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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ledge & news

고종 황제 자녀들

by 40대 아재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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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자녀들은 상당히 많이 있었습니다.
중전을 비롯해 많은 후궁을 두었고, 그로 인해
많은 고종의 자녀들이 태어났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종의 자녀들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오늘은 고종 황제의 자녀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고종 황제 부인들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1대 황제인 고종 황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부인들이 있었는데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명성황후부터 성씨만 기록으로 남은 후궁들까지 그 이야기를

joongnyun4050.tistory.com

 

얼마 전 고종 황제의 부인들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요.
해당 포스팅에서 자녀들에 대한 내용을 아주
간략히 소개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저번 고종 황제의 부인들에 이어서
고종 황제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자세히 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고종은 저번 포스팅에서 소개해드렸듯이
공식적으로는 명성황후를 포함한 총 13명의
부인들로부터 15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그 자녀들 중 성인이 되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순종, 의친왕,
영친왕, 덕혜옹주 4명만이 고종의
자녀로 알고 있습니다.
고종의 부인들은 흥선대원군이 간택한 중전인
명성황후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궁에서
일을 하는 궁녀들이 후궁에 올랐죠.
고종의 부인별 자녀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왼쪽부터 의친왕,순종,영친왕,고종,아래중앙 덕혜옹주

 
우선 적장자라고 불리기도 하는
왕의 정실부인인 중전 또는 왕비의 자녀들을
'적출'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외 후궁들에서 태어난 자녀를
'서출'이라 부릅니다.
다시 말해 고종 황제의 정실부인이자
조선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자녀만이
적출이 되는 것이죠.
대부분 적출 안에서 다음 왕이 됩니다.
 

1. 명성황후(5명)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고종의 부인으로 총 5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자녀를 낳은 것에
놀랍기도 하지만,사실은 참 슬픈 자녀사를
가지고 있는 명성황후죠.
 
첫째 아들 이척
1871년에 고종과의 첫아들로 태어난 지
4일 만에 사망을 하고 맙니다.
 
둘째 딸(공주) 이름 미정
1873년 고종과의 첫 번째 딸로
유일한 공주이지만,
태어난 지 222일 만에 사망을 하고 맙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셋째 아들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순종

 
셋째 아들 이척(첫째 아들과 이름 동명)
1874년에 태어난 이척은 조선의 27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우리가 잘 아는 순종입니다.
 
넷째 아들 이표
1875년 태어났지만, 13일 만에 사망을 합니다.
 
다섯째 아들 이부
막내아들이었던 이부도 태어난 지 107일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고종과 왕비인 명성황후의 사이에서는 총 5명의
자녀가 태어났지만, 유일하게 적출로써
살아남은 세 번째 자녀였던 순종(이척)만이
성인까지 살아남은 유일하게 남은 자녀입니다.
 

2. 영보당 귀인 이 씨(2명)

 
고종과 영보당 이 씨와 사이에서는 총 2명의
자녀를 두게 되는데요.
영보당 귀인 이씨 사이에 태어난 첫째 아들은
적출 자녀보다 일찍 태어나서 당시 고종에게
많은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종을 기준으로 보면 고종의 가장 첫 번째
자녀가 되는 것이죠.
 
첫째 아들 완효헌친왕
1868년 태어났지만, 불과 1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둘째 딸(옹주) 이름 미정
1871년에 후궁의 딸인 옹주로 태어났지만,
태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사망을 합니다.
 

3. 귀인 장 씨(1명)

 
고종과 귀인 장 씨의 사이에서는 1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성인까지 살아남은 얼마 안 되는 자녀들 중
순종 다음으로 우리가 잘 아는 바로
'의친왕'입니다.
 

고종의 자녀로써 독립운동을 한 의친왕 모습

 
첫째 아들 이강
1877년 고종과 귀인 장 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조선의 왕자로는
'의화군'이라 불렸고,
대한제국의 황자로는 우리가 잘 아는
의친왕으로 불리는 고종의 자녀입니다.
영친왕의 어머니인 귀인 장 씨는
영친왕이 태어나자 명성황후의
미움을 받아 궁 밖으로 쫓겨나서
궁 밖에서 살다가 명성황후가 죽은 이후에
귀인으로 추증받았습니다.
 
의친왕은 고종의 자녀 중 유일하게
미국으로 유학을 간 자녀입니다.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의친왕은 고종의 자녀 중 독립운동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한 대단한 일을 한 왕자입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기에 '도산 안창호'선생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자금을 보태기도 합니다.
 
의친왕은 미국 유학시절 굉장히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건 자신도 모르는 역적모의를
조선에서 한 것이죠.
고종을 몰아내고 일부 세력이 자신을 왕으로
앉히려는 시도가 있었는데요.
물론 의친왕의 의도 등은 전혀 없었던 일로
나중에 역적모의를 한 당사자들은
처형을 당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억울하지만 고종의 경계를
받게 되는 아들이 되기도 하죠.
그리고 명성황후가 죽은 후 실질적인 왕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당시 순헌황귀비 엄 씨에게
조선으로 귀국을 하려던 의친왕을 돈을 주며
압박을 하지만, 결국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대한제국군 육군 부장으로 임관을 합니다.
그리고 제2대 대한적십자사 명예총재도 지내죠.
사실 나이나 순서로 봐도 의친왕이 자녀가 없던
순종으로 인해 다음 황태자로 정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영친왕의 어머니였던
순헌황귀비 엄 씨와 친일파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완용의 여러 정략으로 황태자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의친왕은 수많은 독립운동을 하고,
독립운동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일본을 피해
상하이 임시정부로 망명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황족의 특권과 예우도 버리겠다고 합니다.
 

의친왕의 아들인 흥영군 이우 공

 
의친왕은 광복을 하고, 6.25 전쟁까지 겪은
고종의 유일한 자녀이기도 한데요.
피난길 당시 70대의 나이로 부산으로 피난을
가는 길에 영양실조 및 각종 질병에 시달려
향년 78세의 나이인 1955년 광복절인
8월 15일에 종로구 안국동의 별궁에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의친황의 첫째 아들이자 자녀로는
둘째인 우리가 잘 아는 '이우 공'입니다.
안타깝게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불과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출근을 하다가 사망을 하게 됩니다.
 

4. 순헌황귀비 엄 씨(1명)

 

순헌황귀비 엄 씨는 1명의 자녀를 두었는데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며, 종묘에 배향된
마지막 조선 황족으로 알려진 영친왕입니다.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사진

 
첫째 아들 이은
1897년 귀인 장 씨에게 태어난 이은은
조선의 마지막 왕인 이복형인 순종에게
마지막 황태자 자리를 받은 인물로서
우리가 잘 아는 '영친왕'으로 불리는
고종의 자녀입니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일본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군인으로서 삶을 살게 됩니다.
훗날 이복동생인 덕혜옹주가 일본에 끌려오자
오빠로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일본에서 중장 계급까지 오르기는 하지만,
일본의 정치적으로 이용을 계속 당합니다.
광복 이후에는 친일 황족이라는
프레임에 씌워져 그를 싫어하는
한국인이 많기도 했습니다.
연합군에 의해서 왕족에서 평민으로
격하당하죠.
부인인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에는 영친왕은
자신을 친일 황족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충격을 받아 많은 죄의식에서
괴로워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5. 광화당 귀인 이 씨(1명)

 

고종과 광화당 귀인 이 씨와의 사이에는
실제로 2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기록으로는 1명만
그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고종과 광화당 귀인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이육 사진

 
첫째 아들 이육
1914년에 태어났지만 불과 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종의 자녀입니다.
 
 

6. 보현당 귀인 정 씨(1명)

 

고종과 보현당 귀인 정 씨와의 사이에서는
1명의 아들을 두었는데요.
1915년 덕수궁 보현당에서 태어난
'이우'입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16년에 뇌막염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고종과 보현당 귀인 정씨 사이에 태어난 이우 황자

 
 

7. 내안당 귀인 이 씨(1명)

 

고종의 후궁인 내안당 귀인 이 씨는
고종과 사이에서 1명의 딸인 옹주를 두었습니다.
 
첫째 딸 이름 미상
1879년 태어난 고종과 내안당 귀인 이 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는 3살이라는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8. 복녁당 귀인 양 씨(1명)

 

복녁당 귀인 양 씨는 고종의 많은 후궁들처럼
궁인들 중 한 명으로 고종의 승은을 입었는데요.
고종의 자녀 중 유일하게 성인까지 살아남은
공식적인 딸로 알려진 '덕혜옹주'의 친모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이자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 사진

 
첫째 딸 덕혜옹주
1912년 고종의 나이 59세가 되어
환갑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본
고종의 딸입니다.
나라안팎의 여러 좋지 않은 상황과
나이가 많아진 고종에게는 엄청나게 큰
기쁨이자 이쁨을 받은
조선의 공식적인 마지막 옹주입니다.
덕혜라는 작호는 이복오빠이자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내려준 것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훗날 일본에서 귀국해 한국에서 작성된
호적에도 이름이 '이덕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덕혜옹주를 이뻐한 고종이 궁 안에
덕혜옹주를 위해 요즘으로 치면
유치원인 덕수궁 준명당에 대한제국
최초 황실 유치원
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덕혜옹주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사대부 가문의 딸들을 유치원에
다니게 할 정도로 고종은 덕혜옹주를
이뻐했습니다.
 
이후 일본의 강제적인 일본행으로 인해서
13살인 1925년에 덕혜옹주의
불행한 삶이 시작됩니다.
독살을 당할까 봐 항상 몸에 보온병을
가지고 다니고, 그곳에서 자신의 부모인
고종과 복녁낭 귀인 양 씨의 죽음으로
몽유병과 조현병 증세를 보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죠.
그리고 정략적으로 일본인과 결혼을 하고, 
딸을 낳기도 하지만, 조현병으로 인한 병환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당하게 되면서 자신의 딸도
실종이 되게 되는 가슴 아픈 세월을 겪게 됩니다.
 
이후 한국 기자의 노력과 훗날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한국으로 
무려 37년 만에 귀국을 해서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와 함께 창덕궁에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1989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9. 삼축당 상궁 김 씨(0명)

10. 정화당 상궁 김 씨(0명)

11. 궁인 서 씨(0명)

12. 궁인 김 씨(0명)

13. 궁인 장 씨(0명)

 

이렇게 13명의 부인에게 얻은 자녀는
공식적으로는 14명의 자녀를 두었고,
이 중 4명의 자녀가 성인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자녀가 순종(이척), 의친왕(이강),
영친왕(이은),
덕혜옹주(이덕혜)입니다.
그리고 상궁 염 씨와 고종의 딸인 '이문용'옹주
가 나중에 고종의 딸인 것을 인정받아 고종의
자녀로 포함이 됩니다.
 
오늘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의 자녀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자녀가 없었던 순종을 제외하고, 의친왕과
영친왕의 자녀는 현재에도 생존해 있는
자녀들이 아직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한나라의 왕이 되고,
편한 삶을 살 수 있었던 황제의 자녀들이
힘들고 고된 삶을 살았으며,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한 자녀까지 있음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면 좋을 듯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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