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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을 가진 백범 김구 주치의 한국사랑

by 40대 아재 2023.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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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님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위인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건강을 위해서 곁에서 지킨

많은 주치의가 있었는데요.

그 주치의 중 파란 눈을 가진 인물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이였던 김구 선생님의 주치의

한명인 인물과 그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876년 황해도 해주목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 중 가장 유명한 분이죠.

이런 김구 선생의 건강을 위해 곁에서 지키던

많은 주치의가 있었는데요.

이중에는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 주치의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윌리엄 린튼'이였습니다.

 

윌리엄 린튼

 

윌리엄 린튼은 1891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나

굉장히 머리가 뛰어나서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는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어머니가 사망을 한 후에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래서 22살이 되던 1912년에 당시 일제강점기인

한국으로 선교사 활동을 하기 위해 오게 됩니다.

처음 온 곳이 전주와 군산입니다.

한국에 온 윌리엄 린튼은 한국어를 배우게 되고,

영어와 성서교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되죠.

그렇게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던 중 1919년에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한국의 편에서 3.1 운동을 후원하게 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외국의 언론과 접촉해서

독립을 위한 여러 활동을 지원했습니다.

일제경찰은 그가 3.1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로

그의 집과 교회를 수색하는 등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곁에서

주치의로서 김구 선생님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에서 노력과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윌리엄 린튼은 3.1 운동 후원뿐 아니라 당시에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혹독한 고초를

거치기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3.1운동 당시에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데

참여를 하고 해외에 홍보를 열심히 했죠.

그리고 훗날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에

국가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됩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에도 한국에 있었는데,

전주에서 성서학교를 운영하면서 대전에는

지금의 '한남대학교'인 당시 '대전대학'을

설립해서 교육에도 앞장섰습니다.

 

윌리엄 린튼과 그의 가족(부인,4 아들)

 

그는 전주와 군산에서 계속해서 선교활동과

의료활동 지원을 하던 중 '샬롯 벨'과 결혼을 하고,

4명의 아들을 두게 되는데요.

첫째는 ' 윌리엄 올더먼 린튼 Jr. '이고,

둘째 아들은 '유진 린튼', 셋째 아들의 이름은

'휴 매킨타이어 린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의 이름은

'토마스 드와이트 린턴'이죠.

 

많은 한국인의 생명을 구한 휴 린튼 군시절 사진

 

이중 셋째 아들인 '휴 린튼'은 엄청난 분인데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 미국으로 가서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을 하고

이때 태평양에서 잡힌 한국인들을 돌보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하죠.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굉장히 잘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1944년에 있었던

'펠레리우 전투'에서 일본군을 피해서 깊은 동굴에

숨어있던 한국인들을 유창한 한국어로 안전하게

동굴에서 나오게 해서 많은 목숨을 살리기도 했죠.

그는 이 일로 훈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전남 순천에서 결핵예방을 위한

여러 지원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세브란스 병원 의사인 인요한 교수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인 휴 린튼의 아들들도

굉장히 유명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분은 바로 우리도 잘 아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명한 의사로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하기도 한

영어 이름은 '존 올더먼 린튼'이 그 주인공이죠.

출생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전남 순천으로 이사를 가서 그가 쓴

책에서도 순천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고 있죠.

한국 이름은 '린튼'에서 ''이 한국어 ''과

비슷하여 현재 한국 이름은 '인요한'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특별귀화 1호' 이기도 합니다.

 

그의 둘째 형도 대단한 분인데요.

'스티브 린튼'인 둘째형은 한국이름이

'인세반'으로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외할아버지이자 윌리엄 린튼의 장인어른인

'유진 벨'재단을 이끌며 북한에도 여러 번 다녀오고,

북한 어린이의 배고픔과 인권을 위해서 지금도

굉장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대단한 분이죠.

 

윌리엄 린튼의 장인이자 인요한 교수의 증외부인 유진 벨

 

우리가 잘 아는 인요한 교수를 기준으로 하면

그의 아버지인 휴 린튼과 또 그의 아버지인

오늘의 주인공이자 백범 김구 선생님의 주치의

이자 선교사와 독립운동가지 후원한 윌리엄 린튼,

그리고 그의 장인어른이자 인요한 교수의

증외조부인 '유진 벨'까지 총 4대가

한국에서 수많은 도움과 애정을 가지고

헌신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생명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요한 교수의 자녀들까지 총 5대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요.

그분들이 한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한국과 한국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이 없도록 아시는 분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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