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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얼마 받냐가 전부가 된 듯한 장례식장 풍경

by 40대 아재 2024.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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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직장생활을 같이 했던 분들이나, 

상사로 모셨던 분들에게 종종 부의를 해야 하는 

장례 관련 문자가 오는데요. 

아무래도 나이가 이제는 50~60대에 들어선 분들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이런 메세지를 받다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죠. 

어릴 적부터 부모님께 배워왔던 수많은 것들 중에, 

부득이한 일로 참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슬픈 일은 반드시 참석하되, 기쁜 일은 참석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지금껏 장례식과 같은

주변 사람들의 일에는 가능한 빠짐없이 참석해서

위로의 말을 전하곤 하는데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장례식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가 점점 많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례식장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남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는 곳이죠.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잔치는 안가도, 장례식은 필히 가라.

 

어릴 적부터 저희 부모님과 함께 여러 기쁜 행사와, 

반대로 장례식장과 같은 슬픈 일에도 참석을 하면서, 

그때마다 들었던 말인데요. 

'희로애락'이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중에서 반드시 

슬픈 일에 대해서는 함께 나누고, 그 자리에 참석해 

위로의 말고 모습을 보이라는 가르침을 유난히도 

강하게 자식들에게 가르치셨던 저희 부모님인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의를 해야 하는 자리인 

장례식과 같은 일에는 제가 알고 있는 조건에서 

빠지는 일은 지금껏 가능한 없이 참석을 했는데요. 

 

장례식 관련 그림

 

사람은 기쁜일에 참석해 주는 사람들의 기억보다, 

실제로 슬픈일에 동참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기억을 훨씬 더 오랫동안 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의도하고 장례식장을 참석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해당 장례식에 참석해 고마움을 표하는 

지인들을 보면 확실히 그것을 잘 알 수 있죠.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나눌 수 있다는 그 말이 

진정으로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슬픔보다 앞서는 듯한 현실 이야기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의 예전 모습은 

여기저기서 찾아와 준 지인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가끔은 제법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던 모습에서, 

이제는 오히려 오랫만에 보는 지인들의 모습이나, 

형식적인 위로가 끝나자 마자 바로 술자리로 

바뀌는 모습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장례식장에서 하지 말아야 할 기본 예의 중 하나인 

크게 웃는 거 자체가 요즘은 신경을 쓰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을 정도로 장례식에 대한 분위기가 

예전보다는 굉장히 많이 바뀐걸 알 수 있습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분들이 적어지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많았던 시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돌아가신 분의 지병이나, 돌아가시기 전 상황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로의 앞에 있는 소주잔을 

비워가며 진심으로 슬픔을 나누는 모습보다는 

유산이나 상속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 됩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다 이러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장례식장에서 유산이나 상속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굉장히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대놓고 뭐라 하는 분위기도 아닌 요즘이죠. 

그런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해서 대화내용을 바꿔도 

결국 그 자리에서는 유산과 상속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가끔 겪다 보면, 가능한 될 수 있으면 

일찍 자리를 뜨려 노력을 합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요즘 시대에

그런 대화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고 예의에

어긋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그 누구도 없는 것이죠. 

고인이 떠난 슬픔을 그 어떤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현실문제가 가끔은 더 앞선 경우를 볼 때면 진심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죠. 

 

장례식장 관련 그림

 

과거 한 지인의 경우에는 좀 더 노골적인

대화내용으로 제가 잠시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 지인은 여성분이였는데요.

자신을 포함해서 자매가 총 4명이 있었고,

가장 위로는 큰 오빠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이번에는 

자신의 아버지의 부고로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한 분 남았던 자신의 아버지 부고로 유산과 상속등의 

문제가 곧바로 화두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돌아가신 분이 제법 값어지가 나가는 땅을 

가장 큰 아들에게만 주고 돌아가셨다는 것이죠. 

가장 큰 아들이였던 이 지인분의 오빠는 이것에 대해 

여동생 4명에게 한마디 설명이나 알림도 없었고,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받은 값비싼 땅에 

신경도 쓰지말라고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4명의 자매는 자신들의 오빠에 대해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나있는 상태였죠. 

장례식을 치루고 '유류권 청구소송'을 한다는 말에 

그 지인의 가까운 사람들은 손을 마주치며 당연한 듯 

동의를 하는 모습에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것이 자녀 4명에게는 현실적으로나 법적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끝나지도 않은 장례식장에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한다는 거 그 자체가 안타까웠죠. 

이렇게 점점 변해가는 장례식장 분위기와 대화내용이 

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어김없이 

밀려오는 왠지모를 씁쓸함과 안타까움은 결코 

저만 느꼈던 감정은 아닐꺼라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

 

누군가를 영원히 만나거나 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분과 함께 한 추억과 더 잘해주지 못한 후회, 

그리고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섞이면서,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픈 감정으로 인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집니다. 

왠지 그것이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그렇게라도 안하면, 정작 본인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슬픔과 죄스러움, 그리고 후회와 괴로움이 와서 

쓰러질 듯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까 두렵기도 하죠.

 

변하지 않거나 또는 바꿀 수 없는 게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죠. 

또한 그것은 몇 백년, 몇 천년도 아닌 불과 백 년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면서도, 결코 다시는 

살아있을 때와 모든게 똑같은 상태로 반복해서 

살지 못하는 딱 한번뿐인 삶입니다. 

그렇기에 사는 동안 부모의 연이나, 자식의 연, 

그리고 많은 주변의 인연들의 관계는 

유일하면서도 단 한번 뿐인 것들로 가득하죠. 

그렇다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까요. 

 

장례식장 조문객 모습들

 

장례식은 그런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과 

짧지만 한번뿐인 인연이 사라지는 자리에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진심 어린 슬픔과 

생전의 자신과의 인연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그런 슬픔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곳 중 하나죠. 

고인을 떠나보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슬픔과 

안타까움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해야 할 정말 중요한 자리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그 자리에서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장례식장에서 현실문제를 

마치 무용담이나 당연한 듯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인연이 과연 지속이 될까 생각이 드네요. 

장례식은 고인이 된 분의 명복을 빌어주면서, 

지인들의 슬픔만 위로해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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