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nowledge & news

대한민국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1호는?

by 40대 아재 2024. 4. 25.
반응형

수천 년 오랜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은 

다양한 문화와 그것들을 보여주는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인데요. 

누구나가 알고 있을 듯한 이야기지만, 막상 

대한민국 국보,보물,사적,명승,천연기념물 1호를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답을 하실 수 있나요?

그래서 오늘은 알쏭달쏭한 나라에서 심의를 거쳐 

지정한 문화재들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5가지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의 각 1호로 지정된 

문화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문화재는 소중하게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들이죠.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가장 처음 소개해드릴 국보는 '나라의 보물

이라는 뜻을 가진 문화재를 일컫는 말인데요. 

모든 문화재가 중요하고 소중한 것들이지만, 

이 중 특히 가치가 큰 문화재를 국가가 지정해 

보호를 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재 입니다. 

보통 국보는 다른 문화재와 같이 국보 지정번호를 

국보 뒤에 붙히게 되는데요. 

그 순서는 해당 문화재의 가치가 높고 낮음이 아닌 

지정된 순서에 따라 정해지게 됩니다.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 모습

 

대한민국 국보 1호는 '숭례문'입니다. 

숭례문의 국보지정은 1962년 12월 20일에 

지정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걸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듯한데요. 

조선 한양도성의 정문이면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남대문은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목조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지 5년이 

지난 1396년에 숭례문을 짓기 시작을 해서 2년 후인

1398년에 완성이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죠. 

 

숭례문은 태조 이성계의 손자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고 있는 '세종대왕'이 

즉위 30년이 된 1448년에 고쳐 지은 것인데요. 

이후 성종 즉위 10년 1479년에도 그 뒤를 이어서 

숭례문을 고치는 등의 공사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 역사자료에 의해 알려져 있습니다. 

 

숭례문은 '지봉유설'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숭례문이라는 현판을 쓴 사람이 세종대왕의 

형이자 태종의 장남이였던 '양녕대군'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왕의 장자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궁중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풍류를 즐기는 등의 행동으로 

결국 동생인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넘기게 된 

왕의 장자이면서 왕이 되지 못한 몇 안 되는 

비운의 세자로 잘 알려져 있죠. 

 

국민 모두가 안타까웠던 숭례문 화재모습

 

숭례문은 2008년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2월 10일에 누군가의 방화로 인해서 엄청난 

화재로 누각 2층 지붕이 붕괴가 되고, 

1층에 있는 지붕도 일부 소실이 되는 등의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은 가슴아픈 사건이 있었죠. 

이후 무려 5년이 넘는 기간동안 복원공사로 

2013년 5월 4일에 일반에게 공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당시 뉴스에서 숭례문의 화재모습을 보며 

모든 국민들의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한민국 보물 1호

 

이번에는 국보에 이어 보물에 대해 알아본 텐데요. 

대한민국 보물 1호는 바로 '흥인지문'입니다. 

보물은 국보 다음으로 대대로 물려져 내려온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일컫는 말인데요. 

서울 종로에 있는 흥인지문이 대한민국 보물 1호에 

그 이름을 당당히 올리고 있습니다. 

국보 1호에 이어 보물 1호도 성곽시설 문입니다. 

흥인지문의 보물지정은 1963년 1월 21일 지정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보물 1호로 남아있는데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구성되어, 

정면에서 지붕을 볼 때 사다리꼴 모양을 한 

'우전각'지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물 1호 동대문의 과거 모습과 현재 야간 조명을 켠 모습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그 형태가 가늘고 약해면서도 

지나치게 장식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보면,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문화재죠. 

흥인지문은 도성의 8개의 성문 중에 유일하게 

적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설계한 

반원 모양의 튼튼한 '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조선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죠.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위치해서 흔히 '동대문'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오히려 동대문이 공식 이름인 것처럼 

동대문으로 많이 불리고 있는 성문이죠. 

흥인지문도 태조 이성계가 도성을 축조할 때 

다른 성문들과 함께 공사를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국보 1호인 숭례문과 동일한 해인 

1396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죠. 

그리고 단종이 즉위한 해인 1453년에 고쳐서 

다시 지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흥인지문의 모양은 조선의 

공식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 6년 1869년에 새로 지은 것입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대한민국 사적 1호

 

대한민국 사적 1호를 소개해 드리기 전에 

사적이라는 뜻 부터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국보나 보물은 흔하게 많이 들어서 잘 아는데, 

사적이라는 말은 말이 듣기는 하지만, 

정작 사적의 뜻을 모르는 분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경주에 있는 포석정 모습

 

● 사적

사적은 '史(사)+跡(적)'이라는 한자가 합쳐진 말로 

한자를 풀어보면 역사(사)와 발자취(적)가 있었던 

건축물이나 시설이 있던 곳을 말하는데요. 

그 자취를 국가가 문화재법으로 통해 지정합니다. 

다시 말해 기념물 가운데 역사적으로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들을 사적이라 부릅니다. 

보통은 군사상 유적, 집터, 절터, 서원, 고분,

궁궐 등이 일반적으로 사적으로 등록이 되죠.

 

그럼 대한민국 사적 1호는 무엇일까요?

바로 '포석정'입니다. 

경북 경주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연회장소로 신라 49대 왕인 '헌강왕' 즉위시절인 

875~885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적 1호로 지정은 1963년 1월 21일에 지정 후 

현재까지 내려져 오고 있는데요. 

현재는 당시 풍류를 즐기던 물길만 남아있으며, 

당시에는 존재했던 정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적1호인 경주의 포석정 위치와 모습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는 특성으로 포석정은 

22m의 물길을 가지고 있고, 높낮이 차이는 약 

5.9cm로 물결모양을 본떠 만들어 좌우로 꺾이고, 

굽이치게 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데요. 

이 안에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서 흘리면, 

그 술잔이 지목한 누군가가 자신에게 술잔이 

오기 전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등의 

풍류를 즐기던 곳이 바로 포석정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명승 1호

 

이번에는 대한민국 명승 1호에 대해서 알아볼 텐데, 

명승도 '이름이 뛰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로, 

굉장히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곳을 흔히

명승이라 하죠.

보통 명승은 지방지정문화재에 속하는

국가지정문화재로 경치가 좋고 뛰어난 대상을

지정을 합니다. 

보통 유명한 건물이나 꽃, 나무, 새, 짐승,

벌레, 물고기, 협곡, 해협이나 폭포, 호수, 하천,

평원, 온천지 등을 말하죠.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청학동 소금강 경치 모습

 

그럼 대한민국 명승 1호는 어디일까요?

1970년 11월에 명승 1호로 지정된 강원도

강릉에 있는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 바로

명승 1호로 되어 있습니다. 

오대산에 위치한 이곳은 계곡도 깊고,

산새가 아름다워 지금도 많은 분들이

찾는 명승지인데요. 

뛰어난 경치와 더불어 많은 유적도

남아있는 곳이죠. 

원래의 명칭은 '청학산'이었는데요. 

'율곡 이이'선생이 당시에 산세가 마치

금강산과 같아 아주 빼어난 경치를 가진

곳이라고 그의 저술서 중 하나인

'유청학산기'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소금강은 전체길이 13km에 달하는데요. 

구룡연, 비봉폭, 무릉계, 옥류동, 만물상,

선녀탕, 망군대,십자소,세심폭 등의 절경은

지금도 굉장히 유명하죠. 

그리고 신라 말기 경순왕의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당시 고려로 인해 나라가 망할 상황에 이르자 

이곳에 있는 '아미산성'은 망해가는 자신의

신라에 대한 한을 풀고자 쌓은 결과물로 유명하죠. 

 

마의태자와 관련된 바위와 소금강의 빼어난 계곡 경치 모습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1호

 

마지막으로 천연기념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은 자연 가운데 학술적이나, 

자연사적, 지리학적으로 중요하거나 그것이 가진 

희귀성과 고유성, 그리고 심미성의 이유로 인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해서 그것을 법률로 규정해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일정한 구역을 말하는데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1호는 바로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도동 측백나무 숲'입니다. 

1962년 12월 7일에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된 후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보존되고 있는데요.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구의 측백나무 숲 모습

 

측백나무는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분포하는데, 

한국에는 주로 대구와 단양, 안동, 영양 등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중 하나입니다. 

특이하게 주로 절벽 위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요. 이를 이용해서 주변의 환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많은 분들이 

심고 있는 나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구에 있는 천연기념물 1호 측백나무 숲은 

나무의 높이가 모두 5~7m 정도 되는 나무가 

무려 700그루가 넘게 절벽에서 자라는데요. 

사실 측백나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나무나 느티나무도 함께 어울려 있죠. 

이곳은 대구시 달성에 속해있는 이유로 인해 

'달성 측백수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에도 자라고 있는 나무지만, 

당시에는 중국에만 있었던 나무로 알려져서 

식물 분포학상에 희귀한 경우로 인정을 받아 

높은 학술적 가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죠. 

지금도 이곳은 측백나무의 철저한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제한이 되어 있는 곳이며,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학술목적 출입만이 

가능한 곳으로 남아있는 곳이죠. 

실제로 절벽에서 제법 큰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굉장히 멋지고 신기하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대구 도동 백나무 숲 전경

 

오늘은 대한민국 국보, 보물, 사적, 명승, 천연기념물 

각각의 1호로 지정된 아주 소중하고 보전해야 할 

중요한 문화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국보 1호 정도에서 멈추는 

경우를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글로 적어도 국보, 보물, 사적, 

명승지와 천연기념물 1호 정도는 일반상식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