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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과 아파트 유래

by 40대 아재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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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영웅이자 낙동강 방어선의 전설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월튼 해리스 워커'장군은

지금도 한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지켜준

위대하고 고마운 미국의 장군입니다.

그래서 워커 장군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서

남은 여러 가지 중 호텔과 아파트가 있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6.25 전쟁 4대 영웅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연합군 총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

독립운동가이자 한강방어의 영웅인'김흥일 장군',

그리고 백마고지의 영웅인 '김종오 장군',

그리고 낙동강 방어선의 영웅인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영웅인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

 

워커장군은 1889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한국에서 일어난 6.25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국의 육군 장군입니다.

계급은 중장이었으며, 사망 후 대장으로 추서 되죠.

워커 장군의 부모는 그에게 승마와 사냥, 사격등을

가르쳐 주며 키웠는데요.

이로 인한 영향인지 워커 장군은 어릴 적부터

군인이 꿈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워커 장군의 능력은 엄청났는데요.

첫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을 프랑스로 파견되어

중대장으로 시작한 그는 전쟁기간 동안 2개의

은성무공훈장을 받으며, 전쟁 중에 대위에서

중령까지 진급을 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대위가 되긴 하지만,

이후 뛰어난 능력으로 진급을 거듭하게 되죠.

 

전쟁 중 작전을 구상중인 워커 장군

 

제2차 세계대전에는 대령으로 전시 계급으로 

참전을 하게 되는데요.

대령으로 승진한 지 5개월 만에 준장으로 승진하고,

이후 7개월 만에 다시 소장으로 진급을 합니다.

물론 전시 임시 계급이었지만, 소위 별을 달자마자

별 2개인 소장까지 진급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워커 장군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중요한 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당시 패튼 장군과 함께 성공을 시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시 임시계급이 아닌

소장으로 공식 계급으로 진급이 되는데요.

전쟁이 끝난 후 2년 뒤인 1947년에 진급을 합니다.

이후 워커 장군은 일본의 점령군 임무를

수행했는데, 제8군 사령관으로 부임을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워커 장군의 제8군을

전투준비 상태로 만들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와 제8군은 한국파병을 하게 됩니다.

그의 3번째 전쟁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명령은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몰아내라는 명령이었죠. 

하지만, 맘먹고 공격하는 북한군의 화력과

강력한 공격으로 큰 손실을 봅니다.

연합군의 대부분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투입이 된 상태에서 그에게 추가로 지원되는

인원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가 지휘하는

방어선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죠.

 

맥아더 장군과 워커 장군

 

하지만 워커 장군은 참모진과 군인들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Stand or Die' 자리를 지키거나 죽어라는

이 말은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그의 간절하지만 강력한 명령으로

더 이상 퇴각하면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방어선의

뒤쪽에 있는 부산등에서 잔인한 학살이 발생하고,

전쟁에 패배할 수도 있다며, 죽는다면 차라리

적들과 싸우다 죽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방어선이 밀리면 인천상륙작전도 물거품이

되어버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야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말로 훗날 워커 장군은 미국 군인들의

희생을 강요했다는 오해를 받게 됩니다.

다행히도 맥아더 장군이 그가 한 말에 대해서

전쟁에서 장군이나 지휘관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말이라면서 그를 감싸주게 됩니다.

 

워커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한 워커힐 호텔의 야간 전경모습

 

워커 장군의 낙동강 방어선이 성공을 하게 되면서

인천상륙작전도 성공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6.25 전쟁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되죠.

그의 아들인 '샘 워커 장군'도 아버지인 워커 장군과

한국에서 활약을 한 것은 유명한 일이죠.

워커 장군은 안타까운 일로 사망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의 서울시 도봉구에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다른 군트럭을 출발시키던 중 마주 오던 

워커 장군이 탄 차량의 측면을 들이받게 되는데,

안타까운 차량전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때 남한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피의자인

한국인을 사형에 처하려 했는데,

당시 미국 군사고문단의 '제임스 하우스만 대위'가

사형을 막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를 낸 사람은 징역 3년을 받게 되죠.

 

워커힐 아파트 전경

 

훗날 미군이 'M41 워커 불도그'이란

경전차를 만드는데, 이 명칭은

워커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죠.

대한민국은 워커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과 그를 

기리기 위해서 서울 아차산의 지명에

'워커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호텔인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과 1978년 세계사격 선수권 대회를 할 때

선수촌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던

'워커힐 아파트'가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까지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죠.

 

워커힐 본관 정문에는 그를 기리는

비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에

8군의 사령부로 사용이 되었던

부경대학교의 구내식당 이름으로도

사용이 되고 있는데요. '워커 하우스'입니다.

대구에도 그의 이름을 딴 미군부대가 있죠.

'캠프 워커'입니다.

용산에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2017년에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의 장군을 자신의 나라에 기리기 위해

한 지역의 이름을 '워커힐'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를 만큼 그의 업적은 한국에는 실로

엄청나게 큰 것들입니다.

그가 지키던 낙동강 방어선과 전투가 일어났던

수많은 곳들에서 그가 북한군을 막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한국도 아마도 없었지 않을까요?

자신의 아들도 같은 전쟁에 참여시키는 아버지도

정말 대단하지만, 그의 아들도 대단한 거 같습니다.

 

워커힐 호텔과 워커힐 아파트의 이름 유래가

6.25 한국전쟁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전쟁을 끝내는데 일등공신으로 알려진

낙동강 방어선과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의 업적을 그의 이름이

남긴 워커힐을 통해서 기억해야 할 듯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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