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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명품 고무신

by 40대 아재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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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전 블로그 소개글에도 있지만, 지방도시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와 사회생활도 조금은 그곳에서 했던

흔히들 말하는 촌놈 입니다.

그에 반해 저희 와이프는 차도녀 이죠.

서울 강남에서만 29년을 보내고, 오로지 저만보고

제 고향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조금은 순진하고

참 착한 와이프를 서울에서 작은 지방도시로

와서 같이 살다보니, 생활이나, 생각등이 조금은

차이가 많아서 저희 부부는 오히려 신혼때 더

다툰거 같습니다.

지금은 아내의 고향인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아내가 참 좋아합니다.ㅋ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 추석이였는데,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만큼 강력한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본가쪽 어른분들은 제가 봐도 상당히

보수적이고, 유교사상이 강하신 분들로

거의 머리에 갓만 안쓰셨던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 와이프가 있었던 일들이

생각이 나 글로 편하게 씁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명절도 명절이고,

저희 아버지 형제분이 5남3매 이십니다.8남매죠.ㅎ

명절에 할머니댁에 가면 가끔 누구...아...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옵니다.

완전 대식구죠. 당시 결혼 한지 3개월차에 아내에겐

정말 식은땀이 흐르는 시간과 공간 이였을껍니다.

저희집안은 위에서 말씀 드렸듯이 상당히 보수적 이시고,

유교적인 부분이 강해서 새벽부터 제사를 준비하고

지냅니다. 믿지 않으실 지 모르시겠지만,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가 겸상도 하지않는 집안이였습니다.

유일하게 겸상을 하는 여자는 저희 할머니 뿐이였죠.

새벽에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명절이 지나고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그날 완전 날 새고 명절 보낸거라고...

긴장도 되고, 뭐 준비할 것도 있고 해서 그랬다네요.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그랬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에 근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할머니댁으로

출발하여 할머니댁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

전날 오신 멀리 사시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들이

분주하게 부엌에서 움직이고 계셨고, 저희 아버지가

8남매중 둘째셨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도 할머니

며느리중 NO.2 였으나, 실제로는 NO.1의 힘과 파워를

가지고 계셔서 와이프는 그걸 귀뜸해준 저에 말을

힘차게 믿고, 저희 어머니만 따라 다니며 지시를 받았습니다.

저희 어머니의 정확하고, 순서에 맞으며, 효율적인

업무분배와 지시로 작은어머니와 저의 와이프, 그리고

일찍 결혼한 사촌동생들의 제수씨들은 일사분란하게

너무도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집안 남자 어르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시며, 움직였습니다.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끝내고 잠시 음복자리가 이어졌고,

어르신들은 벌써 술한잔씩 기울이시며, 이런저런

집안 이야기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밥을 먹고, 잠깐 타이밍을 봐서 아내를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자기야. 잠깐 일루와"

"아. 왜? 안돼. 여기서 일 도와 드려야돼. 좀있다 봐."

마치 눈치도 없냐는 식의 겉으론 상냥한 새색시 목소리지만,

속으로는 누구 찍히게 만들려고 작정했냐...라는 식으로

말을 하더군요. 근데 저는 그냥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 찰나에 며느리 NO.1의 힘과 역할을 하는 저희 어머니에게

잠시 눈으로 싸인을 보낸 후였죠. 어머니의 승인이 났습니다.

"일루와 잠깐 밖에서 할께 있어. 정리좀 해야돼"

전 제사관련일로 핑계를 대고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고 싶어서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힘들지. 눈치도 보이고, 조금만 참아. 이렇게 보수적으로

하더라도, 오래는 안하시니까."

" 어. 알았어. 들어가자. 어른들 눈치 보여서 불편해.

들어가는게 좋을 듯해."

" 응. 집에가서 푹쉬자. 좀만 참고."

전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제게 말을 하더군요

"아. 맞다. 근데, 신발 놓는데 무슨 고무신이 그리 많아?

요즘도 고무신을 신나?"

 
이런 검정고무신과 하얀 고무신이 엄청 많이 놓여져 있었다.

 

"어?. 어...시골은 아직 신기도 하지 편하니까. 또 명절이고."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요즘에 누가 고무신을 신어?

한복도 입을까 말까 인데, 자기 집안 어르신들은

완전 다 입으셨더라, 그것도 추석인데..."

"계량한복이지...뭐. 하긴 그것도 한복이지.

한복엔 고무신이지...들어가자"

"무슨 조선시대로 온 거 같아. 자기야."

"어. 난. 해마다 2번씩 느껴."

그렇게 아내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 어른들 말씀을 듣고,

아내는 부엌일과, 음식들에 대한 심부름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얼마 후 아내가 안방에서 어른들 이야기를 듣고, 주섬주섬

달짝지근한 음식만 하나씩 집어먹고 있던 저를 부르더군요.

"응? 왜. 잠깐만..."

아내와 전 큰 대추나무와 사과나무가 있는 마당에 잠깐

나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무슨일 있어?"

" 아니. 자기는 계속 안방에 있었지? 아까 잠깐

전화좀 하려 밖에 나갔다 왔는데, 동네 골목에서

좀전에 어떤 할아버지를 봤거든?"

"누구? 근데?"

"완전 놀랐잖아. 상투를 트시고, 망건이라고 하나?

그거 있잖아. 이마 망사 같은거..."

그제서야 아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말을 했습니다.

"아~~알아알아. 무슨말 하는지 알아. 이동네

나이 많이 드신분 몇분은 명절되면 그렇게 하시는분

몇분 있어. 그 분중 한분을 본거구나."

아내가 제가 오늘 두번째로 말하더군요.

"무슨 조선시대야?"

"응. 오늘은 그래. 아까 내가 말했잖아.

일년에 2번 조선시대로 간다고. 들어가자."

이걸 본걸 겁니다.

 

들어가니, 어른들은 더이상 중간에 말을 붙히면

혼날정도로 술에 거하게 취하신 분들도 있고,

할머니의 며느리들과 손주며느리들이

거실에서 이제서야 숨을 좀 돌리고 음식을

나눠 드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대구에 사시는 작은어머니가 아내를

굉장히 이뻐 하셨는데, 그 작은어머니가

아내를 보면서 본인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며 아내를 부르더군요.

안방은 더이상 들어가봐야

어른들 이야기로 별로 그다지 다시 들어갈

생각도 없고, 아내가 새색시로 한복도 곱게

입고 있고, 다른 집안식구들의 이목을 한몸에

받고 있어. 곤란한 상황에 도와주고자 그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 조카며느님은 오늘 힘들지? 적응 안되고?"

"아니에요. 작은어머님. 괜찮아요."

가식적인 말로 억지웃음을 하는 아내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론 빨리 집에가서

좀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군요.

작은 어머니가 그렇게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작은 어머니의 남편인 대구 작은아버지가

밖으로 나오시더니, 저희 옆에 자리를 잡고

술 가져오라 하시며, 아내에게 말을 하시더군요.

" 우리 조카며느리 결혼식때 보고 오랜만이네~"

술을 집안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잘 마시는

대구 작은 아버지는 상당히 취해 계셨고

그런 작은 아버지를 잘 아는 제가 아내의

곤란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방어태세를

준비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이라고 했지? 고향이?. 거기 신발장

맨위에 새 고무신 하얀거 있을꺼야. 그거

가져와봐. 딸꾹..."

옆에 있던 사촌동생이 일어나더니, 신발장

윗쪽에 비닐로 쌓여 있던 하얀 고무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새거 인거 같았습니다.

"야. 매직 있나. 매직, 검은거...그것도

가져와봐...딸꾹.."

역시 일어서 있던 사촌동생이 작은방에

들어가서 매직을 하나 찾아 오더군요.

작은아버지는 매직과 하얀 고무신을 받고

비닐에서 새 고무신을 빼더니, 입으로 매직 뚜겅을

따더니, 하얀 고무신 옆에 뭔가 그리기 전

아내에게 다시 물어 보더군요.

"어이~조카며느리 혹시 나이키 좋아하나?딸꾹.."

"네?...아...네...작은 아버님"

"아. 그래 다행이네.그럼..."

역시 내 예상이 맞았습니다. 어릴적 작은 아버지가

삼촌일 시절 우리들에게 했던 고무신에 나이키

그리기 였습니다.

그때 사진이 없어 이걸로 대신합니다. 똑같다고 생각하심 됩니다.

 

작은 아버지는 조카인 제가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방학때나

쉬는날 놀러 올때면 손주들의 고무신이 하나씩은

다 있었는데, 거의 조카들 모든 신발에 나이키를 그려주시곤

했고, 당시 어린 우리들은 진짜 메이커를 신은 거 같아

당시 대구 작은 아버지를 존경의 눈빛으로 보곤 했었죠.

" 옛다. 나이키 고무신. 딸꾹. 잘 신고, 나중에 검사한다.

잘 신고 다니는지...나 작은 방에 가서 좀 누워있는다..."

하시면서 자리를 일어나시면서 작은방으로 가시더군요.

아내는 두손에 나이키 고무신을 들고 멍한 표정으로

저와 나이키 고무신을 한번씩 번갈아 보며,

이젠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결혼한 조카며느리라고 그냥 고무신도

아닌 나이키고무신을 주셔서 추억돋기도 했고,

술이 거하게 취하신 상태에서도 정확한 나이키를 그려서

아내에게 주신 작은 아버지가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고, 당시 명절 연휴가 짧아 먼거리에 있던

작은아버지와, 집안 어르신 한분한분이 먼저 집으로들

가시기 위해 한쪽에서는 음식을 싸고, 분주하게

몇번 인사를 하고, 배웅하고 난후 저희도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계시던 저희 어머니의

집에 가자 라는 말 한마디에 너무도 환한 표정을

하며 준비를 하는 아내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집에 오는 길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와서 쉬었다가, 내일은 처가가 있는 서울로

갈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입고 있던 한복을 벗고, 옷을 갈아입은후

쇼파에 앉아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자기야...진짜 궁금한게 있어."

"응?뭐?"

"그럼 오는 설날때부터는 이 고무신 신고 가야돼?"

"응. 당연하지. 검사 하실텐데."

"뭐. 진짜? 진짜야?"

"농담이야. 어릴적 우리들 한테도 그려서 주셨어.

그게 술한잔 드시고, 자기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에 자기 보니까 그래서 그 고무신에 그려서

주고 싶으셨나봐. 잃어 버리지만 않으면 돼.

암튼 오늘 애썼어. 힘드니까 좀 쉬고."

얼마전 추석 명절을 보내고, 쉬는날 안방농 위에

있는 한복박스가 눈에 보여 그때가 생각나서

편하게 글로 옮겼습니다.

아쉽게도, 그 고무신은 이사를 하다가

없어진거 같은데, 현재는 잃어버린 상태죠.

요즘 명절이면 사람들은 그냥 쉬는날, 연휴.

놀러가는 날. 뭐 이렇게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에 대해 저 또한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명절에 조상님들에 대해

감사의 제사를 올리고, 평상시 만나지 못해

명절때나 만나서 반가운 친척들을 보며,

가족애와 이런저런 사람냄새 나는 정다운

그런 느낌은 이제 사라지거나 옅어진건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더욱이 전 그런 명절에 FM에 가까운 절차아래

명절을 보낸 시절을 겪었고, 그걸 알기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희 다음세대에는 명절이라는게 지금보다 더

쉬는날, 노는날...이런식의 느낌으로

완전히 바뀌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얼마전 군산쪽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철길마을이라는 곳을 가니, 그때의 정겹던

옛날 물건과 그 고무신이 있더군요.

하나사서 나이키를 그려 보관하려 하나

구입했습니다. 아직 나이키를 그리지는

않았네요. 이 작지만, 소중한 기억들이

명절과 가족간의 사랑에 조금더 도움을 주는건

분명한거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친척이나, 조카들을 봐도 모르겠어요.

진짜루...에휴...

다음 명절에는 좀더 자세히 얼굴도 보고

그래야 겠습니다.

모두 이 명품 고무신 같은 명절 추억 하나쯤은

있으시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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