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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사용했던 조선의 화학무기

by 40대 아재 2024.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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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한반도는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침략으로 인해 

참 많은 고난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는데요. 

일본과 중국,몽골등의 끊임없는 침략 속에서도 

우리는 그들에게 대항하며 살아왔죠. 

그런 침략에 맞서 싸우다보면 침략자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여러 무기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중 지금 생각해도 참 엉뚱하지만, 당시로는 

엄청난 피해를 상대에게 주었던 무기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무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조선시대 있었던 비몽포와 분포 모습

 

침략에 맞서 만든 무기들

 

한반도는 중국의 오랜 간섭과 침략은 물론, 

거란족과 말갈족,그리고 여진족의 몽골에서도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으며 침략을 받았죠. 

그럼에도 한반도에 가장 많은 억압의 세월과 

갖은 고통을 준 것은 일본입니다. 

수백 년 전부터 한반도를 차지할 욕심으로, 

온갖 악행과 만행을 저지른 일본은,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아간 

'임진왜란'이 대표적인 역사기록입니다. 

 

 

 

이런 오랜 주위국의 침략등으로 인해서, 

당시 조선이였던 한국은 그들에게 맞서 싸울 

여러 가지의 무기를 만들게 되는데요. 

대표적인 무기들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 목화수차

 

'목화수차'는 호랑이 모양으로 새겨진 나무 

조각상 속에 총 5 연장총을 장착한 무기입니다. 

'박종경'이라는 인물이 설계하고 만들었는데요. 

그는 순조 재위시절 훈련도감 대장을 지냈죠. 

그는 당시 얼마전에 있었던 '홍경래의 난'을 

제압한 뒤 조선에 있는 무기들에 대해서 굉장히 

열악하고,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여러 무기들에 대해 연구와 개발을 하게 되죠.

수년간의 연구를 거쳐 '융원필비'라는 책을 쓰고,

그 책에 설계도와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는

무기 중 하나가 바로 목화수차입니다.

 

목화수차의 설계도 및 전체 모습

 

● 신기전

 

'신기전'은 한때 영화로 나올 정도로 유명하고, 

잘 알려진 무기 중 하나인데요.

일명 조선 최고의 전설적인 무기로 알려졌으며, 

화약을 이용해 여려개의 화살을 쏘는 무기입니다. 

이 무기는 고려시대 유명한 발명가이자 장군인 

'최무선'이 처음 만든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신기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로켓 무기입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져 임진왜란에서도 큰 활약을 한 신기전 모습

 

● 비격진천뢰

 

얼마 전 뉴스에서 안타까운 소식 중 하나였던,

신병훈련소 안에서 수류탄 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훈련병에 대한 뉴스가 있었는데요.

주위에 있던 군간부도 함께 부상을 입었으며,

안타까운 젊은 생명이 사라지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참 슬픈 뉴스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류탄과 비슷한 것이 임진왜란 중에

만들어서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게 많은

피해를 준 무기가 바로 '비격진천뢰'라 불리는

혁신적인 무기였는데요. 

 

당시 혁신적인 무기로 엄청난 효과를 본 비격진천뢰

 

도화선 방식의 지연신과폭탄으로 보시면 됩니다.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이 한창이였던

선조 25년에 '이장손'이란 화포장이

만든 포탄이죠.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과 조금 차이는 있습니다만,

이 포탄을 쏘기전에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에

발사를 하게 되면 적군에게 좀 더 가까이

날아간 뒤, 도화선이 다 타면서 폭발을

하게 되는 무기였죠.

실제로 비격진천뢰 안에는 엄청난 철편들이 터져 

지금의 수류탄과 비슷한 형식으로 비산하여

퍼지죠. 실제로 비격진천뢰로 적군에게 뺏긴 성을

탈환하는 엄청난 성과를 낸 주인공이기도 하죠. 

 

 

 

살상 기능은 없던 조선의 화학무기

 

본래 무기라 함은 전투나 싸움등에서

살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무기라는 본래의 기능을 벗어났지만, 임진왜란 시 

왜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구조나 설계를 통해 만든

거창하거나, 복잡한 무기가 아닌,

지극히 간단한 무기였죠. 

그 무기의 이름은 바로 '분포'라 불리는

무기였습니다. 

 

실제 사용했던 무기인 분포 모습

 

우선 분포에 대한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대나무로 만든 통에 1년 넘게 묵힌 사람의 똥을 

집어넣은 후, 대나무 내부 직경과 비슷한 크기로 

천이나 솜등을 나무 막대기에 고정을 해서, 

대나무 안에 들어 있는 똥을 입구 쪽 반대방향에 

작은 구멍을 내어 마치 주사기처럼 똥을 발사하는 

너무나도 단순한 구조의 무기였습니다. 

 

주사기 방식으로 대나무에 똥을 넣어 쏘는 무기인 분포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군사는 대략 17만 명

정도이나, 정규 정예군 1만 명을 제외하면,

지금의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처럼 1년에

2개월 정도만 훈련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이었죠. 이런 이유로 무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의 군사들 모습이었죠. 

그래서 일부에서 농사도구를 무기로 사용했지만, 

그마저도 아주 열악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농사를 짓던 대부분의 당시 조선 국민들은 

매년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사람의 인분을 

모아서 땅에 뿌려 지력을 높히며, 

동시에 거름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요. 

이때 1년 이상의 인분을 모아 삭힌 것을 가리켜 

'금즙'이라고 불렀습니다. 

좀 쉽게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냄새와

가스로 감히 냄새 자체를 맡는 것이

고문일 정도로 엄청난 일명 똥 중의

똥이였던 것이었죠. 

마땅한 무기가 없었고, 무기를 잘 다루지 못했던 

당시 조선인들은 이것을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고, 

간단한 원리와 쉬운 사용방법으로

많은 군사들이 실제로 임진왜란등에서

많이 사용을 한 무기입니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마치 화학무기 개념이었죠. 

 

인분을 1년 이상 삭힌 금즙과 당시 똥통이라 불렸던 나무통 모습

 

사실 조선에는 실제로 화학무기 개념으로

사용하던 엄청난 무기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비몽포'와 '찬혈비사신무'라는 이름을 가진

무기로, 사용을 하게 되면 너무 잔인하고

피해가 커서, 사용여부를 결정하는 당시

조정에서도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독한 무기였죠. 

실제로 임진왜란시 승병으로 불렸던 스님들이 

왜군에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요. 

비몽포와 찬혈비사신무 모두 독으로 꽉 채운 것을 

화약등과 함께 사용해서 독성물질이

비산이 되면서 근처에 있는 적군들을

살상하는 무기였죠. 

 

왼쪽 비몽포와 오른쪽 찬혈비사신무 그림 모습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분포는 말 그대로 

분뇨를 발사한다는 의미의 무기인데요. 

대단한 무기는 아니였지만, 분포의 효과는

말 그대로 적들에게는 엄청나게 괴로운 무기였죠. 

피스톤의 압력과 같은 이론으로 비교적 먼 거리의 

적들에게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를 

뿌릴 수가 있었으며, 그 냄새와 역겨움으로 

적군들은 싸울 의지가 없어져 퇴각하기도

했습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신발 바닥에 묻은

똥이 조금만 묻어도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고

더럽다고 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그 당시 1년 넘게 삭힌 인분을 얼굴이나 몸등에

직접적으로 뿌려진다는 것을 상상해 보신다면

그 효과는 정말 막강했죠. 

 

논이나 밭에 뿌리기 위해 인분을 담아 보관하거나 이동했던 통통과 지게 모습

 

어린아이들이 기저귀에 똥을 싼 후에 

제때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생기는 질병이 

우리는 흔히 '똥독'이라고 부르는데요. 

통독은 말 그대로 몸속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세균과 효소,쓸개즙 등의 결합물로 이루어져 

피부에 닿게 되면 염증으로 번지는 것인데요. 

실제로 해당 부분이 빨갛게 부어오르거나, 

심할 경우에는 사망도 할 수 있는 질병이죠. 

 

 

 

당시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인 임진왜란 속에서 

많은 전투로 몸에 상처가 있던 왜군들에게는 

분포를 통한 지독한 인분은 그들에게 있었던 

상처에 염증을 일으키는데에 큰 영향을 주죠. 

실제로 당시 왜군들 중에서는 분포로 인해서 

상처가 곪아 염증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일본으로 

돌아가거나, 죽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지죠. 

정말 말 그대로 일종의 화학무기였던 것이죠.

 

또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서, 

샤워나 씻는 것들에 대해 굉장히

어려웠던 환경으로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지독한 냄새로 인해 

싸울 의지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무기였던 것이죠. 

이 분포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 군사 정보가

기록된 '민보의', '풍천유향'등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사실 아무리 간단한 무기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애국심이 없었다면,

분포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농사를 위해 사용했던 인분을 사용해서, 

간단하고 사용하기 쉬운 분포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고된 시간이 있었는지도 우리는 

그 부분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하죠. 

사람의 인분까지 쓰면서 나라를 지키던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후손인 우리들도 

힘들게 지킨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지켜내야겠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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