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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 노벨상 받다.

by 40대 아재 202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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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명한 유언에서 만들어진 상인 데요.

엄청난 스펙이나 학벌, 그리고 오랫동안

해당 연구결과나 행위가 인류에 엄청난

도움을 준다고 판단을 해서 수상하는

가장 유명하고, 가장 권위 있는 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벨상을 평범한 회사원이

수상을 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이 내용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노벨상 메달 모습

 

한국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유일하게 딱 1명 있는데요.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897년부터 무려 14번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었죠.

노벨상은 물리학, 생리학·의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으로 총 6개 부분으로

나뉘어 수상이 되고 있습니다.

 

노벨 박물관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관련 화면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 스웨덴과

노르웨이 연합 왕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매년 노벨이 사망한 날인 12월 10일에

시상식이 열리는데요.

노벨평화상만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시상식이 열리고, 나머지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국왕에게 직접

노벨상을 수여받습니다.

 

유일한 노벨상 2회 수상자인 마리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

 

이렇게 어마어마한 노벨상을 받는 것은

한 나라의 영광은 물론이고, 개인이

세계적인 인물로 기록되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이죠.

우리에게 '퀴리 부인'으로 알려져 있는

'마리 퀴리'는 사상 최초로 2번의 노벨상을

받은 인물로 기록이 되어 있지만,

어떤 한 부분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 걸고

연구와 끊임없는 노력을 하더라도

수상하기 쉽지 않은 노벨상은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시마즈 제작소'는 일본의 정밀기기 제조회사로

회사가 창업한 지 무려 150년이 넘은 오래된

일본의 제조회사입니다.

이곳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던

'다나카 고이치'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석사나 박사 출신이 아닌 지금까지 유일하게

'학사 출신 노벨상 수상자'입니다.

한마디로 대학 졸업해서 회사 다니다가

회사에서 연구해서 연구결과로 노벨상을

수상한 평범한 회사원이 받은 노벨상이죠.

그가 받은 노벨상은 '노벨 화학상'입니다.

 

민간회사 연구원으로 학사출신 노벨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

 

관련 학계와 전혀 관계가 없는 민간 회사의

민간 연구원이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은

사실 대학교수로 박사 학위 출신이었던

수상자가 있기는 했지만, 대학만 졸업한

학사 출신의 수상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다나카 고이치가 첫 사례였습니다.

그가 노벨상을 수상할 당시의 나이가

43세로 일본 내에서도 역대 2번째로 어린

나이에 노벨상 수상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조금은 슬프고 안타까운 가정사가 있는데,

그를 낳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바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유로 그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동생부부인 삼촌부부에게 맡겨져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후 정식으로 동생부부에 호적에 입양되죠.

그런 사실을 몰랐던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호적 초본에 자신의 이름이 입양으로 된 것을

그때 확인하고 모든 내용을 알게 됩니다.

이때, 잠시 충격으로 방황을 했다고 전해지죠.

 

일본 미야기현 세다이시에 위치한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교인 '도호쿠 대학'에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하게 됩니다.

이후 앞에서 소개해드린 그의 회사 시마즈 제작소

에 입사한 후 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죠.

그가 시마즈 제작소에 입사를 한 지 불과 2년이

지난 1985년에 그는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

이라는 기술을 개발을 하게 됩니다.

연성 레이저 이탈기법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거대 분자의 질량을 측정하는

분석기법으로 생물학에서도 아주 획기적으로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었습니다.

입사를 한지 불과 2년 만에 엄청난 기술을

개발을 해 낸 것이었죠.

이 기술이 다른 엄청나고 유명한 기술처럼

한 번에 성공을 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으나,

그가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 진급을 원치 않고,

계속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죠.

 

한일 월드컵이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여운이 지나갈 무렵인 2002년 10월에

다른 여느 날과 다름없이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를 하고 있던 다나카 고이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처음 받은 전화는 회사 자체에서 받은 전화인데,

15분쯤 지난 후에 중요한 전화가 올 예정으로

꼭 받으라는 내용을 전달해 주었죠.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다나카 고이치는

회사에게 알려준 대로 15분이 지난 후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어를 하는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였는데요.

처음에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근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많은 영어단어 중 '노벨'이라는 말이 귀에

여러 번 들렸다고 합니다.

이후 전화가 끊기자마자 그가 다니는 회사로

엄청나게 많은 전화가 폭주하게 됩니다.

그 전화는 모두 자신을 찾는 방송사와

신문사의 기자들이 전화를 한 것으로, 

다나카 고이치의 노벨상 수상을 확인한 뒤

회사로 그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이죠.

실제로 당시 시마즈 제작소에는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총 3명 있었습니다.

평소 유명하지도 않았고, 민간 회사에서

노벨상이 나왔다는 정보를 습득한 방송사와

여러 신문 기자들이 그가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회사로 전화를 한 것이죠.

 

그도 처음에는 같은 이름이 본인을 포함해서

3명이 있었기 때문에 전화를 잘못했거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혼동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자신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이 되었다는 것을 안 그는 한순간에

일본 전체에 엄청난 유명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다닌 시마즈 제작소의 주가가

열흘 만에 거의 2배가 올라가는 일이 생겼죠.

그의 노벨상 수상으로 임원인 이사로 승진을

해주겠다는 회사 측의 제안을 겨우 사양해서

부장으로 승진 후에 임원대우를 받는 부장인

부장이사로 승진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마즈 제작소는 일본 전역에서

입사를 하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지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당시 다나카 고이치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후에 노벨상 수상자 중

유일한 학사 출신으로 있던 그에게 모교인

도호쿠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되죠.

그는 굉장히 겸손하고 효자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혈연상으로는 숙모이지만 자신의 어머니에게

노벨상 수상을 가장 먼저 알리게 되었는데요.

당시 백내장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자들의 카메라에서 터지는 불빛으로 인해

혹시 자신의 어머니의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죠.

 

오늘은 이렇게 평범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굉장히

의미 있는 노벨상 수상 사례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요.

그 무엇이 되었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최고가 된다면 꼭 노벨상을

받고 안 받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의 지인들에게 노벨상 보다

훨씬 큰 상을 받지 않을까요?

전 꼭 그러리라 생각을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고 지치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과

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꼭 큰 상으로 돌아오는 때가

분명히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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