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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 news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전무후무한 거짓신문

by 40대 아재 2023.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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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가장 오래된 신뢰 있는 언론매체입니다.
사실에 입각한 사건과 사실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정보와 관련된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그 역할과 존재이유가 있는
신문이 의도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만든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인 1974년에 당시
서울에서 가장 번화가 중 하나였던 명동에서
엄청난 인질사건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
으로 당시 지하에 있던 다방에서
수십 명의 인질들이 20대의 범인들로
인해서 인질로 잡혀있었던 실제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 사건을 다른 신문내용

 
당시 육군 방위병으로 근무했던 '이원모'와
같은 동네 친구인 '최성환'과 '윤찬재'는 
이원모가 근무하는 부대에서 카빈총 2정과
실탄을 500발 넘게 탈취를 한 후 광진구에 있는
워커힐 뒤편에서 승용차를 탈취하게 됩니다.
차량 탈취 당시 승용차에 타고 있었던
3명의 아이는 다행히 차에서 내리게 한 후
운전사만을 데리고 영동고속도로로 달려서
일본으로 밀항을 하려는 범인들을 '김장식'
당시 순경이 쫓았는데, 안타깝게 범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총에 그만 목숨을 잃게 됩니다.
 

당시 탈취한 버스의 총알자국 사진

 
범인들은 예정에 없었던 경찰 살해에 
달리던 고속버스를 세운 후 남자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에 무슨 이유인지
그들이 온 방향인 서울로 다시 가게 됩니다.
그들과 인질이 도착한 곳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명동이었고,
그 당시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으로 인질들과 함께
그곳에서 인질극을 벌이게 됩니다.
 

유네스코회관 초창기 모습

 
그들은 왜 승용차를 탈취해서
밀항을 하려 했으며, 경찰을 죽인 후
왜 다시 서울로 돌아왔는지가
사건이 마무리가 된 후 알려졌는데요.
당시 방위병이었던 이원모는 당시
전국의 부대에서 굉장히 많이 만연해 있었던
부대 내 금품갈취와 그로 인한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범행을 동네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대 내에서는 쉬도 때도 없이 돈을 요구하고,
돈을 주지 않으면 폭행과 갈굼의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원모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을 한 후 승용차를 탈취해서 당시 포항으로
간 다음에 그곳에서 밀항을 하려 했던 것이죠.
 

사건 주동자였던 이원모

 
하지만, 그들의 계획과 다르게 그들이 달리던
영동고속도로에서 김장식 순경에게 잡히고,
그 과정에서 범인들 중 한 명이 김장식 순경에게
가지고 있었던 총을 발사해서 김장식 순경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일이 자신들의 계획과 다르게 커지자, 그들은
차라리 이러한 부대 내 폭행과 금품갈취등을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간 후 그 사실을 알리려고
서울의 가장 번화가였던 명동으로 간 것이죠.
 

공범이였던 윤찬재와 최성환

 
버스에 있었던 여자 인질들과 다방에 있었던
인질들까지 포함해서 약 30여 명의 인질을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에서 약 20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게 됩니다.
그들은 국방부 장관을 만나게 해 달라 요청했고,
인질들을 풀어주면 만나게 해 주겠다는 당국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범인들의 애인과 어머니 등 가족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려 했던 당국은
당시 범인들에게 회유를 요청했던 가족들과,
지하다방 DJ로 일했던 한 인물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요.
그들이 자수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경찰을 죽인 상황에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당국은 지금껏 없었던 전무후무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게 됩니다.
 

안타깝게 범인의 총으로 사망한 김장식 순경

 
1974년 당시에는 방송이나 언론은 거의 모두
신문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볼 수 있었는데요.
당시 바로 새로운 신문을 발행할 수 있는 
신문사는 딱 2곳이 있었습니다.
당국은 그 신문사들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경찰이 총을 맞았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다'
라는 거짓신문을 만들어 범인들에게
전해주면
범인들이 자수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
을 한 것이죠.
역사상 억지로 거짓을 신문을 만든 전무후무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초의 의도적으로 만든
거짓신문기사입니다.
그 말을 들은 신문사 중 한 곳이 당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당국의 요청과 같이 범인들이 쏜 총에
죽은 줄 알았던 순경이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거짓뉴스를 신문에 실어서 발행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신문을 범인들에게 전해주죠.
 

범인들을 체포하는 내용을 담은 신문기사

 
그 신문을 접한 범인들은 처음에는 동요했지만,
실제로 경찰에게 총을 쏜 범인은
자신이 4발의 총알을 경찰에게 쐈는데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신문의 내용에
의심을 하면서 자신들을 회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거짓신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래서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 사건이
전무후무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을 일부러 신문에 실어 발행한
최초이자 마지막 거짓신문이 됩니다.
 
유네스코회관 지하다방에서 약 20시간 동안 
인질들을 데리고 대치한 범인들은
다방 DJ를 통해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는 등의 행동으로 만 하루를
긴장 속에 보낸 범인들은 졸음을 못 견디고,
잠깐 조는 사이에 그곳에 있었던 인질들이
범인들을 제압해서 사건이
마무리가 되게 됩니다.
그들은 이원모를 제외하고 민간인 신분임에도
군사재판을 함께 받게 되면서
사형을 받게 됩니다.
당시 전국에서 만행되고 있었던
부대 내 폭행과 금품갈취등의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지 형 확정 후 1년이 조금 지난 1975년 8월에 범인 3명 모두는
총살형으로 사형집행을 당하게 됩니다.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오열하는 범인들

 
참고로 범인들이 워커힐에서 탈취한 자동차는
SK그룹의 2대 회장이자 선경그룹의 창업주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고 최종현 회장의 차입니다.
그렇다면 그 차 안에 타고 있었던
3명의 아이들은 바로 최종현 회장의
자녀였던 것이죠.
최태원 현 SK 회장, 최재원 현 SK 부회장,
최기원 SK행복 나눔 재단 이사장이 그 차 안에
타고 있었던 것이었죠.
그때 범인들이 차에 타고 있었던 이 3명에게
사건과는 다른 행동을 했다면 지금과는 
많은 것들이 바뀌거나 없었을 겁니다.
 
인질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거짓뉴스를 발행한 신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유네스코 지하다방 인질사건이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실이 목숨과 같은 신문사가 이러한 일들을
했다는 것이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다시 한번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언론이 사실에 입각한 진실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 다시한번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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