 발표한 '사랑했어요'라는

노래가 제법 인기를 끌면서 다시 가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이 되고, 당시 돌개바람이라는 6인조

밴드로 나이트클럽 등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가수 생활을 하는데 엄청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1집 타이틀이었던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본따서 만든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은

지금도 너무나도 유명한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명곡으로 당시 3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인기도 얼마 안 가 시들어지게 되죠.

왜냐면 또다시 대마초에 손을 대고, 이로 인해

이혼(별거)과 감옥에 가는 상황이 생기게 됩니다.

그때도 동아기획 김영 사장의 선처와 보증으로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됩니다.

 

또한 김현식은 TV방송출연도 사실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방송국 PD 등과의 의견 충돌로

방송 중 무대에서 내려와 버리거나 하는 등의

돌발적인 행동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폐인 같은 삶을 지내고 있던 중에

1988년 올림픽이 열리기 얼마 전인 그해 2월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팬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63빌딩에서 콘서트를 하게 되는데,

당시 600명이 넘는 팬들이 그의 콘서트를 찾았는데,

그때 그 감격에 눈물을 흘리고, 가수로써 진정된

모습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비오는 날 수채화'라는 영화의

OST를 만들게 되죠.

원래는 듀엣곡인데,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김현식이

힘들어해서 당시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강인원이

3명이 부르면 어떠겠냐고 제안해서 그렇게 3명이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친한 가수 후배였던 유재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때부터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유재하는 '사랑하기 때문에'등의

너무나도 유명한 명곡을 부른 가수이죠.

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입니다.

 

그 일로 김현식은 그렇지 않아도

좋지않은 몸 상태에서

술로 하루하루를 살았고, 당시 친구였던 이문세와

함춘호는 몸도 안 좋은데 약을 먹지 왜 술을 먹냐며

그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김현식의 사인인 간경화로 이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인 술이 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죠.

 

 

 

비 오는 날 수채화 OST를 녹음하던 1989년부터

그의 건강은 급격하게 안 좋아지는데, 그때 의사는

술을 한 잔이라도 먹으면 사망할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으나,

김현식은 술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노래를 할 수

없다면서 당시 같은 밴드 생활을 하던 신촌블루스

한영애에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영애는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라는 유명한

노래를 부른 당시 엄청난 인기 가수였습니다.

 

한영애는 당시 김현식의 얼굴이 간경변으로 인해

얼굴이 부어있었고, 배에는 복수가 차올라서

그런 말을 하는 김현식이 안타까웠다고 후에

인터뷰에서 회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옷으로 가리면서까지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입원한 병원에서 병원 측 몰래 탈출을

하면서까지 지방 공연을 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리고 그가 사망하고 난 후 7년 뒤에 동아기획에

카세트 테이프 하나가 도착을 합니다.

 

그건 바로 김현식이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그와 같은 병실에 있었던 사람이 건넨 것인데

그가 병원 입원실에서 15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을 카세트 플레이어로 녹음을 한 것이었죠.

이후 그것을 2002년에 동아기획에서 음반으로

제작해서 발표를 합니다.

술을 먹어서라도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깎아먹으면서도

노래를 부른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도 녹음을 해서 만든 그의 6집

'내 사랑 내 곁에'가 유작이 됩니다.

전설적인 노래이면서 지금도 많은 후배 가수들과

많은 사람들이 리메이크 및 아끼는 앨범이자 곡이죠.

그의 유작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당시 100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와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게 됩니다.

그가 작고한지 1년 후인 1991년에 그 당시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 텐에서 골든컵을

수상하게 되는데, 세상을 떠난 그를 대신해서

그가 분신이라고 말하고 가장 아꼈던 그의 아들인

김완제와 그의 아내가 대신 수상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지금도 유명한 김장훈이 김현식의 사촌이라는

소문 등으로 유명세를 치르려는 것 아니냐라는 소문에

생방송이었던 그 방송을 펑크를 내서 장필순이

대신 내 사랑 내 곁에 노래를 부른 일화는 아주

유명하죠. 김장훈 씨는 굉장히 소신 있고, 불의를

못 참는 것으로 지금도 유명하죠.

 

가수 이승철 씨와 김장훈 씨는 김현식으로 인해

음악적으로 존경하고,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음악을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죠.

 

어릴 적 좋아하던 가수가 세상을 떠났는데,

히든싱어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송을 볼 때

커튼이 젖혀지는 그곳에서 누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을 때 기분이 참 짠하더군요.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듯하면서도요.

 

한참을 바쁜 일상과 삶의 무게로 인해 각박하고

조금은 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어릴 적 좋아했던 가수와 노래를 들으니 왠지

조금은 쉬어갔다가 또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열심히 뛰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부터 모아놓은 음악 CD나 카세트 테이프를

집 창고에 박스로 포장되어 있는데, 시간이 될 때

한번 열어 봐야 겠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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