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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car

옛(구)차 발표회 9탄-현대 갤로퍼

by 40대 아재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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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30년 가까이 된 갤로퍼를
완전히 리스토어를 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갤로퍼는 우리나라 자동차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록적이고 많은
내용을 담은 자동차 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갤로퍼에 대해서
옛(구)차 발표회 9탄으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 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초창기 갤로퍼/현대정공

 

1. 갤로퍼 개요

 

1-1) 생산기간

 

1991년 9월 ~ 2003년 12월

1-2) 이름 뜻


'말을 힘껏 달리게 한다' 갤럽(gallop)에서 유래.

2. 갤로퍼 탄생배경

 

2-1) 배경

 

1987년 자동차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됩니다.
현대정공은 사실 항공기와 철도,
그리고 공작기계등 기계산업에
주력을 하던 기업 이었는데요.
자동차 제작사업에 진출하게 되죠.
또한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민의 삶과 질이 향상되기 시작하면서
레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사실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던 현대자동차는
당시에는 4WD 등의 SUV 생산에는
그다지 관심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정공에서는 현대자동차에서
제작을 할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독자적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 회장이었던 정주영 회장도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다고 하네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사실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의
자동차제작 외에 현대정공의
자동차제작을 지원한 이유는 따로 있죠.
당시 현대자동차는
정주영 회장의 동생인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의 힘이
막강하던 시기였기도 하고,
아들이었던 지금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후계자 구도 등에 대해서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동생인 현대자동차의 정세영 회장이나

아들이었던 정몽구 회장 그 누구도

한쪽을 소홀히 할 수 없었죠.
정세영 회장은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지금의 현대자동차그룹에 있어서
비교불가한 업적을 많이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아들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정공을
4WD 및 SUV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당시 현대자동차의 견제를 받지 않고
지원을 하면서도 정몽구 회장에게도
기회와 지원을 준 것이죠.

당시 현대정공에서 사장을 맡고 있었던
정몽구 회장은 작은아버지였던
정세영 회장과 마찰을 피하면서
'M-CAR'라는 프로젝트명으로
1989년 7월에 고유모델의
개발을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경험도 없었고, 당시 현대자동차의
엔진과 국산부품을 사용해서
미국의 도움까지 받아서
진행을 하였으나 실패였죠.

이때 이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꾼 것인데요.
기존의 차량에서 벤치마킹을 하면서
시장진출에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와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라이센트 생산'
이라는 전략으로 급선회를 합니다.
이것이 추후 성공신화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정몽구 회장과 현대정공은
여러 나라와 여러 차종을 검토하고

의견을 모아서 결국 미쓰비시의 '파제로'로
라이선스 생산을 하면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죠.
당시 일본에서 파제로는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SUV 차량이었습니다.
현대정공이 파제로 1세대를
라이선스 생산을 의뢰할 때 사실 미쓰비시는
2세대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물이 다 빠진 1세대에 대해서
크게 부담이 없었죠.
이렇게 1990년 3월에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합니다.

현대정공에서 이렇게 생산을 시작한
갤로퍼 초기형은 1991년에
출시가 되었는데,
당시 출고와 동시에 약 3개월간
3,000대가 넘게 판매가 되면서
파란을 일으켰죠.
당시 4WD 명가로 불리던
쌍용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판매량이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무려 한 해 동안
24,000대가 판매가 됩니다.
당시 4WD 시장의 52%를
상회하는 점유율이었습니다.
대성공을 이루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코란도와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 시리즈는
꽤 많은 인기를 끌기는 했으나,
성능과 디자인 그리고
잦은 고장으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조금씩 실망을 하던
그런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라이선스 생산이긴 했지만,
파제로를 그대로 가져와서 조립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미쓰비시의 파제로는
품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앞서있고
검증된 차였죠.
쌍용자동차는 당시 갤로퍼의 대성공으로
인해서 회사존립여부가 어려운
상황까지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쌍용자동차에서
협업을 한 업체가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였죠.
무쏘를 통한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협업으로 다시 무쏘의 전성기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갤로퍼 초기형/출처-나무위키

 

3. 갤로퍼 모델

 

3-1) 1세대 모델(1991년~1997년)

 

미쓰비시의 파제로 1세대와
차이를 말한다면 글자와 스티커 엠블렘
정도일 정도로 거의 흡사했습니다.
내부의 핸들(파워스티어링)은
현대자동차의 스쿠프 차량의
스티어링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인 1992년에는 승합차였던
그레이스와 포터의 것을
사용해서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수동변속기를 사용한 갤로퍼는
기어봉도 초창기에는 짧은 것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파제로의
기어봉처럼 긴 기어봉을
사용하였습니다.

갤로퍼 기어봉/4륜 포함
갤로퍼 계기판


보통 갤로퍼 하면 디젤엔진만 있다고
아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십니다.
사실 갤로퍼는 가솔린 3.0과
2.4 120마력 엔진이 있었고,
2.6리터의 가솔린엔진과
V6 모델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보기도 어려운
라디오안테나가 93년 모델부터
파워식으로 변경이 되었죠.
처음에는 수동 안테나 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연도인 1993년에는
인터쿨러 모델이 출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완전 레어템이
되어버린 그 모델입니다.
초창기모델의 인터쿨러 모델은
청록색이 많았는데, 군청색이나 흰색,
그리고 검은색은 거의 못 구하죠.

1994년에는 '뉴갤로퍼'라는 이름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페이스리프트가 됩니다.
헤드램프와 그릴이 바뀌게 됩니다.
시트의 편의성이 추가되고,
전동식 사이드미러도 장착되죠.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포니는
본넷에 사이드미러가 부착이 되어 있는데,
뉴갤로퍼는 보조미러를 그 위치에
장착을 해서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도 예방했습니다.

롱바디와 롱바디 9인승,
숏바디와 숏바디 밴드가
상당히 많은 종류의 모델로
생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캥거루범퍼라 불리던
SUV 차량의 심벌과 같은
파이브의 앞 가드가 부착이 되어 있었죠.
당시에는 자동차용품점에서 별도로 사제로
부착하기도 한 꼭 필수템이었습니다.

3-2) 등급과 엔진 구분

 

구분 및 등급별 엔진

 

4. 갤로퍼Ⅱ

 

4-1) 2세대 모델(1997년~2003년)

 

갤로퍼 2


갤로퍼 2는 IMF가 터지기 직전인
1997년에 출시되었습니다.
초기형과 다르게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이 되어서 좀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했죠.
다만 각지고 터프한 디자인을 좋아했던
일부 소비자들은 4WD과 SUV의 느낌이
없다며 불만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초기형에는 엠블렘이 아닌 이름으로
현대와 갤로퍼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이때부터 현대정공을
의미하는 약간 휘어진 'H'자의 엠블렘을
부착해서 출시가 됩니다.
2000년부터는 다시
현대자동차 로고를 부착합니다.
그리고 캥거루범퍼로 불리던
앞쪽 그릴가드는 스틸이 아닌
플라스틱으로 변경이 되어 부착됩니다.

당시에는 차량 탑승인원에 따른
세제혜택이 있어서 7인승과 9인승,
그리고 밴등으로 많은 파생모델로
판매량을 이끌어 가기도 했죠.
그리고 가솔린과 디젤엔진에 이어서
LPG 엔진을 부착한 기화기식 엔진도
장착이 되어 소비자의 선택을
더 넓혀주는 모델을 출시하기도 합니다.
정숙성과 하이루프 모델에 장착된
LPG 엔진모델은 당시 꽤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흔해졌지만,
숏바디 모델을 기본으로
소형트럭 모델을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습니다.

갤로퍼 SUT/출처-나무위키


다만, 계획에서 끝나게 되어
정식으로 출시는 못합니다.
그리고 '갤로퍼 이노베이션' 모델이 있었는데요.
이 모델은 갤로퍼 숏바디 모델을
기본으로 해서 외부와 인테리어를

업그레이드해서 생산한 모델인데요.
1990년대 후반에 쌍용의
뉴코란도와 함께 많은 젊은이들의
현실 드림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튜닝을 한 듯 당시로는 엄청난 호응이 있었죠.

갤로퍼 이노베이션 전면

 

갤로퍼 이노베이션 후면


갤로퍼를 생산한 현재정공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갤로퍼가 있는 4륜 구동차량 제작사업부문을
현대자동차에 넘겨주게 됩니다.
그리고 철도 부분은 '현대로템'으로 넘겨지죠.
이후 자동차 전장부품 기업의 대명사인
'현대모비스'로 이어지게 됩니다.
판매를 담당했던
현재자동차서비스도 합병하죠.

갤로퍼 고도계와 경사계가 달린 센터페시아


초창기 출시당시 2,476cc의
디젤 4 기통 엔진은
사실 굉장히 우수한 엔진이었습니다.
지금은 경차조차 넘는 82마력에
인터쿨러를 달아서 102마력 밖에
나오지 않은 엔진이었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좋은 성능의 엔진이었죠.

그리고 갤로퍼가 마력이 낮아도
운행에 문제가 없었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기어비를 높게 설정을 해놔서

낮은 RPM에도 최대토크가 나오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오르막에 힘이 좋다는 말이
나오게 된 거죠.
미쓰비시의 엔진을 가져와서 사용을 해서 당시
국내에 있는 엔진보다 우수하기는 했으나,
일본의 파제로는 사실 가솔린이 주력인 모델이었죠.

미쓰비시 파제로 롱바디
파제로 1세대 인테리어
파제로 숏바디
파제로 소프트탑 모델
파제로 하이루프 모델


그래서 디젤 엔진은 그다지 내구성이
아주 많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쌍용의 무쏘가 100만 KM 무보링이라는
엄청난 사실들로 인해 좀 더 그 내구성에
문제가 보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렉스턴이나
쏘렌토 출시와 더불어 도심형 SUV를
선호하게 된 소비자들로 인해서
단종이 됩니다.
그리고 후속으로 테라칸이라는 모델로
그 명성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험로주행성과 디자인,
그리고 갤로퍼의 명성을
이어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베라크루스 등이 출시되긴 했지만,
마초적이고 정통 SUV 디자인인
갤로퍼를 대체하긴 무리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갤로퍼2 후기 롱바디 모델


그리고 중형 SUV 이면서 도심형 SUV인

산타페가 압도적인 흥행을 이뤄내면서
점점 잊히기도 했습니다.
몇몇 설문조사를 보면 부활하면
대박 날 모델에 갤로퍼와 무쏘,
그리고 코란도가 있었습니다.
무쏘와 코란도는 쌍용자동차에서
현재 토레스와 곧 출시 예정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이죠.
갤로퍼는 현재기준으로는 싼타페 후속모델이
갤로퍼의 디자인과 정통성을 이어서
출시될 예정으로 많은 스파이샷과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죠.

본인의 아버지께서도 갤로퍼 초창기 모델을
운행하고 계셔서 유난히 추억도 많고,
정이 가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유난히 갤로퍼를 좋아하셔서

갤로퍼2 후기모델까지 쭉 이어서 타신

부모님 덕분에 더욱더

애정이 가는 차량이기도 하죠.
기회가 된다면 리스토어를 해서 주말용으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생깁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갤로퍼에 대해 포스팅을 했는데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갤로퍼에 대한
추억이 하나쯤은 꼭 있을 거라
생각이 되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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