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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톤으로 대통령이 된 남자

by 40대 아재 202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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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톤은 여성들이 매니큐어를 지울 때

사용하는 것으로 가장 흔하게 알고 있죠.

휘발성이 강한 유기용매로 여러가지 물질을

녹이고 닦아내는데 사용하는 약품입니다.

오늘은 아세톤으로 인해서 대통령이 된

한 남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아세톤'은 현재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만큼

일반적이고 여러용도로 사용하는 용매입니다.

아세톤은 페인트와 니스 제거제로 사용하고,

가정에서는 매니큐어 제거제로 사용을 하죠.

아세톤은 이렇게 지우는 것에만 사용하지 않고,

오일,왁스,수지,고무,고무 접합제,래커,니스 등

생산에 많이 사용을 합니다.

많은 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합니다.

 

아세톤 화학구조식

 

아세톤의 어원은 마가론(margarone)이라는

조어 방식을 따라서 아세트 산(acetic acid)의

아세토이 이어져 아세톤이라는 용어로

1830년대 사용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분자식은 C3H60 입니다.

 

휘발성, 인화성이 강하 큰 투명 무색의 액체죠.

사실 자극적인 달콤한 냄새가 납니다.

인화점이 마이너스 18도 이기 때문에

불로부터 멀리 떨어져야 안전한 용매죠.

 

이처럼 아세톤은 휘발성이 강한 유기용매로써

여러 가지 물질을 녹이는 액체로 사용이 되는데,

사실 아세톤은 이보다 무연화학 원료인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잘 녹이기 때문에 

화약 제조에는 필수적인 물질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이면에는

영국이 이 같은 아세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탄약을 풍부하게 생산 및

보급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지요.

 

사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화학의 원료를 칠레에서 나던 초석을 사용했죠.

하지만, 독일의 잠수함으로 인해서 영국은 

칠레로부터 이 연료를 받아올 수 없었죠.

이 재료가 없이 화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산 성분을 포함한 유기물을 아세톤으로

녹여야 했지만, 쿠바에서 나는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빼고 난 부산물을 발효하여 아세톤을

얻었기 때문에 원료를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이때 영국은 전통적인 위 방법에서 벗어나

녹말로부터 아세톤을

공업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서 화약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때 아세톤의 대량제조 비법을

만들어 낸 사람이 유태계 과학자

'하임 바이츠만'이었습니다.

그는 스위스에서 화학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30대가 되면서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는

유태민족이 다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가 

자신들만의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세톤을 발견한 하임 바이쯔만

 

1910년에 바이츠만은 인조고무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요.

이 연구에서 설탕을 인조고무의 원료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박테리아를 찾는 과정 중

우연히 설탕을 아세톤으로 바꾸는 박테리아를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박테리아 이름을 지어주게 되는데요.

'클로스트리듐 아세토부틸리쿰'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게 됩니다.

일명 '바이츠만 유기물'입니다.

이로 인해서 아세톤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과 공정을 개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칠레에서 원료를 가져오지 못해서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 영국에서는

엄청난 희소식 이었죠.

녹말이 되는 곡물은 여유가 있었던 영국은

미국에서 수입한 옥수수와 함께 아세톤을

대량생산 하는 데 사용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토대로 영국은 연합군과 함께 승리를

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됩니다.

 

승리를 한 영국은 나중에 수상이 된 로이드는

바이츠만에게 명예와 보상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이쯔만은 자신의 민족인 유태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데 지원을 요청했죠.

이런 바이쯔만의 노력은 '발포어 선언'으로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발포어가 

유태인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게 된 것이었죠.

 

이런 과정에서 1948년에 건국이 됩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이었죠

바이츠만은 그간의 공로를 인정을 받아서

건국초기 임시대통령직을 맡고 있다가

정식으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이 됩니다.

그리고 이후 재선까지 되어서 나라에 많은

헌신과 봉사를 하다가 퇴임을 하게 됩니다.

 

친분이 있었던 하임 바이쯔만과 아인슈타인

 

하임 바이츠만은 아인슈타인과도 상당한

교분이 있었던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명 모두 유태계 과학자였던 이유였죠.

하임 바이쯔만은 이스라엘의 지폐에도

새겨질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현재는 너무도 흔하게 알고 있고,

많이 사용하는 아세톤으로 인해서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된 인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민족이나

나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엄청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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