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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실제로 만지면 죽었던 데드라인

by 40대 아재 2024.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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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많은 말 중에서 

더 이상은 넘어가거나 물러설 수 없는 한계를 

의미하는 말로 '데드라인'이라는 말을 흔하게

많이 사용하곤 하는데요. 

글이나 그림을 쓰고 그리는 업종인 신문이나, 

잡지, 만화, 웹툰 등에서 원고를 마감하는 시간을 

나타내는 제한 시간이나 마감 시간을 말하죠.

또는 인쇄할 때 활자가 인쇄용지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하는 가이들 라인을 말하기도 하죠. 

그런데 데드라인이 말 그대로의 '죽음의 선'으로 

실제 있었던 일을 토대로 만들어진 말이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시는데요. 

오늘은 실제로 목숨이 걸렸던 데드라인 유래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지노선-앙드레 마지노

흔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마지노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는 상황이나, 최후의 보루 등의 의미로 사용하는 말인데요. 마지노선이 된 이유와 그

joongnyun4050.tistory.com

 

전에 썼던 글 중에서 '마지노선'의 유래와 이야기를 

알기 쉽게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사람 이름이기도 한 마지노선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는 말인데, 

이와 조금은 유사한 말 중 '데드라인'은 실제로 

목숨이 걸린 말 그대로의 죽음의 선으로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데드라인은 미국의 한 수용소에서 시작했는데요.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데드라인의 시작

 

 

미국 조지아주에는 과거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에 

남부군이 운영하던 포로수용소가 하나 있었는데요. 

그 수용소의 이름은 '섬터 수용소(Camp Sumter)

또는 '앤더슨 빌 감옥'이라고 부르는 곳이였죠. 

현재는 '앤더슨 빌 국립 사적지'에 있습니다. 

이 감옥은 미국 남북전쟁 마지막 14개월 동안에 

운영을 했던 포로수용소 였는데요. 

1864년에 만들어진 후 1865년 4월까지 운영된 

4만 평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크기로 무려 당시에 

32,000명을 수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죠.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감옥으로도 

현재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기록에는 이곳에서 여러 이유로 죽은 사람만 

약 13,000명에 이를 정도로 굉장히 열악하고, 

수용자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곳이였죠. 

 

앤더슨 빌 감옥(섬터 수용소) 모습과 내부 천막 사진

 

이곳 섬터 수용소는 다른 수용소와는 달리 

조금 특이한 장소에 만들어졌는데요. 

바로 경사면에 만들어진 수용소라는 것이죠. 

그래서 외곽에는 무려 6M에 가까운 울타리로 

수용자들의 탈옥등을 막고 있었는데요. 

실제로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 힘을 합치면 

그 높이를 넘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분명 아니였기에 수용소를 운영하는 남부군이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포로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기 위해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건 바로 외곽의 6M에 달하는 울타리 안쪽에 

어른 걸음으로 약 6~7걸음 정도 되는 위치에 

낮은 나무로 만든 목책을 설치하게 되는데요. 

이 낮은 목책에 가까이 가거나 넘는 포로는 

이 수용소를 탈출 하는 것으로 간주를 하여 

무조건 사살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낮은 목책이 바로 오늘 말씀드리는 

'데드라인'의 시작이자 유래가 됩니다. 

 

수용소의 외곽 울타리와 당시 열악한 포로들 모습

 

앤더슨 빌 감옥의 상황

 

 

섬터 수용소 또는 앤더슨 빌 감옥의 상황은 

지금까지 기록되어 있는 몇몇 자료를 통해서 

잔혹하고 열악한 당시 수용소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데요. 

그 중 당시 실제 이 감옥에서 포로로 있었던 

'로버트 H.켈로그'소령의 증언이 있죠. 

그의 증언에는 이곳에 수용된 많은 포로들이 

오물과 해충으로 뒤덮인 곳에서 매일 생활했고, 

맨 땅도 아닌 습지와 같은 곳에서 잠을 잤으며, 

먹을 것이 없어 뼈만 남은 과거 건장한 군인들이 

하루하루를 지옥과 같이 살았다고 전해지죠.

 

실제 섬터 수용소의 데드라인 모습

 

또한 이 감옥의 처참한 상황은 한 군인의 일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요. 

'랜손 채드윅'이라는 군인 포로가 쓴 일기인데요. 

그 일기 속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식량공급문제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비위생적 상황으로 이질과 장티푸스, 괴혈병과 

온갖 질병으로 유난히 사망률이 높았던 이곳 

앤더슨 빌 감옥의 처참함을 알렸습니다. 

 

 

 

데드라인의 실제상황

 

 

포로들에게 데드라인은 말 그대로 목숨이 걸린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데요. 

이곳은 습지와 미끄러운 바닥 흙으로 인해서 

포로들은 자주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일이 흔해서 

넘어지는 것 자체는 일상적인 곳이였죠. 

그런데 한 포로가 당시 데드라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던 세면장에서 세수를 하다가 그만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을 했는데요. 

미끄러지면서 몸의 일부가 데드라인에 닿자 

바로 총으로 사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또한, 초기에는 실제로 이 데드라인을

건드리거나 데드라인을 약간이라도 넘으면

진짜 사살할 지 모르는 상황을 알고자

겁 없이 이곳을 만지거나 넘는 포로들이 

실제로 있었는데,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말 그대로 데드라인을 건드리거나 약간만 

넘어가는 행동을 하는 경우에는 곳곳에서 

이곳을 감시하는 감시병의 총에서는 어김없이 

총알이 발사되어 죽음을 당했던 것이죠.

 

외곽 울타리 근처 낮은 목책이 바로 데드라인 입니다.

 

남북전쟁 종료 후 데드라인 수용소

 

 

'제2의 미국 혁명'으로도 불리는 남북전쟁은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국 북부와 남부의 

내전으로 알려진 미국의 전쟁이였는데요. 

당시 노예제도로 인해 오늘 설명해드린 

앤더슨 빌 감옥이자 섬터 수용소가 맨 처음 

전쟁의 공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을 공포했죠. 

그리고 섬터 수용소를 운여했던 남부군이 

결국 패배를 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당시 수용소장이였던 헨리 위르츠와 교수형 사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역사적으로 최악의 

감옥으로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잔혹한 

이곳 앤더슨 빌 감옥인 섬터 수용소의 우두머리 

'헨리 위르츠'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되는데요. 

실제로 그는 재판결과로 교수형을 당하게 되죠. 

무려 13,000명이 넘는 포로들이 이 감옥에서 

목숨을 잃고, 데드라인이라는 엄청난 공포로 

포로를 탄압하고 강압적으로 취급했던 죗값을 

교수형으로 치루게 된 것이죠. 

전쟁 후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 포로들은 정말 잔혹한 모습이었는데요. 

이 사망한 포로들을 감옥이 있던 자리에 매장해 

지금의 '앤더슨빌 국립묘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사망한 포로들이 묻힌 공동묘지와 당시 포로상태 사진

 

사실 데드라인은 이곳 앤더슨 빌 감옥 또는 

섬터 수용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곳이 데드라인이라고 말을 하면, 

나오는 곳이 된 이유는 여러 수용소 중에서 

그 규모와 크기가 가장 컸기 때문인데요. 

이유를 떠나 모든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흔히 말하고 듣게 되는 

데드라인이라는 말이 실제로 목숨이 걸린 

잔혹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감옥에 같힌 

포로들을 잔인하게 탄압하기 위해 만든 것 

이라는 점에서 정말 극박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될 듯 하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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