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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의원 장관 대학설립자

by 40대 아재 2023.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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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가장 많이 보는 말이나 

화면은 내년 2024년 4월 10일에 있는

국회의원 선거인 총선에 대한 이야기로 

하루도 빠짐없이 듣고 보고 있는데요.

국민을 대신해서 행정부와 사법부와 함께

삼권분립의 중심으로 입법과 함께 국민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가장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선택받아 당선이나,

재선이 되도록 열심히 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오늘은 이런 국회의원 중 요즘은 덜하지만,

금남의 세계로 한참을 여겨졌던 국회의원 중

대한민국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여성

국회의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의원'은 누구일까요?

바로 '임영신'이라는 여성이 그 주인공인데요.

보통 임영신 박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엄청난 타이틀 외에 더 많은 엄청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우선 임영신은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인

당시 전라북도 금산군에서 19세기

마지막 해인 1899년 겨울인 11월에

태어났습니다. 호는 '승당'입니다.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승당 임영신 박사 모습

 

임영신 박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 외 다른 여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먼저 이것부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임영신 박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최초의 초대 상공부 장관'이기도 하며,

이로써 최초 여성 장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대학교죠.

'중앙대학교를 만든 설립자' 이기도 합니다.

'중앙대학교 초대 이사장'입니다.

그리고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이 있은 후 약 한 달 뒤인 9월에

'조선여자국민당'을 만든 당수이기도 하죠.

또한 '대한여자청년당' 단장을 맡았고,

대한여자청년당이 '대한부인회'로 통합되고,

8년간 '대한부인회 회장'도 맡았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임영신 박사는

현재 한국교직원공제회인 '대한교원공제회'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엔총회 최초 한국 여성 대표'로

총회에 참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1949년 선거에서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된 후

이듬해인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인 금산에서 재선에 성공도 합니다.

임영신 박사는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부통령 출마를 한 적도 있었는데요.

이때는 아쉽게 낙선을 해서 대한민국 최초

여성 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갖지 못했죠.

 

중앙대 설립자이자 최초 여성 장관 임영신 박사

 

임영신 박사는 사실 교육자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계시는 경우가 있는데요.

지금도 전주에 있는 '기전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인 '기전여학교'에 입학 후 졸업을 해서

천안에서 교사일을 하다가 1919년에 있었던

3.1 운동에 참가를 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이후 징역과 집행유예를 받은 후 나중에

협의가 없다는 판단결과 출옥을 하죠.

이후 임영신 박사는 일본으로 가게 됩니다.

일본 '히로시마기독여자전문학교'에서

2년간 공부를 하다 귀국을 했는데요.

이후 공주에 있는 여학교와 나중에는

'이화학당;에서 교사를 하게 됩니다.

 

그녀의 나이 34살이 되던 해인 1933년에

'YMCA'총무를 맡기도 하죠.

그리고 2년 뒤인 1935년에 여러 경영난과

운영이 힘든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해서

교장에 취임을 해서 본격적인 교육자의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리고 약 10년이 지난 1945년 광복 후

중앙보육학교를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편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세운 학교법인이 '중앙문화학원'으로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47년과 이듬해인 1948년

'중앙여자전문학교'에서 남녀모두가 다니는

남녀공학 대학교인 '중앙대학'으로 개편해서

1961년에 이사장으로 재취임을 하게 됩니다.

 

임영신 박사가 정부수립 후 첫 상공부 장관에

취임을 한 1948년 첫 출근에서 한 말이

지금도 기록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데요.

임영식 박사가 첫 출근 때 직원들 앞에서

한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 비록 앉아서 오줌을 누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랫동안 왜놈과 맞서 싸웠고,

또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서서 오줌 누는 사람

못지않게 뛰어다녔다.

그런 나에게 결제받으러 오기 싫은 사람은

지금 당장 책상을 정리하여 보따리를 싸라.

언제든 사표를 수리할 준비가 되어있다.

 

사실 임영신 박사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극히 남성 중심 사회였던 그 당시에

여성이었던 그녀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여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너무도 짙게 있던 시절이라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죠.

그래도 그녀는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 여성도, 서서 오줌을

누는 남자 못지않게 그 어떠한 일들을

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죠.

당시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봐도

대단한 마인드와 배포를 가진 것이죠.

 

중앙대 영신관 앞 임영신 박사 동상

 

서울 중앙대학교 캠퍼스에 가보면,

'할매동산'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이곳은 중앙대학교를 설립한 임영신 박사가

사망 후 안장이 된 곳입니다.

이후 2008년에 이곳에 기숙사를 짓기 위해

2009년 이장이 되었는데요.

'중앙대학교 영신관' 앞에 있는 임영신 박사

동상 아래에 화장 후 납골을 해서 이장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이자

최초의 여성장관 및 중앙대학교 설립자이며,

여러 단체의 회장 및 이사장등을 지낸

임영신 박사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오직 나라를 위한 희생과 독립운동 등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은 진정한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지금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 국민들을 대신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한데요.

현재 국민의 눈에 비친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이익에 눈이 멀어 서로 싸우고,

민심과 나라사정은 뒤로 내팽개친 채 오직

눈앞의 이익과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현재의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을 이제는

국회의원 스스로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국민들도 이제는 예전의 자신이 사는

지역 당과 관련된 사람을 그냥 뽑거나 하는

눈먼 국민들이 아니라는 것도 꼭 명심해서

국민 스스로 이제는 지금보다는 스마트하게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국회의원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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