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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 memory

옛날 선생님 요즘 학부모

by 40대 아재 2023.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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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되지 않은 여러 사회적 이슈 중에서

학교 선생님의 교권추락과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뉴스와 소식들을 봤는데요.

사실 지금도 그런 선생님들에 대한 교권문제

중·장년이 된 분들은 그런 뉴스들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오늘은 그런 선생님들에 대한 예전 모습들과

요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숙제를 안해오면 손바닥을 맞았죠.

 

우선 고등학교 시절로 가보겠습니다.

남성분이라면 '교련복'을 입어보신 적이 있다면

아마 분명 중년 이상의 연세를 가진 분 일 텐데요.

교련복은 고무재질 또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총을 가지고 학교 정식과목에 포함된 과목인데,

보통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얼룩이 된 옷이

해당 과목인 교련을 할 때 입었던 옷이죠.

교련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에 훈련을 하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모든 학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뜨거워진 학교 운동장에서 교련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이때 여학생들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의 의무활동과 비슷한 간호교육을 받고,

또는 옷을 만드는 수업 등으로 바늘로 옷을

만들고 미싱등을 교육받았던 것으로 희미하게

기억이 나곤 하는데요.

물론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르긴 할 겁니다.

 

교련수업시 총기 분해훈련 모습

 

영어 선생님은 팔 길이 정도의 군대의 지휘관이

소지하고 다니는 지휘봉과 같은 몽둥이를

교과서를 옆구리에 끼시고, 다른 한 손에는

수업에 들어오시면서도 복도에서 아직 교실에

들어가지 않은 학생들의 머리를 툭툭 치시면서

근엄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요.

보통 영어 선생님이 질문을 많이 하신다면,

수업일이 학교에서 자기 번호이거나 근처인

학생들은 여지없이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최대한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제발 질문을

안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긴장된 모습으로

수업을 받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1980,90년대에는 풀스윙을 하시는 선생님도 계셨죠 ㅎㅎ

 

수학 선생님은 무조건 교단으로 나오게 하셨죠.

문제를 하나 주시고, 랜덤한 학생 번호를 부르고,

나와서 푸는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못 푼다고 하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로 손바닥과,

또는 얇지만 제법 단단한 오동나무로 만든

일명 사랑의 매로 엉덩이를 맞기도 했죠.

물론 그게 좋은 방법이거나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엔 지금의 초등학교죠. 국민학교로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스승의 날이면 복도에는 제법 많은 어른들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보자기에 떡이나 음식을 주셨고,

어떤 분들은 봉투에 식사라도 하시라고 하시면서

드리기도 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을에는 동네에 커다란 행사가 있습니다.

동네행사는 물론 절대 아닙니다.

바로 가을에 열리는 국민학교의 가을운동회죠.

당시 국민학교의 운동회는 마을에서 열리는

행사처럼 해당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가을운동회에 참석해서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김밥이나 음식을 먹으면서

자신의 아이나 손주들이 하는 운동회를 보시는 게

그 당시 전형적인 가을운동회 모습이었죠.

마치 동네 반상회가 열린 것처럼 운동회를 계기로

모이신 어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나름대로의

운동회를 즐기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단체 줄다리기와 같은 행사에도 참석하셨죠.

 

어른들 줄다리기는 은근히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죠.

 

학교에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부모님을 학교에

모시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곤 했는데요.

물론 잘못을 하거나 사고를 쳐서 그러기도 했지만,

당시 국민학교 선생님이 학교에 부모님을 부르면

집안에서는 굉장히 큰 일로 인식을 하곤 했습니다.

말 그대로 선생님이란 존재는 어려웠던 것이죠.

현재 중년 이상의 세대 부모님들은 그렇게 많은

교육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에게

정말 굉장히 깍뜻하게 대하는 게 일상이었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에게도 무조건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예를 갖춰서 선생님께

행동과 말을 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부모님 세대가 선생님께 하시는 그런 모습을

보고 성장해 온 현재의 중년 이상의 세대들은

당연히 선생님의 위엄과 파워를 몸소 느끼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성장을 한 것이죠.

선생님의 말 한마디면 반 전체가 꼼짝 못 했죠.

그건 시대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런 것만 있어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교권이나 파워를 대신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의 존경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고,

반대로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존경받을만한

그런 행동과 말을 가르치고 보여줬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무조건 선생님의 편이었죠.

하지만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습니다.

백년대계라는 교육 앞에서 자신의 자식들을

올바른 교육과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들을

함부로 생각하거나 행동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 당시에도 사교육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사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교육인 학교보다

사교육인 학원 등에 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와 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적인 흐름이기도 하고, 실제로 사교육이

공교육의 수준을 넘은 이유이기도 한데요.

사실 공교육과 사교육은 그 개념 자체가 다르죠.

중년 이상의 분들도 국민학교 시절부터 

학습지나 학원 등을 다니고 공부를 했습니다.

저 또한 고등학교까지 학원을 꾸준히 다녔죠.

그래도 학교에서 받는 수업과는 달랐습니다.

교과를 앞서가고, 좀 더 쉬운 방법이나 핵심등을

학생에게 가르쳐서 마치 물고기를 주는 식의

사교육도 물론 장점이 있습니다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에서 배우는

가르침과는 분명 차이가 있고 깊이가 달랐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장래와 미래에 대해서

함께 고민을 해주셨고, 집으로 비교를 하면

학교는 본집이고, 학원은 별장 같은 개념이었죠.

지금은 이게 완전히 바뀐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죠.

공교육 학교의 선생님들은 사교육보다 수준이나,

깊이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일부의 몰상식한

부모세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는 아마도 그 위의 부모에게 그렇게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자신이나 자신의 자식에게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덜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하는 

그런 잘못된 생각과 행동들이 또 다른 몰상식한

학생들을 만들게 되고, 또 그 학생이 부모가 되면,

또다시 그런 몰상식한 부모가 되는 악순환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매 반대이지만, 때리는 선생님도 아팠습니다.

 

성적이 최우선이라는 사회적인 경쟁시대에서

그런 부분에 대해 이해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교육의 의무라는 것만 아니면 학교도 보내지 않는

그런 좀 덜된 어른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등을

학생들이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선생님의 교권은 선생님이 혼자서 만드는 것도,

또는 학생이나 부모들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원래 선생은 한자로 먼저 태어난 사람이지만,

본연의 뜻은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인 스승과 같은

의미로 사용을 하는 말입니다.

 

사교육을 나쁘게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본집인 공교육 학교에 대해서 무시하고,

무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처럼 인식을 하는

부모와 학생이 가장 큰 문제겠지요.

그러면서도 학원의 선생님에게는 뭐라도 못줘서

안 달란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참 한심하고,

과연 그게 그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할 행동인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씁쓸할 기분도 듭니다.

국민학교를 다닌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도 학원의

선생님들을 무시하거나 밑으로 생각하지 않았죠.

지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학생들의 부모에게 눈치를 보는 것이죠.

그렇게 과연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만든 일부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좋은 결과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흔한 말 입니다만, 예전 학생시절에 

'벼는 익을수록 숙인다'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아직도 어떤 게 본집이고 별장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한데요.

공교육인 학교는 단순히 수학 공식을 알려주고,

암기시켜서 좋은 대학에 보내는 곳만은 아닙니다.

공교육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성과 행동가짐을 가르치고,

다음 상급학교에 가기 위한 기본적인 지식과 함께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곳이죠.

가르치기 때문에 스승의 의미인 선생님이 계신

학교가 가르침을 받는 곳이라는 것이죠.

 

선생님,학부모,학생이 모두 서로 존경한다면 어떨까요?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한 편협한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의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한편으로는

성적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이익을 얻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자체만을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절대 없습니다.

다만, 돼먹지 못한 일부 학부모가 편을 가르고,

계급을 만들고, 자신이 누군가의 위에 있으려 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좀 더

특별한 것을 주기 위해 남들을 무시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부모가 자신의 자녀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으로 인해 선의 또는 악의의 피해자가

발생을 한다면 그건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죠.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생명을 잃고,

아무 생각없이 던진 그 누군가는 그것에 대한

반성이나 죄책감이 아닌, 오히려 재미를 느껴

계속하는 게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감당이 되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면

더더욱 그런 행동을 더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인 선생님들에게도

돌을 던지고 또 던지는 것이죠.

어떤 문제에 대해 가장 손쉬운 해결방법은

서로 입장이 바꿔보는 것이죠.

일명 선생님들에게 갑질하는 일부 부모들이

돌을 맞는 개구리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할까요?

아마도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돌을 던지지

말라고 애원하고 간절하게 바랄 겁니다.

 

학교 선생님은 단순히 좋은 대학을 보내는

도구나 과정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보다 더 안정된 상황에서

좀 더 편안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나 지식 등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 혼자서는 안됩니다.

학생은 물론 부모님들도 선생님들이 소신껏

열정을 다해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존경하는 모습을 서로 보여줘야 합니다.

자신이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해보세요.

가르침에 눈치를 준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불합리하고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한 가르침이라면

그건 분명 그렇게 한 선생님이 잘못이겠지만,

다른 대부분의 선생님이 좀 더 나은 가르침과

배움을 줄 수 있도록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아이들도 좀 더 학교생활에 적극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선생님, 학부모, 학생 모두가

서로를 존경하고 믿고 책임감을 가지는 게

가장 좋은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대한민국 학교 선생님들 파이팅!

대한민국 학부모 모두 파이팅!

그리고 대한민국 학생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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