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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발효주 사이다 조선에 들어오다

by 40대 아재 2024.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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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탄산음료 중 하나가 바로 '사이다'인데요. 

코카콜라를 제외하면 국내생산 기준으로도 

단연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음료죠. 

이런 사이다가 처음에는 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데요. 

오늘은 사이다에 대한 재밌고 흥미로운 

사실들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칠성 사이다의 과거 신문광고 모습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이다 이름의 유래는?

 

'사이다(cider)'는 현재 영어사전 기준으로 

'사과주' 또는 '사과주스'라고 되어있죠. 

탄산음료인데 왜 사과주 또는 사과주스라고 

뜻하는지 정말 궁금한데요. 

사이다는 라틴어인 '시케라(sicera)'라는 말에서 

처음 유래가 시작한 말인데요. 

라틴어로 '사과로 담은 독한 술'이라는 뜻이죠. 

 

사이다는 사과로 담근 발효주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술은 프랑스로도 전해지게 되는데요. 

이때 지어진 이름이 '시드로(cidre)'였는데, 

이게 다시 바다건너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지금의 '사이다(cider)'로 불리게 됩니다. 

포도가 유명한 프랑스와 달리, 영국에서는 

포도보다 사과가 훨씬 흔한 과일이었고, 

그렇다 보니 사과로 만든 술인 사이다를 

상당히 즐겨 마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죠. 

유럽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사이다라고 쓰인 

메뉴판에 있는 음료를 주문을 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탄산음료가 아닌, 

최대 13%에 이르는 사과주가 나옵니다. 

 

사과주를 탄산음료로 개발하다.

 

지금 우리가 아는 사이다라는 탄산음료는 

19세기 중후반 일본 요코하마 지역에서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 당시에 

그곳에서 머물고 있던 영국인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들의 이름은 '존 로스'와 '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인 이였는데요. 

이곳에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딴 가게인 

'로스 앤 레이'라는 가게를 열게 됩니다. 

 

영국인이였던 로스와 레이는 일본에서 탄산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팝니다.

 

이 가게에 주력 판매상품은 '레모네이드'로 

레몬과 설탕, 그리고 물을 섞어서 만든 음료죠. 

여기에 탄산을 넣어 판매를 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레몬만 넣다가, 사과와 파인애플 

향이 나는 향료를 만들어 판매를 합니다. 

이 음료의 이름은 샴페인의 톡 쏘는 느낌과 

비슷한 맛을 가졌다고 해서 '샴페인사이다

라고 이름을 지어 판매를 했죠. 

 

 

이 음료가 일본에서 대박을 치게 됩니다. 

샴페인사이다를 마신 일본인들과 외국인은 

그동안 한번도 마셔보지 못한 향과 맛에 

완전히 빠져 굉장한 인기몰이가 시작되었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음료를 찾게 되면서, 

샴페인이라는 말을 빼고 편하게 그냥

사이다라고 부릅니다. 

 

일본내 판매되는 라무네와 국내에서도 구할 수 있는 라무네 모습

 

실제로 지금도 일본에서 유명한 탄산음료 중 

'라무네'라는 음료가 있는데요. 

라무네라는 말이 레모네이드를 부르는 말을 

일본식으로 부르다보니 생긴 말입니다. 

그리고 라무네라는 말은 실제로 훗날 조선에 

일본인이 세운 탄산음료 제조공장의 이름으로 

사용되기고 했습니다. 

라무네는 소다 맛이 나는 탄산음료입니다. 

 

사이다 한국에 들어오다.

 

조선이 개항을 하고, 당시 인천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사이다를 한국에 전해지게 되는데요. 

사실 일본인이 사이다를 한국에 가져온 것은 

한국인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당시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에게 팔 기 위한 

상업적 목표를 가지고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는 사이다를 만드는 곳이 없었고, 

그로 인해 조선에 머물던 일본인들은 사이다를 

굉장히 원하고 마시고 싶어 하던 때이죠. 

 

19세기 후반 인천항 개항시기와 당시 사이다의 광고가 실린 기차

 

이런 목적으로 조선에 들어오게 된 사이다는 

인천항을 통해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사이다의 맛을 알아버린 조선인은 

그 맛에 매료가 되어 굉장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 음료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전국에 퍼졌고, 

나중에는 궁궐에서도 상당히 많이 소비가 되었죠. 

이렇게 점점 소비량이 증가하는 사이다의 요구를 

국내에서도 생산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사이다 수입과 관련된 한 일본인 상인이 

있었는데, '히라야마 마츠타로'라는 일본인이

현재의 인천시 신흥동과 같은 위치인

'인천탄산수제조소'라는 공장을 만들죠. 

이것이 한국 최초의 탄산음료의 시작이었습니다. 

 

사이다의 대중화와 역사.

 

비록 처음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사이다 공장은 

시간이 갈수록 높은 인기를 끄는 사이다 수요를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기계를 사용해 생산합니다. 

인천탄산수제조소는 2가지 이름의 사이다를 

생산하여 판매를 하였는데요. 

'성인표 사이다'와 '일생표 사이다'로 나누어서 

생산을 한 후 판매를 합니다. 

그런데 이 중 성인표 사이다에는 별모양으로 된 

상표를 만들어 부착해서 판매했는데요. 

이 상표로 인해서 '별 사이다'라고 부르게 되죠. 

 

별 사이다로 불렸던 스타 사이다와 뉴스타 사이다 신문광고

 

1930~40년대에 태어나신 어르신들은 지금도 

기억 속에 있는 한 코미디언의 말을 아실 텐데요. 

1960년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고 서영춘 선생이 코미디언 프로에서 자주했던 

멘트가 있었습니다. 그 멘트는 이랬는데요.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이 말은 인천을 통해 처음 들어온 사이다였고, 

그 당시에도 인기를 끌고 있었던 사이다를 

코믹스럽게 이야기를 한 것이었죠. 

 

 

이렇게 당시 조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사이다의 소비는 생산을 앞지를 정도였고, 

특히 여름에 시원하고 톡 쏘는 사이다의 맛을 

너무나도 좋아하던 사람들의 소비량에 

우후죽순으로 여기저기서 새로운 사이다공장이 

만들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실제로 1930년대에는 전국에 약 50개가 넘는 

사이다 공장이 세워지기도 했죠. 

첫 사이다 공장인 인천탄산수제조소 설립 후 

약 5년이 지난 1910년에는 또다른 일본인인 

'나카야마 우노키지'라는 사람이 같은 지역에 

'라무네제조소'라는 이름으로 공장을 짓죠. 

이곳에서는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

라는 상표로 생산 및 판매를 했습니다. 

 

초창기 사이다 병과 헬스표 사이다 상표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 사이다를 팔기 위해 

전국 여러곳에서 많은 사이다 공장이 설립되어 

지역마다 다른 상표로 생산과 판매를 했는데요. 

지금도 이름을 들으면 알 거 같은 전국에 있던 

사이다와 그 지역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지역별 사이다 상표 

 

▶ 충남-동성 사이다,성일 사이다, 금강 사이다

▶ 인천-스타사이다,성인표사이다,

일생표 사이다,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

▶ 서울-서울 사이다, 러키 사이다, 협성 사이다, 

신진 사이다, 대한 사이다, 오로라 사이다.

▶ 광주-동광 사이다, 대성 사이다

▶ 원주-광성 사이다

▶ 전주-오성 사이다

▶ 논산-동성 사이다, 성일 사이다

▶ 군산-토끼표 순설탕 사이다

▶ 대구-삼성 사이다, 애플 사이다, 기린 사이다

▶ 부산-부산 사이다, 평화 사이다, 합동 사이다,

은하수 사이다

▶ 밀양-강남 사이다

 

당시 대구에서 판매한 삼성 사이다와 인천의 스타 사이다 병따개

 

이외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다의 상표까지 

상당히 많은 사이다들이 생산 및 판매되었고,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로 인기 있었죠. 

사이다는 지금도 전체 판매 2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음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규모의 사이다 공장들은 

생산과 관리, 유통등에 한계에 부딪치는데요. 

그래서 1937년에 서울에 6곳, 인천 2곳의 공장이 

합쳐져서 '경인합동음료'라는 회사가 설립됩니다. 

이곳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주력 사이다의

이름은 '스타 사이다'로 별표 사이다의

명맥을 이어가면서 원조 사이다의 이미지를

이어갔습니다. 

이때 스타 사이다의 인기로 인해 인천 앞바다에서 

사이다가 떠오른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죠. 

 

스타 사이다 병에 있는 별모양과 당시 신문광고

 

그렇게 계속해서 사이다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사이다 공장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거대해지죠. 

경인합동음료가 당시 가장 앞선 상태로 있었지만, 

1950년에 '동방청량음료'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한 이름의 사이다가 출시가 됩니다. 

그 사이다의 이름이 바로 '칠성 사이다'입니다. 

스타 사이다로 오랜 기간 선두였던

경인합동음료는 동방청량음료의 칠성 사이다가

출시가 되면서, 상당히 많은 타격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스타 사이다의 앞에 새로운 

사이다라는 이름인 '뉴스타 사이다'를 출시하지만, 

이때는 일명 넘사벽이라 일컬어지는 '코카콜라'의 

국내시장 판매가 시작된 시기와 맞물리면서, 

마침내 1970년대 작은 사이다 공장은 문을 닫고, 

경인합동음료는 '진로'에 인수가 됩니다. 

이로 인해 약 70년 간 이어온 스타 사이다는 

인천 사이다의 이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안타깝지만 사라지게 됩니다.

 

칠성 사이다를 생산한 공장 굴뚝 및 사이다 병 모습

 

사이다의 상표에서 한국에서 별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인식되어 왠지 사이다와 별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고, 훗날 동방청량음료가 롯데제과에

인수가 된 후에도 당시 출시했던 일곱 개의 별을

의미하는 '칠성'을 지금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오늘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익숙한 

사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영국과 유럽 등에서는 아직도 사과를 발효해서 

약간의 알코올이 들어있는 술이 사이다이고, 

미국에서는 '스프라이트'가 탄산음료인 

사이다와 비슷한 음료가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과 일본외에는 사이다가 

과일로 만든 술이라는 점은 아직도 유효하죠. 

 

동방청량음료의 칠성사이다 신문광고

 

답답하거나 억울한 일을 속 시원하게 풀리는 

말이나 행동 앞에는 사이다라는 말을 붙이는데, 

시원한 사이다를 마셨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과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 때문이죠. 

요즘은 경제나 정치, 사회적으로 가슴이 답답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발생을 하다 보니, 

더욱더 사이다가 생각나는 시기이기도 하네요.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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