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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 news

우리가 몰랐던 것들2

by 40대 아재 202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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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저번 우리가 몰랐던 것들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나, 사람, 물건 등
당연하듯 그냥 지나치던 것들에도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두 번째 이야기를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세종대왕 어진-출처 나무위키


세종대왕님에 대한 몰랐던 이야기

얼마 전에 지난 간 10월 9일은 바로 '한글날' 이었습니다.
훈민정음을 만드신 세종대왕님의 이름은
다 아시겠지만 '이도'이고, 자는 '원정'입니다.
조선의 4대 왕이었으며, 세종이란 시호는 세종대왕님이
죽은 후 그 업적을 기리고, 나라가 주는 특별한 이름이죠.
서울에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뒤쪽으로는
'세종이야기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는데요.
세종대왕님의 업적과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세종대왕 동상 뒷편에 입구가 있는 세종이야기 전시관


이 입장하는 문을 의외로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다녀왔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넓고 큰
공간이 나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보시면 교육에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네요.

과거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의 언어대학에서
전 세계의 언어를 모두 모아놓고, 독창성이나
합리성, 과학성을 모두 두고 평가를 한 적이 있는데,
한글이 당당하게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아참! 세종대왕님이 한글이라는 용어를 쓰신 건
아닙니다. 훈민정음이죠. 먼 훗날 조선 말기에
조선어 어학회를 통해 '한글'이라는 말로
지금까지 사용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한글 입니다.



훈민정음을 만든 원리나 내용 등을 담은
해례본은 뉴스에서도 과거 나왔지만, 경북 안동의
희방사에서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


세종대왕님은 아시다시피 조선 3대 왕인 '태종'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장남인 양녕대군, 차남인 효령대군이 위로 있었고,
그리고 셋째가 충녕대군인 세종대왕님이죠.
보통은 첫째형인 양녕대군이 저희가 말하는 좀 놀았어
그래서 효령에게 갔고, 효령이 스스로 셋째인
충녕에게 물려주고 스님이 된 건 아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첫째형인 양녕대군이 아버지인
태종에게 눈에 벗어난 후 둘째형인 효령대군을
뛰어넘어 왕위가 자신에게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태종이 죽어서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준 것이 아니고,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세종대왕 집권 초기에는 군사를 다스리는 병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태종 스스로 엄청난 반란과 보복 등을 통해
왕권에 올랐으니, 그런 것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저희는 흔히 세종대왕 하면 화장실도 안 갔을 것 같은
위대하고,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조선의 왕이라 생각을 하지만,
세종대왕님은 우선 본처인 중전과 후궁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만 우선 20명이 넘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나라를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하시고,
밤에도 엄청난 일을 하시였던 것이죠.
아무튼 낮과 밤 모두 왕성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복이 좀 없었습니다.
아들인 문종의 부인인 세자빈이 요즘 말로 하면
궁녀와 함께 레 즈 비 언... 하...

취향이 좀...출처-TV 조선 박종인의 땅의 역사 캡쳐본


유교적 사상이 강했던 그때는 정말 경악할 만한
일이었을 겁니다.
몇 번의 용서와 몇번의 며느리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결국은 나중에 내쫓아 내시기로 결정합니다.

야근 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구나.허허허.


신하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도 유명합니다.
특히 집현전에서 신하들에게 본인이 시킨 것을 하는지
감시할 정도로 회사로 따지면 열정 사장님처럼
신하들에게는 엄청난 업무와 지시를 내리는,
그렇다고 거역할 수도 없는 그런 왕이었던 것이죠.
제시간에 퇴근 따위는 없었다고 합니다.

퇴근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은퇴시켜 주시옵소서!


그리고 사육 신중 한 명인 성삼문은 세종대왕님의
명령으로 당시 명나라에 출장만 13번 다녀왔다고 합니다.
말이 13번이지...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간과 거리를 가서 훈민정음에 관련된 음운 등을
배워오고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출장을 보냈다 합니다.

중국 명나라 출장 응?



다음은 세종대왕님의 식성입니다.
이 부분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던데,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종대왕님은 완전 '고기 마니아'이셨습니다.

고기를 안드시면 아프셨던 세종대왕님.


오죽하면 2대 왕인 정종이 전사 후 고기를 먹는 것이
예가 아니었는데, 세종대왕님의 아버지인 태종이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를
예를 지키기 위해 안 먹는 것을 기특하게 생각을
할 정도라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정종 상중에 고기를 2달 동안 먹지 않았는데,
바로 금단현상이 와서, 몸이 허해지고, 상해서
건강을 걱정하는 태종과 신하들의 요구로
고기를 다시 먹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고기를 드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그렇게도 오는군요.


세종이 가장 아꼈던 신하중 한 명을 뽑으라면
저희가 잘 아는 '황희'입니다. 흔히 황희 정승이라고 하지요.
그 황희가 나이가 들어 몸이 쇠해서 누워 있으면,
세종대왕님은 황희에게 고기를 먹으면 기력을 회복한다며
고기를 먹으라고 고기를 보내주고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기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세종대왕님은 일찍부터 당뇨. 심근경색 같은 성인병에
시달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기 싫다고요...


그리고 지금도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며 우기는 일본.
세종대왕님은 조선왕들 중 유일하게 영토를 넓힌 왕입니다.
그 영토가 바로 태종 때 이종무를 시켜 토벌해 얻은
바로 '대마도'이죠.
해외에 있는 영토를 얻은 건 조선시대에 유일합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님은 대마도에서 약탈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받고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대마도는 본래 우리의 땅이나, 왜 나라 사람들을 그냥
살게 해 준 것이다."
이게 우리가 듣고 싶은 말 아니겠습니까?

공짜로 살게 해주니까 이것들이...


세종대왕이 포스팅 초반에 20명이 넘는 자식들을
두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18남 4녀)
나중을 생각해서 세종대왕은 점술가를 불러서
그 자식들에 대한 점괘를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자식사랑에서 나온 것이죠.

5번째 아들 광평대군을 잃은 세종대왕/출처-뿌리깊은나무


그런데 당시 점을 본 홍계관이라는 역술가가
유일하게 한 명에 대한 점괘 결과를 말하지 않았는데,
다섯째인 광평대군에 대한 점괘 결과를 말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긴 세종대왕님이 재차 물어보시자
마지못해 홍계관은 그 점괘를 말했는데, 이랬습니다.
"광평대군께서는 굶어서 죽을 팔자입니다."
세종대왕은 총명하고, 영특해서 굉장히 아끼던
5남 광평대군의 점괘가 굶어 죽는다는 역술가의 말에
쌀 500석과 전과 답을 바로 하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광평대군에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을 하는데...
광평대군이 밥과 반찬으로 생선을 먹다가
목에 생선가시가 걸려서 힘들어한 적이 있는데,
그건 흔히 있는 일이었고, 큰 병도 아녔기에
지나갔는데, 광평대군은 생선가시로 인해
계속 통증을 느끼고, 물이나, 이후 음식을 못 먹어서
결국 사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점괘대로 굶어 죽은 것이었죠.
세종대왕에게 광평대군은 유일한 먼저 보낸
자식이 되었습니다.

바쁘신데,많이도 낳으셨네요.


세종대왕님은 고기를 좋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상당히 크고 뚱뚱했다고 합니다.
왕을 물려준 태종도 유일하게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죠. 그래서 고기를 조절하게끔도
해봤다는 게 기록입니다.

아들인 세종을 걱정하는 아버지 태종


그래서 그런지 당뇨와 눈병, 그리고 피부병까지 심한
세종대왕님은 저희가 '초정약수'로 알고 있는
청주 쪽에 있는데요. 이곳에서 몸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여서 세종대왕님과, 이후 세조도 이곳에 와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곳을 '초수'라고 했는데요. 이는
후추처럼 매운 물로 눈이나, 몸을 씻으면 깨끗이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잘 보여! 다 나은 듯... 초수로 눈병을 치료하는 세종대왕


재위 26년 차인 1444년에는 이곳에서 무려
121일 동안 봄과 가을에 각 한차례씩 두 번 와서
행궁을 지은 후 머물며 치료를 했다고 하고요.
이곳에서 훈민정음의 마무리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렇게 세종대왕님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는 임금님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고기를 많이 드셨고, 며느리로 인한 고민,
자식을 먼저 보내고, 당뇨, 눈병, 피부병 등
많은 힘든 과정에서 그 많은 것들을 해내셨습니다.
훨씬 더 많은 업적과 또 모르는 사실이 더 많이
있겠지만, 이번 포스팅을 통해서 우리가 아는
가장 훌륭하고, 존경받는 조선의 임금보다
인간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고민과
개인사 등을 통해서 인간 세종대왕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참!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는요
1926년 조선어 연구회가 훈민정음 반포 480년을
맞아 '제1회 가갸날'을 양력 10월 9일로 해서
10월 9일이 한글날이 되었습니다.
근데, 왜 한글날은 4대 법정공휴일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참...
5대 법정공휴일로 지정을 해야 하지 않나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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