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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전설의 생활기록부 출석현황

by 40대 아재 2022.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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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요즘은 초등학교인 이름이 저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국민학교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있겠지만, 당시에는 학교에 빠진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상당히 엄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몰래 학교에 빠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상이었죠.

1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아야 받는 상인

개근상과, 한번 빠지면 받는 정근상이 있었습니다.

 

제 껀 아닙니다

 

개근상과 정근상... 이 글을 쓰면서도 추억 돋습니다.

암튼 40대 중년아재는 국민학교 6년간 개근상을

받았고, 중학교 때에는 2년간 개근상을 받고 1년은

받지 못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그랬습니다. 엄연히 따지면 병가였죠.

지금도 물론 학교에 빠지면 안 되지만, 저희 때에는

유난히 학교에 빠지는 것이 굉장히 큰 행사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들이 용납이

안 되는 것이고, 학교 분위기나, 사회 분위기가

학교에 빠지는 거 자체에 부정적인 느낌이 많아서

암튼 학교에 빠지는 건, 당시로는 어려운 일이고,

상당히 부담되고, 힘든 일이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갑니다.

고등학교 첫 방학인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이었죠.

저는 일주일 정도 남은 방학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짜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동네에 생긴 수영장에 가보자.'

'오래간만에 할머니 댁에 가서 인사 좀 드리고 와야지'

'롤러장이 새로 생겼던데, 거기 한번 가볼까'

'아버지 일을 좀 도와 드려야겠다. 하루라도'

'하루 종일 뒷산에 가서 먹을 거 사 가지고 먹고,

잠이나 실컷 자고 오자. 학교 가면 못 자니깐'등의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계획을 짜고 그다음 날인 월요일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당시 건설회사를 하시고 계시던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2층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은 1층에 사셨고,

형과 저는 2층에서 살았습니다.

2층 계단으로 내려가서 수립했던 계획 중 하나인

수영장에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머니가

호박 등의 야채를 말리시고 계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제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 너 개학 다음 주 맞지? 니 또래 너 학교 교복 입고

애들 학교 가던데? 아침에 보니깐?"

"예?. 다른 학교겠죠. 다음 주 월요일 개학이에요."

전 어머니께 새로 생긴 수영장에 다녀온다고

전날 말씀을 드려서, 조금 늦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준비를 하고 나가던 참이었습니다.

"다녀올게요. 조금 늦을 수도 있어요."

그땐 참 수영장에 사람이 왜이리 많았는지..

"어. 알았다. 물 있어서 미끄러우니 뛰지 말고."

"네." 저는 새로 생긴 수영장이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생긴 걸 알고, 당시 수영을 좋아해서

꼭 한번 가야겠다 생각을 하던 중 드디어 오늘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도착을 해서 옷을 갈아입고, 야외 풀에 나가보니,

새로 생긴 티를 팍팍 내는 새 거 냄새와 시설들이

나를 반겼죠.. 하늘에는 만국기를 굉장히 많이

걸어놨는데, 왜 예전에는 뭐만 하면 만국기를 그렇게

많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걸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영장은 큰맘 먹고 한 번씩 갈 수 있는

곳이었고, 용돈을 좀 모아야 갈 수 있었죠.

한참을 수영하고, 간식도 사 먹고 피곤 해질 때쯤

되니, 어느덧 저녁때가 가까워졌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애들이

가방을 메고 하교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저기는 이번 주부터 개학인가..ㅋㅋㅋ'

조금은 더 긴 방학을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왠지 기분이 좋더군요.

다음날은 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고, 수영을 하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은 할머니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시외로 40분 정도 가면 할머니댁에

갈 수 있는데, 해마다 갔던 터라 이번에도 간 건데,

이제 고등학생도 되고 하니, 어린 사촌동생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좀 뻘쭘하고 해서 혼자 잠깐

할머니만 뵙고 오려고 억지로 방학이 끝날 무렵으로

잡았습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여기 어머니가 싸주신 건데,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갖다 드리라고 해서."

"아이고. 내 강아지!! 얼른 들어가 밥 먹자."

밥 이던, 뭐가 되었든 할머니 맘에 들만큼 먹어야 하죠..

할머니에겐 모든 손주들은 다 강아지로 불렸습니다.

그중 한 강아지였죠. 전.

할머니 밭일을 조금 도와드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고 나니 금방 늦은 오후가 돼서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몸을 싣었습니다.

오늘 길에 완전 시골 고등학교가 보였는데,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있더군요. 전 생각했습니다.

'시골이라 방학도 일찍 끝나나, 고생한다.ㅋㅋ'

전 집에 와서 어머니께 할머니가 주신 야채, 채소 등을

전해 드리고, 2층 제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을

침대에 맞기고, 조금 있다가 저녁을 먹고 다음날

계획인 롤러장에 가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너 개학 다음 주 맞지?"

아침을 먹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 제게 어머니가

다시 여쭈셨습니다.

"네. 다음주 월요일에 개학요. 왜요?"

"아니. 너네 아빠가 이 근처 학교들 다 개학을

해서 아침 일찍 학교 가고, 저녁엔 하교하고 그런데,

왜 넌 학교 안 가냐라고 하셔서."

"에이. 학교마다 좀 다른가 보죠. 다음 주 맞아요."

"어. 알았다."

전 롤러장에 가는 날이기 때문에 좀 편한 옷을 입고,

버스를 타고 롤러장으로 향했습니다.

롤러장은 당시 저희 중, 고등학교 때 여자아이들을

실컷 볼 수 있었고, 실력이 있는 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요즘 말로 썸도 탈 수 있는 희망과

환상의 공간이었죠. 사실 이곳에 온건 당시 2번째

였었는데, 주말에 오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깨빵만

하다 온 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방학이더라도,

평일은 좀 사람이 없을까... 해서 오게 된 겁니다.

저는 이쁜 여자아이 좀 와 있어라... 하는 생각에

입구로 기분 좋게 들어갔습니다.

이래야 하는데...뭥미...

 

그런데... 그 넓은 롤러장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5~6명의 아이가 롤러 교습을 받는지, 한쪽에서

배우고 있고, 아예 텅텅 비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신나는 음악에 꽝꽝 대면서 틀어져 있던 노래도

잔잔한 노래로 어느덧 바뀌어 있었습니다.

'뭐지... 쉬나... 공사하나...'

전 롤러를 빌리기 위해 직원에게 가서 물어봤습니다.

"여기 뭔 일 있어요? 사람이..."

"아.. 개학도 하고,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이 없어요. 타이밍 잘 맞췄네.

한가롭게 실컷 타고 가면 되겠네."

직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전 그래도 왔으니 이번 기회에 연습이나 실컷 해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낫다 싶어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오후 3시쯤 롤러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도서관에 가서 마지막 날 뒷산에

가서 읽을 책을 하나 빌릴 목적으로

도서관에 잠깐 들렸다. 집으로 향했습니다.

얼마나 탔는지, 몸이 욱신 욱 시 거려서 가는 길에

빵과 우유를 사서 집에 도착 후 어머니께 저녁

이걸로 먹고 좀 쉬겠다고 하고, 2층 방으로 갔습니다.

내일은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용돈을 받기로

한날이라 일찍 자야 했죠.

건축회사를 하시는 아버지는 새벽에 출근을 하시는데,

저도 같이 나가야 했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아버지와

같이 아버지 차를 타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건축현장에서 저에게 나무에서 못을 뽑아서

한쪽에 나무를 쌓아놓면 되는 간단한 일이긴 한데,

당시 하루 일당을 4만원 주신다고 하셔서 하루일당

이면 거의 한 달 용돈과 맞먹는 액수였기 때문에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에겐 4만원은 큰 돈 이였다.

일명 노가대였죠. 아버지는

현장이 여러 개 있으셨는데, 왔다 갔다 하시며,

저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아버지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라고

하시더군요. 아버진 술을 한잔 드시고 오신다고

하시면서, 제게 그 자리에서 4만 원을 주시더군요.

'앗싸...' 당시 4만 원은 고등학생인 저에게 큰돈

이었습니다. 이제 내일 하루 남은 방학을 오롯이

편하게 쉬기 위해 집에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전 방학 마지막 날인 그날에 계획인

뒷산에 가서 실컷 먹고 자고 쉬고 오려고 맛있는

과자, 빵, 음료수를 어제 아버지께 받은 돈으로

가게에 가서 산 다음에 어머니께 돗자리 하나

빌려서 뒷산으로 오전 10시쯤 갔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어릴 적부터 놀던 곳이라 지리는 훤히 알고 있었고,

돗자리 깔고 누워 있기 좋은 곳을 알기에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사온 음료수와 과자. 그리고 빵 등을

먹으며, 방학의 마지막을 아쉽지만, 그렇게

보냈습니다.

사실 동네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전부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른 학교는 개학을 했다는 말씀을 하셔서

괜히 약 올리는 거 같아서 그 친구들에겐 이야기를

안 하고, 혼자서 그렇게 5일 동안 계획을 세워서

혼자 돌아다닌 것이었죠.

일요일 저녁. 이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교복도

오래간만에 다려놓고, 가방을 챙기고, 그렇게

개학 첫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가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한 4~5명의

반 친구들이 제게 오더군요.

"야. 너... 살아 있었네!!. 너 인마."

왠지 부러워하는 친구...

"뭔 소리야... 피곤하다... 저리 가.."

그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더군요.

반장이 외쳤습니다.

"차려!. 경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흰 그렇게 인사를 하고 보통은 출석을 부르시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OO 말고 또 안 나온 사람 있나?"

그 OO은 바로 제 이름이었습니다.

"선생님 저 나왔는데요."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너. 이새ㄲ... 너 왜 학교 안 나왔어?. 집에 전화도

안되고. 응? 개긴 거야?"

저희때 선생님들은 하나씩 들고 다니셨죠.

 

당시 누구나 학교 선생님이라면 가지고 계시던

선생님 몸 반은 넘는 얇은 몸뚱이를 책상에 치시며,

제게 오시더군요.

"예? 학교에 나왔는데, 안 나왔다고 하시면..."

"너 인마 개학이 저번 주인데, 일주일 안 나오고

오늘 나온 거 아냐?... 뭔 일 있었어?.

암튼 너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와!"

그때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찰나에 개근상 못 받으면 부모님께 혼날 텐데...

라는 조금은 어이없는 생각도 나더군요.

사실은 그랬습니다. 날짜를 착각한 건 분명 제 잘못이

맞고요. 개학날부터 학교에선 이랬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에는 핸드폰은 아주 극히 일부 부잣집만

있었고, 삐삐는 있었는데, 전 그때 없었습니다.

집에 유선 전화 있는 정도였죠.

 

실제 개학날 학교(저로 따지면 수영장 간 날입니다)

 

첫날.(월요일)

담임선생님-OO 안 나왔다고? 알았다. 혹시 늦게라도

나오면 나한테 오라고 해.

전 수영장에서 수영했습니다.

 

둘째 날.(화요일)

담임선생님-또 안 나왔어? OO네 집 근처 사는 사람?

한번 가봐. 가보고 나한테 알려줘. 알았어?

그날 친구가 저희 집에 왔는데, 전 할머니 댁에

가 있다가 집으로 오던 길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밖에 계셨고, 어머니는 동네 이웃집에서

다른 동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계신 걸로 압니다.

 

셋째 날.(수요일)

담임선생님-OO집에 전화해보니 전화 안 받던데?

OO집 아는 사람 누구랬지? 너 오늘 다시 가보고

내일 알려줘라. 알았어? 뭔 일 있나 진짜... 참...

제가 롤러장 간 날입니다.

그날은 롤러장에 갔다가 바로 집에 왔으면 저희 집을

아는 친구를 만났을 수 있겠지만, 전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기 때문에 못 만납니다.

 

넷째 날.(목요일)

담임선생님-오늘 OO이 안 나오면 내가 직접 아침에

집에 가볼 테니까, 이 좌식 뭐야...

그날 담임 선생님은 1교시에 수업이 없으셔서

저희 집에 와봤다고 하십니다. 학교에 집 거리는

걸어서 15분 거리였기 때문에 오셨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다시 돌아오셨다고 하네요.

그날은 아버지 따라서 건설현장에서 용돈 벌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어머니가 시내에 있는

시장에서 5일장이 열린다고 해서 아침에 거길

가신 거라. 당연히 집에는 아무도 없었던 겁니다.

형과 동생도 모두 학교에 갔으니깐요.

 

다섯째 날.(금요일)

담임선생님-혹시나 OO 길거리나, 시내 쪽. 그리고

어디든 보면, 학교로 오라고 해라. 내가 오늘까지

안 오면, 다음 주에 다시 한번 OO 집에 가서

OO부모님 만나서 상의해봐야겠다. 학교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한놈이 갑자기... 참...

전 전날 일을 해서 받은 용돈으로 먹을 것 실컷

사서 뒷산에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담임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나니,

선생님께서 깊은 한숨을 쉬시면서 말씀하시더군요.

"너 5일 결석이다"

"아... 네..."

"내가 선생질 20년 만에 너 같은 놈 처음이다."

"아... 네..."

"부모님 아시냐?"

"아니요. 아시면 저 죽습니다."

"생활기록부 나오면 걸릴 텐데..."

"그때 가서 맞겠습니다."

"잊지 못하는 제자가 2명 있는데, 네가 세 번째가

될 듯하다."

"죄송합니다."

 

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결석이 5일 적혀 있습니다.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당~

 

이 글을 쓰기 전에 생활기록부를 찾아봤습니다.

아쉽게도 없어서, 혹시 인터넷으로 출력이나, 확인

할 수 있나 싶어서 알아보니, 2003년 이후는 조회와

출력이 되는데, 그전에 졸업을 한 사람은 직접 해당

지역 교육청에서 신청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것 때문에 평일에 고향에 내려가서 교육청에 가서

신청해서 받아오지는 못했습니다.

리얼 팩트고요. 전 지금도 왜 개학날을 착각을 했는지

정말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 사실은 아내와 아이에게 한 적이 있는데.

한마디 하더군요.

"전설이다. 전설의 생활기록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대단... 대박이다..."

이런 경우가 3년 정도 후에 다시 한번 생깁니다.

그 에피소드는 추후 다시 써서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전 고등학교 때에는 2학년과 3학년만 개근상

을 받았습니다.

제 기억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5일을 빠진 내용을

다 들으시고, 너무 어이가 없으셔서 전 맞지

않았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너무 어이가 없으셔서 아무말도 안하셨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으셔서

때리실 생각을 못하셨던 거죠.

나중에 조회나 출력이 되면 공개하겠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학창 시절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댓글로

같이 공유해주세요~ 한 번씩 재밌는 추억으로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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