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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4대문과 건축물-2탄

by 40대 아재 2023.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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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궁궐인

경복궁에 있는 여러 건축물에 대해서

저번시간 1탄에 이어 오늘 2탄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축물들이

경복궁 안에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경복궁 안 건축물

 

1. 사정전

 

경복궁 사정전 모습

 

경복궁 '사정전'은 임금의 정사를 보시던 곳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각 부처의 장관들과 함께

국무회의를 하던 곳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다른 말로는 '편전'이라고도 하는데요.

편전은 평상시에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에 대한 일들을 의논하고 경연하던 곳이죠.

사정전은 근정전의 북쪽이면서 왕이 자는 곳인

'강녕전'의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누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 사람을 '사관', '주서'라고 불렀는데요.

사관과 주서가 쓴 글은 설령 임금이라도

그 내용을 볼 수 없었습니다.

조선의 공식적 사실을 그대로 쓴 정서인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쓴 것이며,

'승정원일기'로 알려진 기록은 주서가 쓴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2. 강녕전

 

임금의 침소인 강녕전

 

임금의 가장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함께

잠을 자는 곳인 '강녕전'입니다.

'연침', '연거지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왕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가족이나 신하들을 편하게 만날 때에도

사용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인인 왕비와 함께 지낼 듯 한 곳이지만,

강녕전에서 왕비와 함께 지내지는 않습니다.

이는 유교의 법도에 따른 것입니다.

 

강녕전은 총 9개의 방으로 만들어져 있는데요.

방과 방 사이에는 모두 문이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1탄에서 말씀드린 근정전처럼

월대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왕과 왕실 가족들이

식사나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강녕전도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이

경복궁을 설계할 때 지은 건축물입니다.

'강녕'이라는 말은 역사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말인데요.

'편안함'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임금이 편하게 쉬는 공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강녕전 또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없어졌다가

고종황제 재임시절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중건되어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교태전

 

경복궁 안에 있는 교태전 모습

 

강녕전이 왕인 임금의 개인적인 공간이라면

'교태전'은 나라의 국모이자 임금의 아내인

왕비의 개인적인 공간입니다.

'중궁전'이라고도 불리는 교태전은 경복궁의

중심축 제일 끝을 장식하는 건물입니다.

'교태'란 한문으로 양과 음의 조화를 뜻하는데,

다음 왕인 세자의 나이가 10살 전후가 되면

자신의 부인인 세자빈을 간택하는데요.

덕망과 기품을 가진 세자빈 자격을 갖춘

여인을 왕실 어른들과 함께 간택에 필요한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세자빈을 뽑았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교태전을 중심으로

수많은 역사적인 일들이 일어난 곳이죠.

 

 

4. 아미산

 

교태전 뒷편의 작은 아미산 모습

 

뒤에 소개해드릴 경복궁의 건축물 중

근정전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유명한 건물인

'경회루'와 연관이 깊은 '아미산'입니다.

아미산은 위에서 소개해 드린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편에 있는 인공적으로 만든 동산인데,

이때 이 작은 동산을 만들기 위해서 썼던 흙이

바로 경회루 앞에 있는 연못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서 나온 흙을 바로 이곳에 가져다가

아미산이라는 인공 동산을 만든 것이죠.

 

원래 아미산은 중국 사천성에 있는 산인데요.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알려진 산입니다.

교태전 뒤편에 있는 아미산에는 총 4개의

굴뚝이 있는데요.

이 굴뚝은 육각형 모양으로 30~31단으로

쌓아서 만든 것인데요.

이 굴뚝들은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의 온돌방

밑을 지나서 연기가 나가는 곳입니다.

굴뚝마다 여러 동물들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왕비의 장수와 부귀영화를 기원하고,

화재와 좋지 않은 일들을 막기 위함으로

상서로운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5. 흠경각

 

과학관련 기구개발과 보관소인 흠경각

 

'흠경각'은 위대한 조선의 임금이자 존경받는

세종대왕이 만든 경복궁 안에 있는 건물인데요.

백성들을 위해서 농업국가인 조선시대에서

정확한 시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농사에 필요한 시기를

정확히 알려주기 위해서 세종대왕은 열심히

노력을 했습니다.

그 노력이 얼마나 큰지 관노비 출신이었던

장영실을 등용해서 천문시계와 해시계 등

기상관측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게 했죠.

이렇게 농사에 필요한 시기를 알려주거나,

백성들의 삶이 좋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건을 만들거나 연구하고, 또한 그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바로 흠경각입니다.

 

 

6. 함원전

 

경복궁 안에 있는 함원전 모습

 

'함원전'은 왕비의 침실인 교태전 서쪽에 

위치한 건축물인데요.

이름의 뜻은 '원기를 간직한다'라는 뜻으로,

세종대왕 재임시절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쳐 소실되었다가 고종황제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재건을 하였으나,

현재의 함원전은 1995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함원전은 불교행사를 많이 열었던 곳인데요.

경복궁내에서 유일하게 불교를 위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유교가 국가의 기본인 조선시대에서 궁 안에

불교 관련 건물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7. 자경전

 

경복궁의 대비전인 자경전 전경

 

'자경전'은 왕의 어머니 또는 왕비의 시어머니인

대비가 생활하는 건축물을 말합니다.

자경전은 모든 궁에 다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경복궁에 있는 자경전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 조 씨'가 머물던 곳입니다.

신정왕후는 흥선대원군과 함께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도와준 인물입니다.

교태전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름의 유래는 '한중록' 또는 '한중만록'을 쓴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친어머니인

'혜경궁 홍 씨'를 위해서 창경궁에 지었던

자경전 이란 이름에서 유래가 된 것인데요.

뜻은 왕의 어머니를 뜻하는 '자친'이 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건축물 뒤에 ''이라고 붙은 침소 중에

고종 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이

바로 경복궁 자경전입니다.

그리고 자경전의 담장은 꽃무늬가 있는

꽃담으로도 유명합니다.

 

 

8. 동궁전

 

동궁전 전경 모습

 

'동궁'은 동쪽에 있는 궁이라는 뜻으로

음양오행에서 시작을 뜻하는 봄을 의미하죠.

물이 소생하고 희망찬 계절이 새로 시작하는

미래의 임금이라는 의미로 동궁이라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다음 왕이 될 세자가 머물던 곳으로

이해를 하시면 될 듯합니다.

조금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 동궁에서

가장 오래 생활한 세자는 바로 세종의 아들인

'문종'입니다. 무려 28년을 이곳에서 생활했죠.

문종은 이곳에서 아버지인 세종대왕을 도와

한글을 만드는 일에도 도움을 주고, 당시에

과학천재로 알려져 세종대왕에 의해 등용된

장영실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선 최고의 무기로 알려진

'신기전'을 만드는 데 많은 기여도 합니다.

문종이 28년간 왕세자의 직위로 동궁에서

지냈던 시절에 비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생을 마감하고, 자신의 아들인 훗날 단종도

훗날 세조인 숙부 수양대군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슬픈 이야기를 가진 왕이죠.

전문가들은 문종이 정상적으로 살았다면,

아버지인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훌륭한

왕이 되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9. 경회루

 

경복궁내 가장 큰 누각인 경회루 전경

 

조선시대 누각 중 가장 규모가 큰 '경회루'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경복궁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또한 현존하는 전통건물 중 가장 큰 건축물이죠.

 

 

 

 

경회루 흥청망청 유래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는 국보 224호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중 하나입니다. 이 경회루에는 많은 이야기와 일화 중 '흥청망청'이란 말도 있는데요. 오늘은 경회루와 흥청망청에 대한

joongnyun4050.tistory.com

 

대한민국 지폐에도 인쇄가 될 정도로 

너무도 유명하고 전통적인 건축물로

경복궁 하면 근정전과 함께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곳 중 하나입니다.

임진왜란 전 처음 지었던 경회루는

지금보다 훨씬 화려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경회루도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고종황제 재임시절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건되어 재건된 건축물입니다.

 

폭군인 연산군 시절 '흥청망청'이란 말이

만들어진 배경이 되는 경회루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경회루 앞에

연못을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뒤편 아미산이란 동산을 만들었고,

이 연못을 만들 때 화재로부터 경회루를

지켜달라는 의미로 청동으로 만든 용

2마리를 넣었다는 기록이 있어

실제로 1997년에 그때 넣은 용 2마리 중

한 마리를 찾아서 현재 고궁박물관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찾지 못했습니다.

 

경회루 연못에서 발견한 청동 용 - 고궁 박물관

 

그리고 경회루 기둥에는 꽤 많은

총알 자국이있는데,

6.25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한 상황을

알려주는 동시에 아픈 동족의 슬픈 역사를

함께 알 수 있는 자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보수를 한 탄흔자국만 있습니다.

 

 

10. 건청궁

 

경복궁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건천궁

 

'건청궁'은 경복궁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살던 곳입니다.

사실 이곳은 고종황제가 신하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몰래 지었던 건물이기도 한데요.

외교관 접대 장소로 사용된 건물입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왕비를 무참하게 살해한

을미사변이 있었던 바로 그곳이기도 하죠.

이곳 건천궁 '곤녕합'에서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서 시해가 됩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분통한 일이죠.

 

건청궁은 다른 일반적인 전각과는 조금 다른데요.

궁에 있는 다른 건물들과 달리 당시 평범한

일반 사대부집 건축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건청궁의 '장안당'에서 고종황제가 지냈고,

건천궁의 '곤녕합'에서 명성황후가 지냈죠.

실제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감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건청궁은 2007년

복원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이때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위해서

장안당 뒤뜰에 감나무 하나를 심었습니다.

 

경복궁에는 이외 어진을 모시고 있는

'태원전'과 보물을 모아놓는다는 뜻의

'집옥재'등의 수만 권에 이르는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 건축물들이 있는데요.

명절연휴나 주말에 가족나들이로 그만인

경복궁에 가실 때 이번에 소개해 드린

경복궁 4대 문과 건축물들을 간단하게나마

알고 가시게 된다면 좀 더 흥미롭고 재밌는

경복궁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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