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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가장 오래산 왕 NO.3 장수비결

by 40대 아재 202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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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고 부르고 있는 현대사회도 

실제로 100세를 산다는 것은 장수유전자와 

본인의 여러 건강한 식습관 및 생활과 

발전된 의학기술의 도움을 받아도 쉽게 

도달하기가 어려운 나이인데요. 

먹고, 자고, 입는 필수적인 문제들이 

절대적인 것에서 벗어나, 정도의 차이로 

변해버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인류 최대의 

숙제와 같이 인식이 되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런 장수라는 부분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산 왕'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해서 지금도 결코 

쉽지 않은 나이까지 살 수 있었는지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역대 가장 오래산 왕 NO.3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역대 가장 오래 산 왕 NO.1

 

고구려 태조왕이 가장 오래산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 고구려 태조왕

오늘은 다른 때와 다르게 가장 오래 

장수한 왕부터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에 따른 구분을 하다 보면,

'구석기'와 '신석기'를 지나 '청동기'와

'철기'가 지나고,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세워진 후 많은 부족들이 이뤄 작은 나라를

만들어 살던 시기가 지나야 우리가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고 듣고 배우는

삼국시대가 비로소 나오게 되는데요. 

그중 '고구려'는 '주몽'에 의해 기원전 37년에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삼국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신라'에 이어 2번째 

고대 삼국국가 중 하나죠.

 

 

 

고구려는 나라를 세운 주몽부터 5대 왕이었던 

 '모본왕'까지는 여러 부족국가들이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회의를 거쳐서 나라 일들을 

결정하고 시행하던 시기였는데요. 

다시말해 왕이라는 개념보다는 부족국가의 

우두머리들의 의견을 모아서 하다 보니, 

지금 우리가 아는 강력한 왕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일명 힘이 없는 왕의 모습이였죠. 

하지만 고구려의 제 6대 왕인 '태조왕'은 

이러한 부족국가들의 형태에서 강력한 

왕 중심의 국가를 만들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당시 근처에 있었던 '옥저'를 정복하고, 

다른 부족국가들에게 고구려의 왕에게 

복종과 지금의 중앙집권형식의 고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가 만들어지게 되죠. 

 

원래 '태조'라는 칭호는 나라를 세운 왕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칭호임에도 불구하고, 

제6대 태조왕에게 이런 칭호를 지어준 것도 

태조왕의 엄청난 엄적을 기리기 위함이었죠. 

하지만, 이런 많은 업적을 남긴 태조왕에게는 

훨씬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요. 

그건 바로 태조왕의 나이입니다. 

정사로 기록되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태조왕의 나이가 무려 119살로 기록되어 있죠. 

1~2살의 차이가 여러 자료로 있습니다만, 

태조왕은 47년에 태어나 165년 사망으로 

실제로 태조왕의 재위기간은 93년이였으며,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별궁에서 19년을 

더 살다가 119세 나이로 사망한 것으로 

삼국사기에는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전문가들은 실제로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태조왕의 업적이나 

그 일생을 좀 더 높히기 위해서 나이를 늘려 

삼국사기를 썼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40세 전후였기에, 

그런 말도 안되는 나이로 태조왕을 초인적이고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기록을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삼국사기 자체가 우리에게는 상당히 신뢰성이 

높은 고대 자료이기 때문에 자료상으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산 왕'으로 역사는 

지금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1. 태조왕의 장수비결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태조왕의 119세 

나이는 정말 대단한 나이인데요. 

태조왕의 장수비결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이 태조왕의 

업적과 그의 삶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쓴 

일부 조금 억지스러운 의견에 반대되는 

중요한 기록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고구려 시대를 살았던 '명림답부'라는 

고구려 역사에서 처음으로 국상이라는

벼슬을 지냈던 뛰어난 인물인데요. 

명림답부도 역사서에 113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현재 남아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태조왕의 다음 왕위를 물려받은 왕인 

제7대 고구려 왕 '차대왕'이 95세까지 살았고, 

그다음 8대 왕인 '신대왕도' 91세라는 나이로 

태조왕의 후손들은 당시에도 굉장히 오래 

장수하면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것을 보면, 

태조왕은 엄청난 장수 유전자를 가진 왕이며, 

중앙집권국가의 기반을 만들면서 그동안 

상당히 골치 아팠던 여러 부족국가의 간섭에 

자유로울 수 있었기에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 장수의 비결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태조왕은 철저한 식습관을 통한 좋은 

음식과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었으며, 

항상 주위에는 지금의 의사와 같은 어의가 

집중해서 케어를 한 이유도 태조왕이 그렇게 

엄청난 장수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이죠. 

 

고구려 장수왕과 장수왕 재위시절 확장된 영토그림

 

2. 고구려 장수왕

 

오래 산 왕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나오는 왕으로 

그 칭호마저 장수를 의미하는 '장수왕'이 역대 

가장 오래 산 왕 NO.2에 올랐습니다. 

사실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대왕'과 달리 

엄청나게 오래 살았는데요. 

광개토대왕은 엄청난 업적에 반비례하듯 

불과 3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그의 아들은 마치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몫까지 산 듯 무려 98세까지 

장수한 고려의 대표적인 왕입니다. 

 

반대로 장수왕의 아들은 왕위에도 못 오른 채 

세자자리에서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요. 

워낙 오랫동안 왕위에서 태평성대한 나라를 

다스리며 살던 아버지 장수왕 아래에서 

아버지인 장수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데, 

장수왕의 아들의 이름이 바로 '조다'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또는 가벼운 욕과 같이 사용하는 

'쪼다'의 어원이 바로 장수왕의 아들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기도 하죠. 

 

 

 

2-1. 장수왕의 장수비결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과 

강력한 왕권과 더불어 고구려가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뤘던 시기의 왕인데요.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이 북쪽으로 영토를 늘리고, 

자신은 남쪽으로 눈길을 돌려 지금의 한강 이남인 

백제를 기준으로는 지금의 공주 바로 위부분과 

신라를 기준으로는 지금의 속리산 부근까지 

당시 최고의 영토와 함께 고구려 최고 전성기를 

지내다 보니 많은 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장수왕의 엄청난 체력에 대한 노력이 가장 컸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크게 스트레스가 없어서 

장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유전자와 노력다음으로 큰 것이 

스트레스라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수명에 

얼마나 좋지 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네요. 

 

영조의 재위모습과 왕에 오르기 전 모습 그림

 

3. 조선 영조

사실 조선의 영조보다 오래 산 왕은 존재합니다. 

앞에서 소개해드린 고구려 태조왕의 다음 왕인 

차대왕이나 그다음왕인 신대왕도 있습니다만,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조선시대에서 

가장 오래 산 왕을 소개해 드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해서 역대 가장 오래 산 왕 NO.3로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입니다. 

나이는 당시 평균 수명의 거의 2배인 83세로 

당시로는 엄청나게 오랜 산 경우죠.

영조는 우리에게 많은 드라마와 TV 방송으로  

잘 알려진 조선의 왕인데요. 

'사도세자'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정조'의 

할아버지이기도 하죠. 

영조도 왕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시련과 

반대에 부딪쳐 어렵게 왕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아시다시피 영조의 불과 4년이라는 시간 동안만 

조선을 다스린 '경종'의 뒤를 이은 왕이죠. 

숙종과 우리에게 아주 유명한 '장희빈'과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 20대 왕이죠. 

그리고 영조는 숙종과 인현왕후를 모시는 몸종인 

무수리 출신 '숙빈 최 씨'사이에서 태어났죠. 

우리에게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이 바로 영조의 

친모인 숙빈 최 씨입니다.

그리고 20대 왕인 경종이 영조의 6살 많은 

이복형입니다. 

 

영조의 장수비결 중 하나인 소식과 인삼

 

3-3. 영조의 장수비결

 

그럼 조선 최고의 장수를 누린 영조는 어떻게 

83세라는 나이와 함께 52년간 왕위를 지킨 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우선 영조는 앞에서 소개해드린 장수왕과 달리 

어릴 적부터 굉장히 잔병치례를 많이 한 것으로 

역사서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요. 

이로 인해 식사를 자주 많이 하지 못해서 일찍부터 

소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하루에 5번의 수라상을 받는 게 기본인데, 

3번으로 횟수를 줄여서 식사를 했고, 

당시 한번 식사를 할 때 30가지가 넘는 반찬으로 

식사를 하던 왕의 수라상을 반으로 줄여서 

건강관리를 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죠. 

지금도 소식은 장수비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죠. 

 

그리고 철두철미한 식습관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죠. 중요한 일을 하던 중에도

식사시간이 되면 무조건 끼니를 꼭

챙기는 습관을 가졌었고,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잡곡밥과 채소, 생선을 먹고 

오미자차를 굉장히 자주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죠. 

또한 굉장히 미식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맛있는 음식에 대한 내용물을 물어보기도 했고,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고 전해지고 있죠. 

 

영조는 다른 왕들과는 달리 궁 밖의 백성들을 

직접 걸어서 암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실제로 기록에는 500회가 넘을 정도로 직접 

걸어서 움직였기 때문에 지금도 의사들이 

건강에 굉장히 좋은 운동으로 추천하고 있는 

걷기를 자주 했던 것으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조는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한 성생활을 

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왕후 2명과 후궁 4명 사이에서 9명의 왕자와 

옹주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64세에 무려 50살이 차이나는 '정순왕후'를 

두 번째 왕후로 들인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죠. 

적당한 부부생활도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는 

중요한 장수요인이 된다는 것도 알려주네요. 

 

영조의 이러한 건강비결과 함께 몇 가지의 

장수비결을 또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요. 

영조가 살던 기간 동안 무려 인삼 100근을 

먹었다는 내용이 알려져 있고, 

술을 마시지 않은 왕으로 유명하죠. 

술을 마시게 되는 제사와 같은 행사에서도 

감주로 대신해서 먹었으며, 평상시에는 

술 대신 생강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죠. 

마지막으로 영조의 장수비결 중 하나는 

바로 정기적인 어의의 건강검진에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주기적인 건강검진이 시간과 함께 

제법 귀찮은 것으로 인식되곤 했는데요. 

영조는 한 달에 6번씩 있었던 왕의 검진보다 

무려 2배가 많은 11.7회의 건강검진을 꼭 

받아서 어의가 힘들어할 정도로 건강을 

챙긴 것으로도 아주 유명하죠. 

 

스트레스는 예전 왕에게도 장수에 방해되는 요인이였죠.

 

오늘은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가장 작은 사회집단인 가족사이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발생을 하고, 스트레스와 

서로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요.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스트레스는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유전자와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아주 오랫동안 장수한 왕들을 보게 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거나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부터 태조왕과 장수왕, 그리고 영조의 

장수하는 비결을 생각하며 건강을 위해서 

한 개씩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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