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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재킹 실제 발생한 사건들

by 40대 아재 202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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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고와 관련된 '하이재킹(hijacking)'이라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용어로, 

비행기를 강탈한다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하이재킹이 발생하면, 일반 사건사고와는 달리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는 하이재킹에 대한 

개요와 유래, 그리고 실제로 현실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하이재킹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40대 중년아재입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최악의 항공기 관련 용어

 

◆ 하이재킹(hijacking)의 유래

 

하이재킹이라는 말은 과거 미국의 독립을 

전후해 유럽인들의 손이 닿지않은 당시의 

미국에 살던 원주민들의 문화가 존재하던 

시대를 우리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이기도 하죠. 

연도로는 19세기 중반에서 후기까지의 

기간인 이 시기에 처음 나온 말입니다. 

 

하이재킹은 비행기를 강탈해서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말하죠.

 

당시 넓은 황무지속을 달리는 열차를 

타깃으로 하는 열차강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당시의 열차는 지금과 같이 시속 300km/h 가 

넘는 엄청 빠른 기차가 있던 때가 아니었죠. 

그렇다 보니 당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통수단이었던 말을 통해 열차를 따라잡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서부영화에서 보는 긴 총을 들고, 

말을 타면서 마차나 열차를 공격해서 강도짓을 

하는 것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시는데요. 

열차를 조종하는 기관사를 가장 먼저 제압해서 

강도짓을 하던 당시의 열차강도들은 거의 다 

기관사를 총으로 위협하며, 위협을 하면서, 

약간은 의도와는 다른 말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곤 했는데요. 이때 기관사에게 했던 말이 

'잘 지내는가? 친구'라는 뜻을 가진 영어인 

'Hi jack'으로 반어적인 표현을 하기 시작하며, 

오늘 소개해드리는 하이재킹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였죠. 

이와 비슷한 사례로 비행기가 아닌 바다의 

배를 납치하는 경우에 쓰는 용어가 있는데, 

'씨재킹(seajacking)'이라는 단어도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대표적인 하이재킹 사건들

 

하이재킹하면 떠오르는 사건 하면 가장 먼저 

피해가 하이재킹 사건 중 가장 심각하고, 

엄청난 파장과 충격을 준 9.11 테러가 있죠. 

너무나도 유명하고 잘 알고 있는 사고이기에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전 세계인들이 잘 아는 

항공기 하이재킹 사건의 대표적인 사례죠. 

 

◆ 하이재킹 사례 1-9.11 테러 사건

 

2001년 21세기라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고, 

평범한 화요일에 자신들의 일터에 나가서,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던 오전 8시에 시작해 

이후 3시간 후인 11시까지 벌어졌던 일로, 

미국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의 수도인 뉴욕에 있는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 하이재킹을 통해 

강탈한 비행기를 충돌시켜 엄청난 인명피해와 

충격을 준 가장 큰 하이재킹 피해 사례죠. 

2곳의 피해와 함께 사실 강탈한 비행기가 

백악관 또는 의회로 충돌하여 공격하려 했지만, 

이곳은 비행기에 있었던 승객들의 저지등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광산에 추락을 했죠. 

세계무역센터는 2대의 비행기가 충돌을 해서, 

 총 4대의 비행기를 하이재킹 후 테러 등으로 

무려 3천 명에 가까운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고, 

이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의 전쟁선포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미국에 국토안보부라는 새로운 기관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가장 큰 하이재킹 피해 사건인 9.11 당시 모습과 메모리얼 모습

 

현재는 '그라운드 제로'라는 이름으로 

당시 안타깝게 사망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해당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기념공간으로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데요.

새로운 무역센터가 지어져 완공이 되었고, 

메모리얼과 박물관도 현재는 운영중이죠.

그라운드 제로라는 말은 보통 폭발이 발생한 

폭심지나 폭격지점을 의미하는 말이죠.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인해 발생한 

폭발지점이 그라운드 제로라는 대표적인 예죠. 

 

 

 

◆ 하이재킹 사례 2-창랑호 납북 사건

 

하이재킹과는 거리가 없을 거 같은 대한민국도 

과거 유명한 하이재킹 사건이 있는데요. 

그것도 몇 건의 하이재킹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중 가장 먼저 발생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하이재킹 사건은 바로 '창랑호 납북사건'으로, 

1958년 2월 16일 추운 겨울이 계속되던 날에 

당시 부산 수영비행장을 출발해서 지금의 

'여의도 공원'에 위치해 있던 '여의도 공항'으로 

승객과 승무원 34명을 태우고 가던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항공사이자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인 '대한국민항공' 소속의 '창랑호'가 

경기도 평택 상공에서 북한에서 남파된 

북한공작원 5명에게 하이재킹을 당한 사고죠. 

 

한국 최초 민간항공사 대한국민항공과 납북된 창랑호 모습

 

이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하이재킹으로, 

총을 사용해서 기장을 위협해 북한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도록 해서 결국 북한의 평양국제비행장에 

착륙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 청랑호의 기장과 부기장이 미국인이었고, 

독일인과 미국군인과 함께,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유봉순 의원'과 한국 공군 대령까지 타고 있었죠. 

북한이 창랑호를 하이재킹 한 이유는 어이가 없게 

북한의 다음날 발표로 처음 알려지게 되었는데, 

청랑호가 스스로 북한으로 가지 원해서 평양으로 

왔다는 말도 안 되는 어거지 발표를 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에 한국인들만 탑승해서 

청랑호와 탑승객의 조속한 송환을 요구해도, 

막무가내의 당시 북한의 행동에 결코 쉽지는 

않았을 이 하이재킹 사건은 미국인과 독일인등 

외국인이 타고 있었다는 이유로 인해 UN과 

여러 나라의 압박에 결국 하이재킹을 당한 뒤 

약 18일 후에 당시 북한공작원을 제외한 전원 

판문점을 통해 송환이 된 사건이죠. 

참고로 당시 대한국민항공의 창랑호는 끝까지 

반환을 하지 않아 북한에서 가져오지 못했죠. 

 

우선 북한공작원을 제외한 모든 탑승객들이 

안전하게 귀환한 것은 가장 큰 성과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고난의 시작이었죠. 

그 이유는 당시 대한국민항공의 당시 대표인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조선비행학교 교장', 

'조선항공회사 사장', '대한국민항공 사장', 

국회의원까지 지낸 조종사 출신 '신용욱

당시 대한국민항공의 중요한 파산이유가 되죠. 

북한에 뺏긴 창랑호로 적자가 누적이 되면서, 

당시 보유하고 있는 비행기는 딱 1대뿐이라, 

결국 1961년 한강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대한국민항공도 폐업이 되죠. 

 

◆ 하이재킹 사례 2-YS-11 납북 사건

 

1969년 대한항공 소속 YS-11 민항기가 

강원도 강릉비행장을 출발해 서울로 가는 중 

강원도 평창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공작원인 

'조창희'에 의해 하이재킹 후 북한 함경남도 

선덕비행장에 강제로 납북이 된 사건입니다. 

당시 이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이 

탑승을 해 있던 상태였는데, 이중 승객 1명이 

북한공작원인 조창희였던 것이었죠. 

 

당시 납북된 비행기와 비행경로 모습

 

우선 이 하이재킹으로 발생한 납북된 사람 중 

안전하게 귀환이 된 사람은 앞에서 소개해드린 

창랑호처럼 모든 사람이 귀환이 되지 못했는데, 

총 51명 중 북한 공작원 1명을 제외한 50명 중 

39명만 납북이 된 지 약 66일 만에 귀환되었고, 

나머지 11명은 끝내 귀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귀환하지 못한 사람은 승무원 4명 모두가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승객 7명 중 

한 명이 2001년에 있었던 이산가족만남에서 

참여를 해서 당시 상당히 많은 관심을 끌었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전문직의 

지식인들로 알려져 있었는데요. 

이중에는 방송국 PD와 기자도 있었습니다. 

 

창랑호 납북사건에 이어 대한항공 YS-11의 

하이재킹이 발생함에 따라 이번 사고로 인해 

비행기에는 '항공보안관'이 탑승하게 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은 합법적으로, 

권총을 무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북한에 강제로 납북이 되어 돌아오지 못했던 

11명의 귀환은 사실 지금도 요청 중인데요. 

시간이 갈수록 고령으로 인해 사망하는 분이 

늘어나는 것을 이분들의 가족은 지금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죠. 

 

◆ 하이재킹 사례 3-F27 납북 미수사건

 

대한항공 소속 YS-11기가 납북된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1971년 1월 23일에도 

정말 간담이 서늘하게 만드는 하이재킹으로 

또다시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해 

전 국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대한항공 F27 납북 미수사건'입니다. 

 

당시 승무원 5명과 승객 54명 총 59명이 탄 

대한항공 F27-500이라는 기종의 민항기는 

당시 속초공항을 출발해 목적지인 김포공항에 

가기 위해 강원도 홍천 상공을 날아갈 무렵, 

'김상태'라는 당시 22살의 강원도 고성 출신의 

한 청년에 의해 하이재킹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른 항공기 하이재킹과는 

많이 다른 조금 이상한 부분들이 많았는데요. 

그건 하이재킹을 한 범인인 김상태의 신분이 

당시 조사로는 북한의 소행으로 예상을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정확히 꼭 집어 확인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불시착한 고성의 한 바닷가의 F27 모습

 

그는 주변사람에게 소액을 주고 폭탄제조와 

당시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재료등으로 

직접 사제 수류탄을 만들어 이번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는데요. 

그 목적이나 그로 인한 그가 얻는 것들에 대해 

많은 조사가 있었음에도 당시 하이재킹 중 

뛰어난 위기능력을 가진 항공보안관과, 

당시 수습 조종사의 행동으로 목숨을 잃죠.

하지만, 김상태가 손에 쥐고 있었던

사제 폭탄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면서 

그것을 당시 수습조종사가 몸을 던져서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절단이 되는 엄청난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 용감한 행동으로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조종석이 파괴되지 않아서, 승무원과 승객의 

소중한 목숨을 지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파손된 객실등으로 비행기 조종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결국 당시 비행기 기장은 고성군에 위치한 

바닷가에 불시착을 시도해 성공을 합니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승객은 가벼운 경상으로 

마무리가 되는 천만다행인 사건이었죠.

 

몸을 던져 자신을 희생해 승객들을 구한 전명세 조종사

 

안타까운 건 이렇게 자신의 몸을 던져서 

탑승객의 목숨을 구한 수습조종사인 

'전명세'는 긴급히 근처 병원으로 옮겨진 후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서울로 이송 중에 

과다출혈로 결국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비행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칠까 봐 자신의 몸을 던졌다는 말이었죠. 

이렇게 영웅적인 행동과 희생정신을 보여준 

전명세 조종사는 사후 정식 조종사로 추서 되고, 

보국훈장은 물론,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죠. 

훗날 알려진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 대한항공 전무로 재직을 하고 있었던 

공군 소장 출신 '전명섭'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는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 하이재킹 사례 4-D.B 쿠퍼 하이잭 사건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 납치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D.B 하이잭 사건'인데요. 

이 사건은 항공기 하이재킹 사례로는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사건이기도 하죠. 

'댄 쿠퍼'라는 하이재킹 범인이 1971년 11월 

미국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서 출발해, 

미국 리노 국제공항으로 도착예정이었던, 

보잉 727-100 기종의 노스웨스트 항공 

305편을 공중에서 납치한 사건입니다. 

 

중요한 건 이 사건의 범인이자 하이재킹을 한 

댄 쿠퍼는 현재까지도 아직 잡히지 않아서, 

미국에서는 댄 쿠퍼라는 이름을 완전범죄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사실 댄 쿠퍼라는 이름은 사건이 발생한 후 

탑승한 사람들의 신분을 확인할 때 또 다른 

댄 쿠퍼라는 사람의 동명이인을 수사하면서, 

잘못 기입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직도 이 항공기 하이재킹 

사건에 대한 범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유명한 사건이죠. 

 

현재도 미제사건으로 남은 댄 쿠퍼 몽타주와 하이재킹 사건 비행기

 

당시 해당 비행기에는 36명의 탑승객과 함께, 

6명의 승무원까지 총 42명이 탑승해 있었는데, 

범인으로 불리는 댄 쿠퍼는 해당 비행기의 

맨 마지막 줄 가운데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댄 쿠퍼는 당시 승무원에게 쪽지를 건네는데요. 

처음엔 데이트 신청과 같은 쪽지인 줄 알았던, 

당시 승무원은 해당 쪽지를 받지 않으려 했으나, 

댄 쿠퍼의 약간은 강제적인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해당 쪽지를 받아 그 내용을 읽게 되죠. 

쪽지의 내용은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자신이 폭탄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이 하는 

지시에 무조건 따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가진 서류가방에 담겨 있었던 

다이너마이트를 그 승무원에게 확인차 보여주죠. 

 

그러면서 그는 승무원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3가지 요구를 하게 되는데요. 

그 요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미국 달러로 20만 달러를 달라.

2. 앞과 뒤로 매는 낙하산 각각 2개를 달라.

3. 공항에 도착 후 연료를 채울 수 있게 대기하라. 

 

원래의 도착지인 리노 국제공항이 아니라, 

시애틀 공항에 착륙을 하게 되는데요.

공항에 있던 경찰은 그가 원한 돈과 낙하산을 

인질들의 안전을 위해 건네주게 됩니다. 

그의 요구를 들어준 대가로 우선 35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스튜어디스 2명을 먼저 풀어주죠. 

자신을 포함한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 2명까지 

총 5명만 비행기에 남게 되는 상황이 되는데,

그는 기장에게 비행기를 멕시코에 위치해 있는

멕시코시티로 비행기를 조종하라고 하죠.

하지만, 기장은 연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래의 목적지인 네바다주 리노 국제공항을

경유한 뒤 낮은 고도로 비행을 하라고 하죠.

그런데 여기서 굉장히 이상한 요구사항을

하나 더 요구하게 되는데요.

그건 바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사용하는

랜딩기어를 내린 후 비행을 하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질들은 비행기

조종석으로 몰아 나오지 못하게 한 다음에,

유일하게 자신만 승객석에서 머물렀는데요.

이런 이상한 요구들은 그가 무엇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될 수 있는 부분이었죠.

그건 다름 아닌 요구한 낙하산을 맨 다음에

낮은 고도에서 뛰어내려 탈출을 하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그의 요구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난 후 댄 쿠퍼가 머물고 있던, 

승객석의 기압이 급격하게 낮아진 사실을 

조종석에 있던 승무원들이 알게 되는데요. 

이것은 하이재킹의 범인인 댄 쿠퍼가 진짜로 

낙하산을 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비행기는 목적지인 리노공항에 착륙한 뒤 

비행기로 들이닥친 경찰들이 수색을 했는데, 

역시나 그는 이미 비행기에 없었던 상태였죠. 

총 4개의 낙하산 중 2개가 비행기 뒤쪽에서 

발견이 되었고, 그가 피운 것으로 보이는 

담배꽁초도 그곳에서 발견이 되었습니다. 

 

댄 쿠퍼가 하이재킹한 비행기 모습과 현금 일부가 발생한 지역

 

즉시 당시 미국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수색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요. 

당시 범인인 댄 쿠퍼의 낙하지점으로 

예상이 되는 오리건주 포틀랜드 북동쪽의 

국유림이었던 '기퍼드 핀쇼 국유림'지역이 

그가 뛰어내린 가장 유력한 장소로 보였고, 

그로 인해 이곳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경찰인력과 통제, 헬리콥터 투입등으로 

샅샅이 근처를 쥐 잡듯이 수색을 했지만, 

결국 범인인 댄 쿠퍼는 물론, 그가 가지고 

사라진 돈가방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가 저지른 비행기 하이재킹과 

현금 20만 달러를 가지고 종적을 감춘 

댄 쿠퍼의 흔적이 사건이 발생한 지 

약 9년이 흐른 1980년에 또다시

그의 이름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데요. 

그건 바로 그가 뛰어내린 장소로 예상한 

국유림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티나 바'라는 지역에서 캠핑을 하던 당시

8살 소년 '브라이언 잉그램'에 의해 

진흙 속에 묻혀있던 돈뭉치가 발견이 되어, 

해당 지폐의 일련번호를 확인한 결과, 

경찰이 당시 댄 쿠퍼에게 준 20만 달러 중 

일부에 속하는 총 5,800달러의 현금이었죠. 

 

그가 가지고 간 현금 일부가 발견이 되면서,

해당 근교를 또다시 수색을 하였으나,

결국 또다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죠.

그러면서 댄 쿠퍼가 사망했다는 소문과,

실제로 지금도 살아있다는 소문이 함께

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을 하다가,

시간이 흘러 결국 그의 비행기 하이재킹 사건이

발생한 지 45년이 지난 2016년에 수사를

중단하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죠.

실제로 이 사건으로 몇몇 동일 모방범죄가

발생을 했지만, 모두 경찰에 잡혔으며,

유일하게 이 댄 쿠퍼의 하이재킹 사건만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미제로 남아있죠.

 

오늘은 비행기 하이재킹 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많은 피해가 있었던 9.11 테러사건부터 

국내에서 있었던 하이재킹 사건들과, 

하이재킹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사건인 

댄 쿠퍼의 노스웨스트 항공 납치 사건까지 

개해 드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다른 교통편에 대한 사고도 마찬가지겠지만, 

발생 시 다른 사고보다 엄청난 피해를 주는 

비행기 하이재킹 사고는, 유난히 해외여행 등 

비행기를 많이 사용하는 현재를 생각하면, 

더더욱 공항 및 항공 보안등의 철저한 강화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겠죠. 

 

-끝-

더 좋은 이야기로 다음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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