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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 부인들

by 40대 아재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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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 황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인들이 있었는데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명성황후부터

성씨만 기록으로 남은 후궁들까지 그 이야기를

오늘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고종 황제의 부인들

 

명성황후 초상화

 

1. 명성황후

조선왕조에서 중전이라 불리는

수많은 왕비 중 한 사람만 답을 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명성황후'라고 답을 할 정도로

가장 많이 알려진 왕비입니다.

'민비'라고 불렸던 명성황후의 이름은

'민자영'입니다.

1851년에 태어나 일본의 잔혹하고 비열한

'을미사변'으로 인해 1895년 43세의 나이로

사망을 한 비운의 왕비입니다.

 

왕비로 간택이 된 것은 다름 아닌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몰락한 양반집안의 딸로서 훗날

외척으로 인한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시아버지가 되는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16세에

조선왕조 26대 왕이었던 고종의 중전이 됩니다.

아시겠지만, 훗날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은

어마어마한 서로의 대립으로 인해 많은 일들이

발생을 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치욕적이고 안타까운 을미사변 후 일본에 의해

타다 남은 유해를 수습해서 장례를 치르고,

훗날 대한제국 건국 이후

'명성태황후'로 추존되죠.

그녀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4남 1녀의

4명의 왕자와 1명의 공주를 낳았는데요.

성인까지 살아남았던 자식은 둘째 아들이었던

'순종'만이 살아남아서 조선왕조 마지막 왕이자

비록 3년밖에 황제를 하지 못했지만,

대한제국 2대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인 순종의 황후도 민 씨죠.

 

 

 

 

 

고종의 부인중 한명인 순헌황귀비 엄씨

 

2. 순헌황귀비 엄씨

본명이 '엄선영'인 '순헌황귀비 엄씨'는

1854년에 태어나 57세의 나이로 사망한

고종황제의 후궁 중 한 명입니다.

명성황후의 시해로 인해서 후궁이지만,

황후나 마찬가지로 여겼던 후궁입니다.

당시 후궁 중 가장 높은 후궁이었죠.

 

명성황후에게 미움을 받아서 한 때 궁녀였던

그녀는 8살에 입궐을 했는데요.

다름 아닌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으로 있었죠.

이후 고종의 승은을 입게 되어 후궁이 되다 보니

명성황후의 미움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그래서 궐 밖으로 명성황후에게 쫓겨납니다.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사망하자 고종이

엄 씨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이복동생이었던 '영친왕'을 무려 그녀 나이

47살에 낳게 됩니다.

영친왕은 그의 이복형인 순종이 왕이 되자

황태자가 되고, 순종이 죽은 후에는

왕의 지위를 이어받지만,

일본 왕족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조선의 이 씨 성을 가진 마지막 왕이죠.

영친왕의 본명은 '이은'입니다.

 

그녀의 신분은 평민이었기 때문에

왕비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명성황후 사망 후 실질적으로

조선의 황후로 대우를 받았습니다.

사재를 털어서 여성교육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 양정의숙 설립과,

이화학당, 배재학당에 후원금을 보내

도움을 줬죠.

 

3. 영보당 귀인 이씨

'이순아'라는 본명을 가진

'영보당 귀인 이씨'입니다.

그녀는 궁인 출신으로 남편인 고종보다

무려 나이가 9살이나 많았던 후궁입니다.

고종이 명성황후를 중전으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좋아했던

후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정실부인인 명성황후와 아이를

가지기 전 '완화군'이라는 서자를

낳기도 합니다.

또한 이후 2명의 딸도 낳았지만 일찍 요절하죠.

그녀는 85세의 나이로 당시 상당히 장수했고,

훗날 종 4품 숙원을 거쳐 대한제국 이후에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이 되었습니다.

 

4. 귀인 장씨

'귀인 장씨'는 고종의 5번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친모입니다.

아시다시피 대한제국 황족들 중 유일하게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분이죠.

그녀도 궁녀 출신으로 고종에게 승은을 받아

명성황후에게 궁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대한제국 건국 후 종 4품 숙원을 거쳐

종1품 귀인으로 품계를 올려 받게 됩니다.

 

5. 내안당 귀인 이씨

'내안당 귀인 이씨'는 1847년에 태어나서

67세의 나이로 사망한 고종의

후궁 중 한 명입니다.

고종보다 나이가 5살이 많았던 연상이었죠.

그녀 또한 궁녀로 있다가 고종의 승은을 받고,

딸을 1명 낳게 됩니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아서 후궁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인 왕이 생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병을 이유로 궁밖 사가에서 지낸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6. 보현당 귀인 정씨

'보현당 귀인 정씨'는 궁인 출신 후궁입니다.

덕수궁에서 궁인으로 지내다 고종의 승은으로

후궁이 되고, 훗날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됩니다.

1943년 61세의 나이로 사망을 합니다.

 

복녕당 귀인 양씨

 

7. 복녕당 귀인 양씨

본명이 '양춘기'로 알려진 '복녕당 귀인 양씨'는

1882년에 태어나 1929년 46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 덕수궁 궁인 출신의 후궁입니다.

고종의 유일한 딸로 알려진 '덕혜옹주'의 생모죠.

남편이었던 고종이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딸인

덕혜옹주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을 비관하고 지내다가,

안타깝게 병으로 일찍 사망을 하게 됩니다.

 

신문에 실렸던 광화당 귀인 이씨

 

8. 광화당 귀인 이씨

'이완덕'이란 본명으로 고종의 후궁 중 한 명인

'광화당 귀인 이씨' 입니다.

1885년에 태어나 82세가 되는 1967년까지

당시로는 상당히 장수를 한 후궁이죠.

덕수궁에 13세에 들어가 세수간 나인으로

덕수궁 궁인으로 지내다 고종의 승은으로

왕자를 낳아서 종1품 귀인으로 책봉이 됩니다.

고종과의 사이에서 왕자 '이육'을 낳고,

이후 공주를 한 명 더 낳지만 모두 일찍 요절하죠.

귀인 이씨는 다른 고종의 후궁 중 한 명이었던

'삼축당 김씨'와 함께 살았다고 합니다.

 

고종의 후궁 중 한명인 삼축당 김씨 사진/오른쪽

 

9. 삼축당 김씨

'삼축당 김씨'는 본명이 '김옥기'로

1890년에 태어나 1970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종의 후궁 중 한 명입니다.

고종의 후궁이 된 궁중 나인 중 가장

어린 나이인 8살에 입궁하여 21살에

고종의 승은을 받아 후궁에 오르게 됩니다.

삼축당 김씨는 공식적인 '조선왕조

마지막 후궁이자 고종의 마지막 부인'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종이 세상을 떠난 뒤 광화당 이씨와 함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0. 정화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1871년에 태어나 6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궁 중 한 명입니다.

사실 정화당 김씨는 명성황후 사망 후에

고종이 황후로 간택하려 했던 여인입니다.

하지만 '춘생문 사건'이라는 친미,

친러의 관리와 군인등이 일본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고종황제를

궁밖으로 나오게 해서 친일들을

타도하고 새 정권을 수립하려고 했던 사건으로

조선의 새로운 황후로 간택이 되었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후궁이 되어버리고,

남편인 고종을 한 번도 실제로 만나지도 못한 채

고종이 세상을 떠날 때 유해로 상면했던 

안타까운 인생을 산 여인입니다.

당연히 고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습니다.

다른 후궁 중 한 명이었던 복녕당 귀인 양씨의

딸이었던 덕혜옹주가 결혼을 한다고 할 때

혼수로 노리개를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종의 유일한 공주인 덕혜옹주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10명의 황후와 후궁 외에

궁인 서씨,궁인 장씨,궁인 김씨가 있었는데,

더 이상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고종은 13명의 부인을 두었고, 그 사이에서

9남 6녀의 자녀를 두어 총 15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실제로 성인까지 생존한 자녀는 4명인데요.

순종과 의친왕, 영친왕, 덕혜옹주 4명만이

성인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고종과 왕비와의 사이에서 성인까지 살아남은 순종,의친왕,영친왕,덕혜옹주/왼쪽 위부터

 

비공식적으로는 사실 고종에게는

딸이 한 명 더 있었는데요. 

'이문용'이라는 이름으로 상궁 염씨가

낳은 딸로 딸을 낳은 얼마 후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상궁 염씨의 동료였던 임상궁과

고종의  인척들의 도움으로

평민 집안에 입양이 되죠.

훗날 고종의 딸로 인정받은 이문용 옹주

이후 양부모가 죽자 다시 임상궁과

함께 살게 됩니다.

이때 자신의 출생을 알게 된 이문용은

주변의  증언과 도움으로 고종황제의

딸로 인정을 받아 옹주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잔혹하고 힘든 시절이었던 

조선말기 왕의 왕비와 부인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역사적으로 힘든 시기였던 것처럼,

왕비, 후궁등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지는 못한

고종황제의 부인들의 고단하고 힘든 삶이

느껴지는 포스팅이었습니다.

이러한 굴욕적이고 힘든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힘을 기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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