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은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궁궐로
해외 여행객에게도 이제는 유명해진 관광지죠.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 한복을 입고
입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가봤을 경복궁은 말 그대로
궁궐인데요. 궁궐안에는 여러 건축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곳입니다.
오늘은 경복궁안에 있는 건축물과 궁궐을
둘러싸고 있는 4대 문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5대 궁궐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신 거 같아
글을 쓴 보람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궁궐 이야기 중 가장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 안에 있는 건축물들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지어졌고 보존되어 있는지
궁궐을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건축물의
그 의미와 내용을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 경복궁안 4대 문과 건축물
1. 광화문
경복궁을 둘러싼 4대문 중 가장 유명하고
많이 알고 있는 '광화문'입니다.
광화문으로 많은 관료들이 출퇴근도 하고,
예로부터 남쪽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던
선조들은 경복궁의 남쪽문이자 가장
대표적인 문으로써 각종 노래제목이나,
방송으로도 가장 많이 알려져서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대표적인 문입니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인 임진왜란을 비롯해서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그 모습이
파괴되고, 이전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고종황제 재임시절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다시 중건하여 당시의 모습을 찾았습니다.
2. 건춘문
'건춘문'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봄을 의미하는 춘이 들어가는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문 입니다.
'봄이 시작되는 문 '이라는 뜻을 가진 문으로
다음 왕인 세자가 사는 궁도 '동궁'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죠.
그렇다 보니 경복궁 동쪽에 있는 건춘문은
세자를 비롯한 왕실가족과 종친들이
드나들던 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종황제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사건인
'아관파천'또는 '아라사'가 일어날을 때
고종황제가 이 건춘문을 통해서 갔습니다.
또한 '을미사변'으로 알려져 있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시 일본 낭인들이
건춘문을 통해 들어왔다고 전해지죠.
그리고 건춘문 앞에 은행나무 한그루가
아주 예전부터 있었는데요.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모두 본 나무겠네요.
3. 영추문
'영추문'은 경복궁의 서쪽을 맡고 있는 문입니다.
경복궁 안에서 일을 했던 관청의 문무백관들은
대부분 경복궁의 서쪽문인 영추문을 통해서
출입을 했습니다.
조선초기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가담자들이
비밀스러운 모임을 많이 가졌는데요.
이때 드나들던 문이 바로 영추문입니다.
그런 이유인지 역대 최악의 왕으로 기록된
'연산군'은 근정전에서 영추문까지 이르는
모든 구역을 가시로 막아서 그 누구도
이곳을 다니지 못하게 막았던 기록도 있습니다.
4. 신무문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쪽문입니다.
보통 북쪽은 겨울과 죽음, 강한 음기등을
의미하는데요.
그래서 신무문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고
잠가놓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북쪽의 음기가 경복궁을 좋지 않은
결과를 줄 수 있을까 봐 그런 것이죠.
하지만, 항상 잠가놓았던 것은 아닙니다.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심할 때
나라에서는 '기우제'를 지내는데요.
기우제를 지낼 때와 현재 청와대에 있는
활터를 가기 위해서 왕이 행차를 할 경우
그때만 잠깐씩 열었다고 합니다.
5. 흥례문
많은 분들이 흥례문을 경복궁의 4대 문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굉장히 많은데요.
'흥례문'은 경복궁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4대 문은 아닙니다.
흥례문은 궁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있던 문이며,
지금도 군에서 실시하는 암호등을 사용해서
문을 지켰던 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수문장 교대식을 볼 수 있는 문이
바로 흥례문입니다.
흥례문은 굉장히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죠.
그 이유는 현재 흥례문이 있었던 자리가 바로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 있었을 때 일본은
흥례문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조선총독부의
건물이지만, 광복이 되고도 한때 정부청사와
박물관으로도 사용이 된 아픈 역사가 있죠.
1995년 8월 15일에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의 여러 목적을 가지고
철거가 된 자리에 원래 있었던 흥례문을
복원하여 지금의 흥례문이 된 것이죠.
6. 동십자각
'동십자각'은 현재에도 잘 보전이 되어 있는
경복궁의 건축물 중 하나인데요.
현재 경복궁을 등지고 왼쪽편인 경복궁 사거리에
홀로 외롭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축물이죠.
동심자각은 '망루'입니다.
망루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그 근처를 감시하고
살펴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탑입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건물에 비해 높죠.
예전에는 경복궁과 붙어서 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경복궁과 떨어져 위치해 있습니다.
동십자각도 고종 재임시절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 사업에 함께 복원된 건물인데,
처음 세워진 것은 조선이 만들어진 태조시절
처음 경복궁이 지어질 때 만들어졌습니다.
7. 영제교
흥례문에 들어설 때 잘 보시면 돌을 깐 길이
3개로 나뉘어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왕이 갈 수 있는 길을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데요.
가운데만 왕이 다닐 수 있는 '어도'입니다.
실제로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어도를 밟으면
80대의 매를 맞는 체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궁에는 '금천'이라는 흐르는 물과
그 위에 있는 다리인 '금천교'가 있는데요.
경복궁의 금천교가 바로 '영제교'입니다.
금천이라는 뜻은 '금지하고 삼간다'라는 뜻으로
이 다리를 건너면 왕이 있는 구역이니 행동을
항상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영제교에는 특이한 동물이 있는데요.
이름이 '천록'으로 4마리의 천록이 영제교를
지키고 있는 형상이 있습니다.
이 천록은 궁궐에 들어오는 좋지 않은 기운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 천록의 임무입니다.
8. 기별청
지금은 그리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연락을 한다는 뜻을 가진
'기별'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기별을 전하다는 식의 말을 말이 썼죠.
이렇게 경복궁 안에서도 기별을 청하는
현재의 우체국과 같은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기별청'으로 불렸습니다.
기별청은 그 규모가 작았습니다.
기별청은 보통 왕을 뵙기 위해서 다니던
'유화문'이라는 문 옆에 있었는데요.
유화문을 지나면 왕을 뵙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요.
이때 기별청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순서를 정하는 등의 업무와
궁궐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기별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죠.
기별지는 지금의 조간신문과 같은 것으로
당시에는 궁궐에 일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무조건 읽었던 신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9. 근정문
'근정문'은 뒤에 설명해 드릴 가장 유명한
경복궁의 건축물인 '근정전'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에 있는 문인데요.
이 문 앞에는 조금은 화려하고 신기한 계단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계단의 이름은 바로 '답도'입니다.
임금의 길이라는 뜻을 가진 계단입니다.
사실 임금이 다니는 계단이지만, 실제로는
가마에 올라탄 채 이 답도 위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답도 가운데 부분에 새겨진 동물은
'봉황'인데요.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새로
그 뜻으로 답도에 새겼습니다.
10. 근정전
경복궁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근정전'입니다.
경복궁의 중심이면서 보통 드라마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화면이 근정전에서 왕과 신하가
나랏일을 의논하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죠.
근정전은 조선의 '법궁'이자 '정전'입니다.
임금과 국가의 중요한 행사나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맞이하던 곳이죠.
근정전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건국할 때
일등공신이자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에 의해
지어진 이름인데요.
한자 중 부지런하다는 뜻을 가진 '근'을 따서
궁궐의 대명사로 불리는 '근정전'이 된 것이죠.
정도전은 왕이 부지런해야 천하의 일이 모두
잘 풀리고 잘 다스릴 수 있다는 뜻으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근정전 앞에는 두 개의 기단을 볼 수 있는데요.
이 것을 우리는 '월대'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36개의 동물조각상이 있는데요.
임금의 있는 공간에 나쁜 기운이 접근 못하도록
일종의 수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근정전 천장에는 발톱이 7개인 용이 나무로
새겨져 있는데요. 이것은 왕이나 황태자가
용의 발톱 4개를 당시에는 의미했으나,
7개의 발톱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황제보다도
더 높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새겼다고 합니다.
조선건국 시 처음 지어졌던 경복궁 근정전은
나라의 중요한 행사와 왕의 즉위식 등의
아주 중요한 행사를 했던 곳인데요.
태조 재임시절 지어진 원래의 근정전에서
왕 즉위식을 마지막으로 한 왕은 '선조'로
이후 일본의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파괴되어
불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후 고종 재임시절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중건을 했지만, 고종 황제는 물론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조도 일본의 방해로
경복궁에서 즉위식을 하지 못하고
'덕수궁 중화전'에서 양위식을 했습니다.
오늘은 조선의 법궁이자 가장 많이 알려진
경복궁의 4대 문과 함께 그 안에 있는 여러
건축물과 그 내용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추석이나 설날과 같은 명절에 많이 찾는
경복궁을 둘러보실 때 이런 내용을 알고
방문을 한다면 조금은 더 뜻깊고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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