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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악의 사망 사고 TOP5

by 40대 아재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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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 2022년 10월에도 수백 명의 안타까운 

참사가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는데요. 

사건이나 사고들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아도, 

안타까운 사연과 이유로 발생하는 것은 

정말 전 국민들을 슬픔으로 가득차게 만들고, 

해당 당사자와 남은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통곡의 한을 가지며 힘들게 살아갈텐데요.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사망 사고 

TOP5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최악의 사망 사고 TOP5

 

최악의 사망 사고 5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 사고 5위는 

1993년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위도라는 섬으로 

왕복 운행을 하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입니다. 

당시 이 사고로 무려 292명 이라는 사망자 수는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전 

한국에서 4번째로 많이 사망한 사고였으며, 

전라북도에서는 역대 가장 많이 사망자가 나온 

최악의 사망 사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해훼리호 침몰 전 모습

 

이 사고는 당시 뉴스를 본 국민들이 유난히도 

잘 기억을 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당시만 해도 방송에서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그런 기술이 나오기 전 방송이기 때문에 

바다에 떠다니는 사망한 분들의 시체가 그대로 

방송에 노출되었던 사고 이기도 하죠. 

침몰사고의 원인은 너무도 2가지로 요약되는데, 

당시 서해훼리호의 정원은 221명 가량이였으나, 

사고당시에는 무려 362명이 탑승해 있었죠. 

그리고 사고가 난 1993년 10월 10일 해상날씨는 

정상적으로 배가 운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도가 

높고 바람이 센 상태로 운항을 하면 안 되었지만, 

당일이 일요일인 이유로 인해 다시 육지로 가려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험한 날씨에도 무리한 운항을 

여객사 입장에서는 멈출 수가 없었던 상황이였죠. 

 

침몰하는 서해훼미호 당시 모습

 

전 개인적으로 이 사고가 나기 전 군산에 있는 

당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던 길이였는데요. 

마침 군산에 있는 한 공설운동장 근처를 지나 

횡단보도에 멈춰선 채 밖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많은 응급차들이 이 공설운동장으로 오는 걸 

실제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사고가 난 오후로 기억을 하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이때 사망한 사람들을 

한 번에 모아놓기 위해서 당시 군산에 위치한 

공설운동장으로 사망자를 이동시킨 것이었죠. 

나중에 이곳은 사망자의 임시안치소로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우연히 군산에 사는 친구를 보기위해 

공설운동장 앞 신호대기를 하면서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을 했던 것이였죠. 

개인적으로도 정말 잊혀지지 않는 최악의 

사망사고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최악의 사망 사고 4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최악의 

사고 4위는 바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며, 

지금도 많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게 만든 사고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바로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학생들이 

어른들의 욕심과 무능한 대응 등으로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학생과 일반인을 포함한 299명의 

사망자와 5명의 실종자가 발생을 하였고, 

5명의 실종자는 결국 끝까지 찾지 못했죠. 

그렇게 따지면 총 304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발생을한 사고입니다. 

 

최악의 해상사고이자 안타까운 사고인 세월호 침몰당시 모습

 

당시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여객선으로, 

제주도로 평생에 한번 있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던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위해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단원고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탑승해 있었죠. 

그중 학생 250명이 사망하고,

교사는 11명이 사망했죠. 

일반인은 총 43명이 사망을 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세월호가 왜 침몰을 했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만, 

분명한 건 안전불감증과 함께 이 사고를 숨기고, 

밝히려는 과정에서 엄청난 국민 갈등이 있었고, 

부실하고 무능한 사고 대처와 겹쳐지면서,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안타까운 생명들과,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사람들이 차가운 

바다속으로 들어가 사망을 한 것이죠. 

 

 

침몰된 세월호는 당시 20년이 된 여객선이었는데요. 

사고가 나기 한해 전인 2013년부터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운항을 시작하게 됩니다. 

세월호는 오랜 시간동안 운항을 하면서 꽤 많은 

개조를 거쳐 당시 세월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아는 침몰 이유로는 

물을 채워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공간을, 

차량이나 짐을 싣는 공간으로 바꾸게 되는 바람에 

무게중심이 높아진 세월호가 비정상적인 조타로 

침몰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죠. 

이유가 어찌되었던 결국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안전을 담보로 배의 개조를 통한 침몰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내용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종자를 포함해 304명이라는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사고가 대한민국 

최악의 사망사고 4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와 구조활동을 하는 모습

 

최악의 사망 사고 3위

 

1970년 겨울인 12월 15일 새벽 전남 여수에서 

불과 35km 떨어진 해상에서 당시 제주도를 출발해 

부산으로 운항을 하는 정기 여객선 남영호가 

추운 겨울바다로 침몰한 사고가 있었는데요. 

이 사고가 바로 대한민국 최악의 사망 사고 3위인 

'남영호 침몰사고'입니다. 

이 사고는 당시 부산과 제주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남영호에 탑승한 338명 중 12명을 제외한 326명이 

모두 사망하는 역대 최악의 사망 사고 중 하나인데요. 

 

최악의 해상사고로 기록된 남영호 당시 모습

 

남영호는 최대 정원이 321명으로 매달 10회씩 

제주도의 서귀포와 부산을 오가는 노선을 1968년 

3월부터 정기적으로 운항을 하던 여객선입니다. 

남영호에는 제주도에서 키운 감귤을 팔기위해 

부산으로 가는 상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배였죠. 

그런데 이날은 풍랑이 선박이 운항하기 어렵다가, 

조금 잦아드는 바람에 운항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좀 더 많은 감귤 상자가 실렸죠. 

이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감귤을 담는 상자가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게가 무거웠고, 

한 번에 좀 더 감귤을 싣고 가기 위한 남영호의 

승무원들은 당시 적재 허용량의 4배가 넘는 

540톤을 싣는 엄청난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과적으로 인해 남영호는 한쪽으로 약 15도 

기울어진 상태로 출발전 항구에 있었고, 

서귀포를 떠나 여수 근처를 운항하던 남영호에 

심한 바람이 몰아치면서 배 위에 실려 있었던 

감귤박스가 쏟아지면서 결국 침몰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점점 바다속으로 가라앉게 됩니다. 

그런데 326명 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사망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겹쳐져서 발생을 한 것인데요. 

그건 바로 어이없는 구난신호 무시와 선박등의 

운항관리에 엉망인 당시 체계가 원인이 되었죠. 

 

침몰한 남영호와 당시 사망한 시신을 수습하는 군인들

 

남영호에서 보낸 조난신호를 마침 일본 국적의 

한 선박이 받게 되면서, 근처에 있던 일본 어선과 

남영호가 침몰한 곳으로 가면서 구조를 합니다. 

이때 일본 국적의 선박이 우리나라에 조난신호를 

다시 보내게 되지만, 여전히 당시 해경은 무시했죠. 

나중에 우리나라 해경이 사고를 확인하고 현장에 

배를 타고 구조에 나선 시간은 남영호가 침몰한 지 

무려 12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하게 됩니다. 

추운 12월에 차디찬 바닷속에서 끝까지 구출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은 단 12명만 살아남았고, 

326명은 모두 차가운 바다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죠. 

 

 

이 사고가 1970년대로 당시의 한국은 이제 겨우 

배고픔을 이겨내고, 산업화를 위한 많은 노력등이 

나라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던 시기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침몰한 선박을 인양을 해서 그 안에 

남아있는 시신들이라도 찾기 위한 노력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안타까운 

사고로 기록이 되어있는데요. 

실제로 300여구의 시신은 이후 찾지 못한 채로 

그대로 사건은 덮어져 버린 안타까운 사고였죠. 

 

최악의 사망사고 2위

 

비극의 한반도 전쟁인 6·25 전쟁이 진행중이던, 

1953년 1월 9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서남쪽 약 8km 부근의 해상을 운항하던 배는 

전남 여수항에서 출발해 부산으로 오던 선박이었죠. 

당시 그 선박에 탑승해 있던 338명이 갑자기 선박의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침몰을 하게 됩니다. 

바로 '창경호 침몰 사고'입니다. 

이 사고는 대한민국 역사상 해상에서 발생한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최악의 사망사고죠. 

대한민국 전체 사망 사고 중에서도 현재까지도 

2위에 기록이 되어 있을만큼 엄청난 사고였습니다. 

 

1953년 추운 1월에 침몰한 창경호 당시 사진모습

 

한국전쟁이 끝나기 약 반년 전인 1953년 1월에 

당시 정원 240명의 창경호는 화물적재량이 100톤인 

그리 크지 않은 여객선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해안에서 8km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곳이었고, 

갑자기 침몰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한 

이유가 공식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습니다만, 

탑승인원에서만 봐도 100명 가까운 인원을 초과했고, 

당시 구출된 단 8명의 승객과 관련자에 의하면, 

초과된 인원을 탑승시키고, 더 많은 짐을 싣었는데, 

마침 높은 파도가 창경호의 옆부분을 치면서, 

침몰을 한 것으로 알려져만 있죠. 

결국은 다른 해상 침몰사고의 대부분의 원인인 

과적과 초과인원 탑승 등의 기본적인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 침몰의 원인이 된 것이죠. 

이 사고로 무려 330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최악의 사망사고 1위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망사고를 아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실텐데요. 

바로 1995년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당시 고급 백화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사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사고로 인해서 

무려 502명이라는 사망자가 발생을 했고, 

6명은 끝까지 찾지 못한 엄청난 사고였죠. 

이 사고로 다친 사람만 1000명에 이를 정도로

당시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은 역대 최악의 

사고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히지 않는 사고입니다. 

 

대한민국 최악의 사망사고이자 참사인 삼풍백화점 붕괴 모습

 

1995년의 대한민국은 굉장히 경기도 좋았고, 

삶의 질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올라갔던 시기죠. 

또한, 군사정부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20세기 최고의 번영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고급 상품들이 많은 

백화점을 찾는 것이 일상화가 되던 시기이며, 

지역적 특성상 지금도 강남 3구 중 하나인 

서초구라는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곳으로, 

당시 삼풍백화점은 여유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처음에는 바로 옆 삼풍아파트의 

대단지 종합상가로 설계되어 있었는데요. 

종합상가로의 모습이 거의 완성이 될 무렵에 

해당 건물의 건축주이자 삼풍그룹의 창업주인 

'이준'은 갑자기 백화점으로 용도를 변경합니다. 

이때 시공사가 우성건설이였는데요. 

공사가 예정되어 있던 4층 건물 위에 또다시 

1층을 더 지어서 5층 건물로 요구하는데요. 

이때 우성건설은 그렇게 할 경우 붕괴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게 됩니다. 

그러자 삼풍그룹 회장 이준은 자신의 계열사인 

삼풍건설산업에게 시공을 맞기게 됩니다. 

이것이 삼풍백화점 붕괴의 시작이 된 것이죠. 

 

이때 무리하게 대들보가 없이 기둥으로만 

위아래 하중을 버티는 구조로 시공을 했고, 

제대로된 건축규정을 지키거나, 이행하지 않아 

결국은 부실공사로 삼풍백화점이 지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훗날 삼풍백화점 붕괴 후 전문가들의 

붕괴 원인을 알아보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삼풍백화점 건물이 몇 년간 버텼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정도라고 하기도 했죠. 

사실 삼풍백화점은 준공 후 부실공사에 대해서 

몇 번의 시정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붕괴라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모습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붕괴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만, 

가장 큰 원인으로 훗날 밝혀진 사실은 

당시 삼풍백화점 옥상에 에어컨 냉각탑 3대가 

총 87톤이라는 무게로 건물을 누르고 있었는데, 

정상적인 공사로 지어진 건물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이 상황이 부실공사로 가득한 

삼풍백화점에는 치명적인 붕괴 원인이 됩니다. 

 

냉각탑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근처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으로 민원이 굉장히 심했는데요. 

이 부분은 당시 삼풍백화점의 이미지와 함께, 

영업에 대단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어쩔 수 없이 냉각탑을 옮깁니다. 

이것을 주민들과 떨어진 방향으로 옮기게 되는데, 

정상적인 방법인 크레인을 사용해서 옮겨야 하는데, 

이 비용마저 아낀다는 생각으로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넣어 옥상에서 끌고 가는 방법으로 옮기죠. 

이것은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 정도로 완전히 비정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 냉각탑 이동으로 인해 옥상 바닥은 물론이고, 

그나마 각 층을 버티고 있던 기둥들에 무리를 줘서 

약하디 약한 기둥과 함께 바닥이 그대로 내려앉는 

대참사가 발생을 한 것이죠. 

결국은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익을 내려는 욕심과, 

건물의 안전과 사람들의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안전불감증이 더해져 생긴 참사라는 것입니다. 

당시 삼풍백화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하면, 

전날부터 굉장히 이상한 소리가 건물에서 발생했고, 

지붕은 철근이 솟아오르는 현상들이 목격되었죠. 

 

이 사실이 백화점 내부에 있었던 여러 사람들과, 

당시 이곳에서 영업을 하던 수많은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신고로 당시 삼풍백화점의 

건물과 관련된 직원들은 임원진에게 보고를 했고, 

급하게 대책회의를 하게 되는데요. 

이때만 해도 삼풍백화점의 영업을 중단을 하고, 

정확한 상황과 중대한 결함에 대한 전면적이고, 

제대로 된 보수를 해야 했었어야 했지만, 

붕괴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경영진의 명령으로, 

영업정지를 하지 않은채 단순한 보수공사만을 

시행하기 되면서, 결국은 엄청난 사고가 발생하죠. 

 

붕괴 전 삼풍백화점 모습

 

이때 삼풍백화점 붕괴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고, 

영업정지 후 제대로 된 보수공사나 철저한 

사고예방의 전면적인 재시공등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았죠. 

결국 백화점의 영업은 경영진으로 인해 여전히 

계속해서 이뤄지게 되었는데요. 

결국 골든타임은 지나가게 됩니다. 

붕괴 직전 백화점의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 

굉장히 습하고 더운 공간이 되버리는데요. 

이것이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을 피한 

고마운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에어컨이 고장나서 더운 백화점을 나온 사람이 

당시 상당히 많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죠. 

이때 에어컨이 고장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붕괴와 함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최악의 사망사고 대부분은 

안전불감증과 자신들이 이익에만 몰두하는 

정신 나간 모습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이죠. 

이런 참사나 사고가 발생한 뒤 언제나 주위에서 

흔하게 듣는 말이 바로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는 

말 그대로의 선량하고 착한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 지금과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사회에서 

언제 또 어떤 일이 발생하지 모르는 일이죠. 

 

과거 많은 참사와 사건·사고를 통해서, 

좀 더 나은 시스템과 체계로 바뀐 것은 맞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일부 자신의 이기적이고, 

못된 이익만을 쫒는 사람들로 인해 또다시 

이런 사고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시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소수 사람들의 나쁜 

욕심과 이기심으로 희생하는 일이 절대 

발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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