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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중년 아재 추억 2

by 40대 아재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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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다 보면 가끔 추억의 뭐. 추억의 물건 등의
내용이 가끔 방송을 하는 걸 보곤 한다.
그럴 때면 돌리던 TV 리모컨을 가만히 옆에 놓고
한참을 쳐다보곤 한다. 우선은 정겹고 반갑다.
요즘 흔히 말하는 라테는 말이야 또는 왕년에는
뭐 이런 말들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본인은
될 수 있음 꼰대가 되기 싫어 그런 말은 의식하고
될 수 있음 안 하려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한편으로는 내가 나이가 먹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어릴 적 보고, 놀고, 가지고 있던
추억들을 하나씩 찾아본다.

달고나-우리 동네에서는 띄기 라고 했다.

달고나(띄기-지역마다 다름)는 국민학교때 정말

원없이 먹고, 띄어냈던거 같다.

본인 동네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달고나 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고 띄기 라고 불렀다.

항상 다니던 국민학교 정문 앞 오른쪽 한쪽 구석엔

이걸 팔던 아저씨와 붕어엿을 판에 번호를 놓고

종이에 적힌 번호를 뽑아서 상품을 따는 엿뽑기가 있었다.

띄기 아저씨는 지금 기억에 연세가 많으셨던거 같다.

그때 띄기는 1개에 50원 이였고, 좌판 한쪽엔

동그란 자석에 핀이 여러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핀으로 띄기의 모양대로 띄어내면 아저씨가 1개를

더주고(무한), 또는 띄어낸건 먹으면서 50원을 다시

돌려주는 일종의 게임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저씨는 항상 조금 큰소리로 우리들에게 호통 아닌

호통을 치셨는데, 그건 핀에 침 묻히지 말라는

것이였다. ㅎㅎ. 지금 생각해도 침을 묻히면

띄기가 수월하니, 당연한 것이였다.

필자가 띄기를 하기위해 하나주세요.하면

필자 얼굴을 보고, 말했다. 넌 그냥 오늘 한개만

하고 그냥가. 이유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투자를 통해 난 띄기 선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자가 가면 언제나 문전박대 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적고적은 용돈을 투자하여

긴 시간동안 수련한 결과였다.

그 띄기 옆엔 마치 쌍둥이 처럼 항상 같이 영업을

하시던 붕어엿 뽑기 아저씨가 있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띄기보다는 가격이 좀더

있었던거 같다. 여담이지만, 이곳에서도

운이 좋게 1등을 뽑아서 당시 필자몸 보다 더큰

붕어엿을 집에 들고와서 이빨썪게 그 큰걸 왜

집에 가져왔냐고 등짝스매싱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동네에선 굉장히 큰 엿들이 있었다.
1등 붕어엿을 뽑던 그 뽑기판

같은반 친구중에 학교 정문앞에서 문구점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말로 따지면 완전 인싸였다.

자기집에 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자기것인

것 마냥 자기 부모님 몰래 가지고 나와, 애들 앞에서

자랑하기 바쁜 친구였는데, 하루는 그 당시 아이들의

큰 관심사가 있었는데, 문방구에서 하는 뽑기가 또

있었는데, 다들 아실꺼라 생각된다.

1등이 라디오 였고, 2등이 공부할때 쓰는 조명이였는데,

지금도 정확히 기억을 한다.

1등은 그 문구점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가. 그리고

2등은 내가 뽑은 기억이 있다. 근데 여기에는 큰 함정이 있었다.

그 친구의 의지와 친구들의 꼬임으로 뽑기판 하나를

통째로 몰래 가지고 나와서 1등과 2등을 확인하고

우리만 아는 표식을 해놓고, 다시 가져다 놓은 후

모르는 척 학교가 끝난 후 문방구에서 뽑기를 해서

1등과 2등을 뽑아 상품을 받아왔던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당돌하고, 못된 짓이 였지만,

당시 받아왔던 조명은 공부할때 사용하면 되겠다고

부모님께 칭찬까지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뽑기판 또한 동네마다 다르다. 여기에 우리만 아는 표시를 ㅋ

그리고 그당시에는 놀이동산 등은 부모님들의

큰 의지가 있어야만 갈 수 있었고, 동네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이 놀이터 였던 당시에는 놀이기구가

없었던게 사실이다. 철봉이나, 얼마전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게임 에서 나오는 여러 게임중

땅에 그리고 하는 오징어마이(필자동네)나 하면서

놀았던 동네에 가끔씩 리어카 놀이기구를 가지고

오는 아저씨들은 완전 인기 만점 이였다.

우리동네는 말이 갈색 이였던거 같은데...

이 말에 올라타 한참을 위아래로 타고, 지금은 점핑장

이라고 말들을 하는 트램폴린(필자동네-벙벙)을

타면 세상 부러울것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무릎이 아리도록 탔던 기억이 있다

40년쯤 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조용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그리고 그 어떤 걱정도 없었던 그때가

그리워 지기도 하며, 당시에 젊으셨던 부모님 생각도 많이 난다.

곧 추석인데, 이번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좀더 맛있는거, 좀더 건강에 좋은거, 좀더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또 몇십년이 지나면, 그때 중년이 된 사람들은

아이폰 이나, 폴더블폰 을 가지고 필자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중년 시대상을 말하려나.ㅎ

-끝-

 

다음엔 우리 학생시절에 대해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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